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총리 관저에서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했다. AFP=뉴스1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14일 전후 70년 담화에서 "우리나라(일본)는 지난 대전(大戰)에서의 행동에 대해 거듭 통절(痛切)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왔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담화를 각의(국무회의) 결정한 뒤 이같이 전했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이 같은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 아시아 사람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고 전후 일관되게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써 왔다"며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70년 담화 발표 전에 가장 많은 관심이 모아졌던 '사죄'는 담화에 담겼지만 역대 내각이 취해온 입장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사과'를 언급했다. 사과의 진전성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역대 총리들은 직접적으로 '사과'를 표명했다.
전후 50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는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諸國)의 사람들에게 다대(多大)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에 재차 통절(痛切)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고 했다.
전후 60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당시 총리는 담화에서 일본은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諸國)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에 재차 통절(痛切)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함과 동시에 앞의 대전(大戰)에서의 국내외 모든 희생자 여러분들에게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이날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일본에서는 전후 태어난 세대가 이제 인구의 8할을 넘고 있다"며 "그 전쟁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아이나 손자에게, 그리고 그 앞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즉, 그동안의 사과로 충분하다는 아베 총리의 기존 입장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또 다른 키워드인 '침략'과 '식민지 지배'와 관련해선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도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며 "식민지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권이 존중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총리는가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와 달리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관해 일본 행위의 맥락에서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또 "그래서 우리나라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 기본적 가치를 확고히 견지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손잡고 '적극적 평화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세계 평화와 번영 어느 때보에 기여하겠다"며 자신의 지론인 '적극적 평화주의'를 강조했다.
'적극적 평화주의'는 군사무장을 강화하고 군사 동맹을 공고히 함으로써 평화를 달성하자고 하는 아베 총리의 지론이다. 이 개념에 근거해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방침을 각의에서 결정했으며 현재는 이를 담은 안보 법안의 의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아울러 대전에서 희생된 피해자들에게 "전후 70년이 돼 국내외에서 희생된 모든 사람들의 목숨 앞에 깊이 머리를 숙이고 통석(痛惜)의 마음을 표시하면서 영겁 애도의 뜻을 진심으로 전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담화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모호하게 언급했다. 아베 총리는 "전장의 그늘에는 깊은 명예와 존엄이 손상됐던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또 "20세기에 전시 하의 많은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가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과거를 가슴에 새겨 나간다"고 말했다.
이날 아베 총리는 일본이 과거 전쟁을 치르게 된 배경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대공황이 발생하고 구미 제국이 식민지 경제를 끌어 들인 경제의 블록화를 진행하면서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일본은 고립감이 커져 외교적, 경제적으로 막 다른 골목에 몰리면서 힘의 행사에 의해 이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국내의 정치 시스템은 제동을 걸기에 부족했다. 이렇게 일본은 세계의 대세를 따라갔다"며 "만주 사변, 그리고 국제 연맹에서 탈퇴. 일본은 점차 국제 사회가 장렬한 희생 위에 쌓아 올리려고 했던 "새로운 국제 질서"에 "도전자"가 돼 갔습니다. 나아갈 진로를 그르쳐 전쟁의 길로 나갔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