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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아베 일본 총리의 방미 결과를 둘러싸고 한국 외교가 고립화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 '버락·신조 밀월(蜜月)'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얼마 전 반둥회의에서는 중·일 정상회담이 진행되어 화해의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동북아 국가들의 적극 외교로 한국 외교의 입지가 좁아들 것이라는 초조감에서 나온 우려이다. 그러나 현재 동북아 국가 간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것은 단순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국익의 득실을 계산하여 우리의 외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는 일본이 미·일 동맹을 심화하면서 동아시아에서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선언이다. 즉 '1951년 전후(戰後) 체제'의 복원과 '기시 노선'의 확대 부활인 셈이다. 1951년 미·일 안보조약에서 일본은 미국에 기지를 제공한 이후 1960년 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안보조약 개정에서 극동의 안전을 위해 미군의 후방지원을 확대하였다. 기시의 외손자 아베는 일본의 미국에 대한 지원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미군이 공격받으면 같이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아베는 동북아에서 힘의 균형을 위해 미국을 대신하여 일본이 군사비를 부담하고 후텐마 기지 이전을 강행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적극 참가함으로써 미국의 재균형 정책에 협조했다. 그 대가로 아베는 자신의 염원인 헌법 개정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양국의 이익이 합치된 결과였다. 특히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 라인)은 양국이 중국에 대한 대응을 함께하겠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일본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은 우리로 봐서는 득실이 모두 존재한다. 일본의 역할은 한반도 유사시 전쟁 억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우리가 의도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반도 내 전쟁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중·일 간의 군사적 긴장은 우리의 입지를 어렵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일 간 긴밀한 안보 협력을 통해 일본의 군사 역할에 대한 투명화를 지향해야 한다. 또 일본이 동북아에서 공공재 역할을 하도록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아베 총리의 미 의회 합동 연설은 역시 실망을 안겨주었다. 아베의 언행을 보면 이번 의회 연설은 아베가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보여준 것이다. 아베는 식민지 시대의 침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으며, 위안부에 대해서도 강제 연행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베가 용인하는 한계는 반둥회의에서 사용한 '반성'이라는 단어에서 조금 나아가 식민지 시대에 고통을 줬다는 것까지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력이 아베 자신의 인식보다 반보(半步) 더 나아가게 만든 것이다. 8월 담화의 내용도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다. 한국이 바라는 식민지 시대의 '침략' '반성' '사죄'라는 키워드 전부를 아베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 내에서조차 아베의 연설은 미국 국민에게는 감정적 호소를 통해 유대감을 강조한 반면 아시아에 대해서는 냉담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이다. 이 점에서 앞으로 한·일 관계는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한국 외교가 동북아를 어떻게 만들어가며 각국 관계를 어떻게 해나갈 것이라는 적극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베 방미를 통하여 '나쁜 일본'이란 선전만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오는 6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를 적극적인 외교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이 동북아에서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그랜드 디자인을 구체화하여 한국이 공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전제될 때 북한 문제와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우리의 해법이 힘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