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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희 정치부 기자
A(48)씨는 성도착증(소아성기호증) 환자다. 1984~2002년까지 13세 미만 여아 4명을 성폭행했다. 22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반복된 구속으로 석 달 이상 집에 머물러 본 적이 없다. 2012년 출소한 그는 법무부의 약물치료 명령에 따라 국내 최초의 '화학적 거세자'가 됐다.
전국적으로 성폭력은 하루 평균 73.8건 발생한다.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는 하루 평균 2.9건이다. 성범죄자의 재범(再犯)을 막기 위해 정부는 2008년부터 이들의 발목에 전자발찌를 채웠다. 2010년부터는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급기야 2011년에는 약물을 주입해 남성 호르몬을 억제하는 '화학적 거세법'이 도입됐다.
화학적 거세는 우리 사회가 성범죄자를 통제할 수 있는 사실상 최대치의 수단이다. 신상 공개나 전자발찌는 가족이나 직장 같은 어느 정도 사회적 지지 기반이 있는 성범죄자에게 효과적이다. 가족과 직장이 없고 사회에 동화되지도 못하는 부류는 전자발찌를 차고도 성범죄를 저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현재 A씨를 포함해 7명의 성범죄 전과자가 '성충동 약물치료법'에 따라 화학적 거세 상태에 놓여 있다. 법무부는 이들의 재범률이 현재까지 0%라고 밝혔다. 일견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위적인 약물 주입을 통해 남성 호르몬 수치가 사춘기 이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들은 여성을 봐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거나 발기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난달 A씨는 국내 처음으로 3년간의 약물치료를 마쳤다. 거세됐던 그의 남성성은 약물 주입을 중단한 시점부터 서서히 예전 수준으로 회복된다. 1년 후에는 전자발찌마저 푼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의 외출 제한 조치도 없어진다. 보호관찰관의 관리와 감시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A씨 앞에 놓인 길은 우리 사회가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영역이다. 보호관찰 기간이 끝나면 국가가 A씨에게 관여할 법적 권한도 없어진다. A씨를 3년간 담당한 보호관찰관은 "국가가 초기 비용을 투자해 A씨를 어느 정도 안정 수준에 올려놓은 만큼 이제는 지역사회와 민간의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최소한 한두 달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위기관리를 해주면 A씨의 일탈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호관찰관은 "관내 몇몇 기구를 수소문해봤는데 A씨를 맡겠다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성폭력상담센터나 정신보건센터 같은 민간 기구는 대개 피해자 구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성원 역시 여성인 경우가 많아 A씨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A씨는 전자발찌를 풀면 여행도 마음껏 다니고 가정을 꾸려 살림살이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문제는 폭력 가정에서 자라나 중학교만 졸업하고 정상적인 이성 관계를 맺어보지 못한 A씨가 쉽게 좌절감을 느끼고 재범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 방치된 A씨가 또다시 성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는 화학적 거세도 소용없으니 물리적 거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