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고학계가 한반도와 만주에서 군부의 도움으로 약탈적 발굴을 하고 있다는 게 수 시간에 걸친 수업의 골자였습니다.”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일본 스루가다이대 명예교수는 1945년 4월 도쿄대 문학부 입학 직후 들었던 고고학 강의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당시 충격은 아라이 교수가 한국 문화재 반환 운동에 적극 나서는 계기가 됐다.
현재 ‘한국·조선 문화재 반환문제 연락회의’ 대표를 맡고 있는 아라이 교수는 국회 증언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2011년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그는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당시 체결한 문화재 반환 협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71)가 최근 펴낸 ‘한일 교류 2천년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나남)에는 아라이 교수를 이 같은 얘기를 비롯해 한일관계의 접점에 있는 일본 지식인 23명의 생생한 육성이 담겨있다. 아시아연구기금의 프로젝트의 하나로 정 교수는 2년간 한일 양국을 오가며 전직 주한 일본대사, 케이팝 전도사, 역사학자, 문화교류 인사 등을 인터뷰했다. 그는 “양국 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한일 교류 관련 책을 내는 것이 좋지 않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미래지향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비록 일제강점기를 겪었지만 역대 한일관계에서 선린 교류의 역사가 더 길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백제마을’로 불리는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의 난고손(南鄕村). 이곳에는 백제왕을 신으로 모신 미카도 신사(神門神社)가 있고 백제왕을 기리는 마을축제인 ‘시와스마쓰리(師走祭り)’는 1300년 동안 매년 열려왔다.
정 교수가 지난해 이 축제 현장에서 만난 하라다 스미오(原田須美雄) 전 난고손 기획관광과장은 “인구 2000명의 산골 마을인 이곳이 백제마을을 관광자원화하면서 충남 부여와 자매 결연을 맺고 학생끼리 상호 방문하는 등 한일교류를 활발히 해왔다”며 “마을 사람들은 아베 총리가 어째서 잘못된 역사인식을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책은 양국의 역사를 되새기는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한일관계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공생할 방안을 모색했다. 고바야시 요시아키(小林良彰) 게이오대 교수는 “수년 전까지 대부분의 일본 방송에서 매일 볼 수 있었던 한국 드라마와 가수들이 사라지고 있다”며 “국가간 관계악화가 민간 교류의 축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주한 일본대사를 지낸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 일본국제교류기금 고문은 “위성발사나 해저터널·해양목장 건설처럼 양국이 함께 참여할 커다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김상운 기자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