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군 연구소가 실수로 살아있는 탄저균을 배송해 요원 22명이 균에 노출된 사실이 드러난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서 28일 전투기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평택/뉴시스
미국 군 연구소가 실수로 살아있는 탄저균을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로 배송해 요원 22명이 균에 노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또 이를 통해 주한미군이 그동안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고 훈련용 탄저균을 국내에 반입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치사율이 95%에 이르러 생물학전 무기로 이용되는 맹독성 세균이 사실상 한국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국내로 반출입돼왔던 셈이다.
주한미군사령부는 28일 보도자료를 내어,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주한미군 합동위협인식연구소(ITRP)’에서 지난 27일 22명의 요원이 탄저균 표본으로 배양 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이 실험은 원래 비활성 상태의 표본으로 하지만, 실험 도중 이 표본이 이미 활성화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나자, 미군은 긴급대응요원을 투입해 탄저균 표본을 폐기 처분했다. 미군은 “훈련 참가 요원들을 검사한 결과 모두 감염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일반인들도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28일 새벽 유타주의 군 연구소에서 부주의로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을 미국 내 9개 주와 한국 오산 공군기지로 보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을 발견한 사실을 27일 사고 뒤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하지만 미군은 앞서 탄저균 표본 반입 사실을 우리 정부에 알려오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군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위험물질을 반입할 때 한국 쪽 질병관리본부에 통보해야 한다. 게다가 탄저균은 고병원성 위험체여서 살아있는 채로 국내에 들여오려면 질병관리본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국내에 반입된 탄저균은 들여올 때 살아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었고, 반입 승인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훈련용 탄저균 표본은 비활성 상태라는 이유로 사전에 알리지 않아왔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쪽은 정확한 실험 목적이나, 탄저균 양이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자주 탄저균을 들여오는지 등의 의문에 대한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오산 미군기지 사고 현장에 직원을 보내 사고가 난 실험실 내부의 멸균 상태는 완벽한지, 탄저균이 적법하게 배송됐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운송장에 탄저균으로 쓰여 있지 않으면 따로 확인할 방법이 없어 승인을 받지 않는다”며 “현장에 나간 직원들이 반입 여부를 확인하려는데 실험실이 폐쇄돼 볼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실험하는 합동위협인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 사고로 처음 외부로 알려졌다. 주한미군은 북한이 많게는 5천톤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탄저균 등 생화학무기에 대비해 탄저균 백신을 보유하고 탄저균 제독 실험 등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주한미군 쪽의 석연찮은 해명 탓에 일각에선 주한미군이 비밀리에 탄저균을 무기화하는 실험을 해온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탄저균은 인체에 침입하면 독소를 생성하고 면역세포를 손상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 탄저균 100㎏을 대도시에 저공 살포하면 100만~300만명이 숨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미 육군 소속의 한 생물학자가 탄저균이 든 우편물을 연방의회와 언론사에 보내, 이에 노출된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감염된 테러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은 탄저균을 살아있는 상태로 옮기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김지훈 김양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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