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방산업체 제품 국내에 반입 후
중국의 현지 공모자 통해 넘겨
추가반출 시도 미수 그치기도
美서 체포ㆍ기소… 이달 중 첫 공판
미국이 해외수출을 엄격 통제하는 전략 무기용 미사일 부품을 국내로 반입한 뒤 중국을 통해 이란으로 넘긴 한국인 사업가가 미국에서 기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이 이란에 미국산 군사물품을 넘기는 중개역할을 한 것이어서 군사ㆍ외교적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이 미사일과 함께 핵 기술을 상호 교류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5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정밀기계부품 수출입업체 K사 대표 김모(55)씨는 미국 군용물자인 ‘가속도계’ 6개를 이란에 불법 수출한 혐의로 기소돼 미국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김씨는 무기수출통제법(AECA),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이란거래규정(ITR) 등 미국 법규를 위반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연방검찰에 체포됐다.
김씨가 이란으로 밀매한 가속도계는 미국 방산업체 하니웰 제품으로 미사일 등 비행체의 자세를 제어하거나 위치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부품이다. 정밀도가 높은 군용 가속도계는 탄도미사일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장비로, 지하 핵실험 강도 측정에도 필요하다. 미국 정부는 AECA와 ITAR 규정을 통해 가속도계를 ‘군용 물자품목 목록(USML)’에 포함하고 수출 시 국무부 국방물자수출통제국(DDTC) 허가를 받도록 했다.
탁민제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가속도계는 타격 정확도를 높여주기 때문에 우방국이더라도 수출이 쉽지 않다”며 “이를테면 북한으로 넘어가 대포동 미사일에 장착되면 정확도가 향상돼 위협이 커지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군사평론가 김종대씨는 “국제 무기밀매시장에서 한국을 우회로로 설정한 사례”라며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 룰까지 어긴 엄중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미국 연방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2007년 12월 ‘이란인 친구를 위해 하니웰의 가속도계를 구입하려 하니 비용과 배송 시간을 알려 달라’는 중국인 Y씨의 이메일을 받았다. Y씨는 “중국 남방항공 항공기에 사용하기 위해 가속도계를 구매하는 것”이라며 6개의 가속도계 구입의사를 밝히고 거래 계약을 맺었다. 이후 김씨는 2008년 2월 선불금을 받고 캘리포니아주에 설립한 유령회사 ACC 명의로 하니웰에 가속도계 6개를 주문했다.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물건을 넘겨달라는 Y씨 요청에 따라 김씨는 화물운송업자를 속여 최종 목적지와 최종 소비자를 서울 본사로 작성해 미국의 수출 금지 규정을 교묘히 피해갔다. 같은 해 4월 문제의 부품은 아시아나항공 화물기를 통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고, 김씨는 송장을 ‘고객 테스트용 무료 샘플, 경제적 가치 없음’이라고 허위로 꾸민 뒤 곧바로 상하이로 배송했다. 미국 검찰은 이렇게 중국에 넘어간 가속도계가 현지로 찾아온 이란인에게 넘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번 밀거래에 성공한 김씨와 Y씨는 2009~2010년 신형을 포함한 가속도계 20여개를 다시 밀반출하려 했지만, 북한과 이란 등 국가에 대한 전략물자 반출 우려로 엄격해진 미국 당국의 확인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 미국 검찰은 김씨에 앞서 Y씨를 불가리아에서 체포해 압송한 뒤 실형 판결을 받아냈다. 김씨는 전략무기 밀반출 등 위반 혐의로 이달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한국 검찰 관계자는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최대 80년까지 실형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K사 관계자는 “김씨는 현재 미국 출장 중”이라며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김씨는 보석금 30만달러를 내고 가석방돼 현지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