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아버지와 그래픽 디자이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시스 더든(46) 미 코네티컷대 교수는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역사학자에 대해 "참고서적과 각주에 파묻혀 살아야 하는 외로운 직업"이라며 만류했지만, 결국 더든은 한·일(韓日)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현대사를 전공으로 택했다. 일본어는 고교생 때인 1986년 한 학기 동안 일본에 체류하면서, 한국어는 1994년 연세어학당에서 각각 배웠다.

'지일파(知日派)'이자 '친한파(親韓派)'인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과거사 왜곡에 반대하는 세계 역사학자들의 항의 성명을 이끌고 있다. 지난 5월 187명에서 출발한 서명자는 한 달 만에 500명을 넘어섰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일본 지식인들도 속속 동참 의사를 밝히고 있다. 22일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학준) 주최의 국제학술회의에서 일본군 강제동원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발표하기 위해 전날 오후 방한한 그를 만났다. 22일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다.

"도덕적 책임은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함께 지는 것이다. 소위 '위안부 문제', 정확하게 말해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反)인권 범죄라는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일본 정부가 공식 사과를 포함해 법적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독일 정부가 유대인 희생자에 대해 끊임없이 법적·도덕적 책임을 통감하고 인정한 사례나, 미국 정부가 2차대전 당시 수용소에 가뒀던 일본계 미국인 11만명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한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다. (그는 '위안부'라고 말할 때는 '소위'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오는 8월 아베총리는 전후 70년을 맞아 담화를 발표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 '위안부 문제'는 한·일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관심사다.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 관심사란 의미는.

"여성 인권에 대한 범죄 사례이기도 하지만, 피해자인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도 세계사적 의미가 크다. 한국의 '할머니'들이 먼저 용기 있게 증언에 나서자 필리핀·인도네시아에 이어 최근에는 중국의 피해 여성들도 증언에 동참하고 있다. (그는 우리말로 '할머니'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20세기 여성 인권의 역사에서도 성노예 문제와 피해자의 증언은 중요한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역사가는 본래 행동하기보다는 과거를 기록하는 자에 가깝지 않은가.

"학계에서 공부에 전념하는 것도 분명 의미 있고 필요하다. 하지만 미생물학자가 메르스 같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팔짱만 끼고 바라만 볼 수 있을까.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면, 행동주의가 유용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동안 서명 운동에 참여한 적은 많았지만, 앞장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명 운동 이후 반응은 어땠는가.

"일본 극우주의자에게 이메일로 살해 협박도 받았고, 내가 재직하는 대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한국의 개'라는 모욕적인 포스터가 붙기도 했다. 하지만 90대 아우슈비츠 생존자와 열두 살 한국 여학생에게서 격려 이메일을 받을 때는 무척 큰 힘이 됐다."

―아시아 현대사를 전공으로 택한 이유는.

"원래는 지리(地理)와 화산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에 갔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언어와 문화 전반으로 관심이 넓어지면서 결국 역사를 전공하게 됐다. 지금도 학교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강의할 때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의 시를 읽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