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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간토학살 목격자 딸 "일본은 가해자임을 잊어선 안 돼"

증언하는 日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목격자 딸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1923년 9월 발생한 간토(關東) 대지진때 자행된 조선인 학살 목격자의 딸인 윤봉설(73) 씨가 20일 일본 도쿄의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집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2015.5.20 jhcho@yna.co.kr
도쿄서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진상규명 촉구 집회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히로시마(廣島)·나가사키(長崎) 원폭 투하, 도쿄대공습 등을 거론하며 일본이 2차대전의 최대 피해자라고 말하는 일본인이 주위에 적지 않습니다만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대의 가해자였음을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923년 9월 간토(關東) 대지진때 자행된 조선인 학살 목격자의 딸인 윤봉설(73) 씨는 20일 일본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일본 시민단체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의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 주최로 열린 집회에서 "역사는 되풀이된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윤씨의 모친 고(故) 문무선 씨는 자신이 목격한 조선인 학살의 참상을 일본변호사연합회(일변련)에 진술, 2003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앞으로 일변련의 조사 보고서가 제출되도록 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또 피해 사실을 딸에게 상세히 증언함으로써 진상 규명 운동을 이어가게 했다.

윤 씨는 "어머니 말씀이, (대지진 당시) 아버지 친구가 어머니 집에 숨어 있다가 '경찰에 (잘못한 일이 없다고) 이야기하겠다'면서 아버지 양복을 입고 나갔는데, 잠시 후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일본인들이 아버지 친구 머리를 죽창 끝에 꽂은 채 행진하고 있었다고 한다"며 "그때 14살 소녀였던 어머니가 얼마나 무서웠겠느냐"고 말했다.

윤 씨는 이어 "그럼에도 어머니는 당시 '조선인을 죽인 사람이 일본인이었지만 (잘못이 없다고 증언해줌으로써) 내 형제를 구해준 사람도 일본인이었으니 그것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또 "신오쿠보(新大久保·도쿄의 한인타운)에서 어른들 사이에 낀 초등학생이 '조선인을 죽이라'고 외치는 것을 직접 봤는데, 그 아이들이 어른이 돼 교육자, 정치가가 되면 일본은 도대체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등의 유언비어가 확산하면서 수천명의 조선인들이 일본 군인과 경찰, 민간인 자경단 등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언비어 유포에 정부 당국자가 관여한 정황까지 일본 정부 자료에서 드러났지만 일본 정부가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는 가운데, 정확한 희생자 숫자는 물론 유골의 행방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또 '수천명'이 학계의 정설로 알려진 조선인 학살 피해자수에 대해 지난달 검정을 통과한 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가 '통설적 견해가 없다'는 견해와, 실상과 크게 동떨어진 당시 일본 사법성의 '230명' 주장을 병기한데 대해 항의 성명을 채택했다.

성명은 교과서 검정 주체인 문부과학성을 향해 "이런 자의적 검정은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한 뒤 "그것은 조선인 학살사건의 은폐가 현재도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학살된 조선인과, 그 유족에 대한 모독"이라고 덧붙였다.

집회에는 곤도 쇼이치(近藤昭一) 중의원 의원(민주당), 이케우치 사오리(池內沙織) 중의원 의원(공산당),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참의원 의원(사민당) 등 국회의원들도 참석해 진상규명 운동에 연대의 뜻을 표명했다. (취재보조: 이와이 리나 통신원)

jhc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05/20 17:5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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