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새로운 밀월을 맞고 있다. 29일(미국시각)까지 사흘 동안 진행된 외교·국방장관 회담, 정상회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 등은 미-일 동맹의 강화를 확인하는 무대였다. 동아시아는 물론 지구촌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변화다. 분단국으로서 강대국 사이에 자리한 우리나라로선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파장이 먼저 다가온다. 우리 외교와 국가 진로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선 동아시아 나라들에 큰 고통을 준 일본 제국주의의 과거사 문제가 희석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9일 연설에서 “우리(일본)는 전쟁(2차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의 마음으로 전후를 시작했다. 우리 행위가 아시아 나라의 국민에게 고통을 줬다”라고 짧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한-일 사이 최대 현안인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법 제시는커녕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나 반성도 없었다. 이는 “역대 총리들에 의해 표현된 관점을 계승하겠다”고 한 그의 말을 무색하게 한다. 아베 총리의 역사 왜곡은 ‘전후 아시아 나라들의 성장은 일본의 지원 덕분’이라고 강조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일본의 이런 태도는 반역사적이고 뻔뻔하기까지 하다. 그의 연설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미국 정부도 문제다.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 강화에 매몰돼 역사의 정의를 저버리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아베 총리는 미국과 아시아 나라들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는 미국과 관련된 과거사에 대해서는 ‘깊은 후회’와 ‘깊은 반성’으로 사과했으며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올여름까지 안보 관련 법안을 꼭 정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런 식의 미-일 동맹 강화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평화헌법 폐기를 부추기고 아시아에서 대결 구도를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두 나라는 동맹 강화의 주된 목적이 대중국 견제에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태평양과 인도양까지 넓은 바다를 법의 지배가 관철하는 평화로운 바다로 삼아야 한다”는 아베 총리의 말은 이들 해역, 특히 남중국해에서 갈등이 커질 것임을 예고한다.
미-일 신밀월은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관련 사안을 푸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일본과의 군사협력 강화에 치중할수록 핵 문제를 대화로 풀려는 동력은 떨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 수준을 높이려 한다. 한-미 및 미-일 군사일체화를 넘어 한-미-일 군사일체화를 이루겠다는 게 미국의 의도다. 한-미-일 통합 미사일방어체제 구축과 일본 자위대의 한국 영해 안 활동 등이 그 핵심 내용이다. 이런 움직임은 한반도 관련 사안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우리나라가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좁힐 것이다.
미-일 신밀월은 우리나라에 새로운 전략과 결단을 요구한다. 최선의 선택은 일본의 과거사 해결을 유도하고 북핵 등 한반도 관련 사안을 진전시키며 동아시아의 평화·협력 구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에 그냥 발을 맞춰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우리 목표에 맞고 주도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6월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또한 신중한 재검토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