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논쟁이 불붙고 있다. 한쪽에선 갈수록 악화하는 경기지표에 주목해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이미 진입,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울한 진단이 나온다. 이와는 달리 정부는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세에 있다는 낙관론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보니 처방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아직까지 추가경정예산편성이나 기준금리 인하를 거론할 단계가 아니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대내에서 악재가 꼬리를 물고 있는 상황에서 특단의 경기부양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저물가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실물경제지표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저유가와 원화가치상승 여파로 수출전선도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때맞춰 37개월째 이어지는 경상수지 흑자도 불황의 그늘로 원화절상을 부추기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일(현지시간)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가 열린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작년 수준(3.3%)이라도 간다면 다행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 원장은 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와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해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와 재정정책을 패키지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전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전망과는 온도차가 크다. 최 부총리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에 대해 “보수적으로 봐도 작년 수준인 3.3% 성장률은 가능하다고 본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또 추경에 대해서도 “올해 예산을 더 이상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긍정적인 경제전망을 고수했다. ADB 연차총회 참석차 아제르바이잔을 방문 중인 이 총재는 이날 현지에서 “2분기부터 4분기까지 순차적으로 1.0%, 0.9%, 0.8%의 성장률을 보인다면 경제가 기대한 대로 가는 것으로 본다”며 “3분기 평균성장률을 연률로 보면 3.6%인데 이는 저희가 말하는 잠재 수준 성장률”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가 오더라도 우리나라에선 추가로 금리를 내릴 수 있다며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열어뒀다. 이 총재는 “미국 경제 흐름을 보면 금리를 급속하게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며 “2분기 경기흐름이 앞으로의 흐름을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제진단과 전망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주요 경제지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수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소비자물가상승률도 0%대에 그치며 디플레 공포가 갈수록 퍼지고 있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3월 국제수지 잠정치’에 따르면 지난 3월 경상수지 흑자는 103억9000만달러로 작년 같은 달보다 41.9% 늘어났다. 경상흑자는 2012년 3월부터 3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흑자가 불황의 징후라는 점이다. 경상흑자는 수출이 늘어난 게 아니라 수출과 수입이 동반 감소하는 가운데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넘쳐나는 달러 탓에 원화가치가 올라가고 기업의 수출 경쟁력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 당국은 그동안 긍정적인 전망만 내놓다가 경기가 나빠지면 뒤늦게 조정하기 급급했다”며 “최근에는 대외환경이 악화하고 있어 더 이상 낙관적으로 경제전망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선제적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