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고리원전 등 국내 원전에서 암 발생의 원인이 되는 방사성 요오드, 세슘, 스트론튬, 삼중수소 등 10~20종의 방사성 핵종(核種)이 일상적으로 방출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금까지 원전 주변에서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원자 또는 원자핵을 일컫는 핵종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 이것이 혹시 인체에 유해한 건 아닌지, 원전 지역 주민들의 갑상선암을 유발한 원인이 된 건 아닌지 당국의 심도 있고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환경운동연합이 국회도서관에 소장된 '원전 주변 환경방사선 조사보고서 연보'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고리를 위시해 경주 월성, 울진 한울, 영광 한빛 원전 등 4개 원전 부지에서 지난 10여 년간 문제의 방사성 핵종이 각각 7억~55억 베크렐(㏃)씩 방출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세슘 137과 스트론튬 90이 하루에 약 600억㏃씩 태평양으로 방출된 것에 비하면 적은 양이지만, 가동 중인 원전에서 일상적으로 방사성 물질이 방출됐다는 것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학계에서는 핵종이 장기간 꾸준히 배출되면 인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잖아도 원전 주변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갑상선암 피해 공동소송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사법부가 고리원전 인근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이 원전의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한 이후, 전국에서 모여든 공동소송 원고가 피해자와 가족을 포함해 2500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는 고리가 244명으로 가장 많아 상황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정부와 한수원은 지금 진행 중인 원전 주변지역 갑상선암 피해자 공동 소송 대응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이번에 확인된 원전 방출 물질들이 암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한 역학조사부터 벌이는 게 순서다. 원인을 찾아야 처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체적 피해 사례가 보고돼 만에 하나 원전 방출 물질이 암과 상관관계를 갖는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사실 원전 주변에서 나오는 뉴스는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내용이 공포스럽다. 그런데도 정부는 진작 폐로했어야 할 고리1호기를 더 쓰겠다고 한다. 원전 주변 주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