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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해 '위안부 지킴이'로 사는 통영 송도자 씨

귀향해 '위안부 지킴이'로 사는 통영 송도자 씨
귀향해 '위안부 지킴이'로 사는 통영 송도자 씨 (통영=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경남 통영시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 대표 송도자 씨. 송 대표는 1990년 1월에 귀향해 꽃집을 차렸다가 2002년 8월 15일 시민모임을 만들었다. 2015.3.15 pitbull@yna.co.kr

(통영=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살아있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 하시던 할머니들에게 딸이 돼 드리고 싶었어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대표 송도자, 이하 시민모임)'이 꾸려진 것은 2002년 8월 15일.

시민모임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송도자(54·여) 대표가 할머니들의 '큰 딸' 역할을 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는 일제강점기 때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피해자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20여년 전 정부가 조사를 시작했을 때 확인된 인원이 모두 6명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은 시간 동안 김복득(98) 할머니만 생존해 국내 최고령 위안부 피해자로 살고 있다.

통영시 서호동이 고향인 송 대표는 서울서 대학을 졸업하고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남편을 따라 25년 전인 1990년 1월에 귀향해 꽃집을 차렸다. 세 식구가 아쉬움 없이 살 정도로 장사도 잘 됐다.

그러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가 그에게 한국정신대연구소에서 통영과 거제지역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채록하러 연구원들이 갈테니 길을 좀 안내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송 대표와 피해 할머니들과 운명적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엔 현지 가이드로 꽃집 문을 잠시 닫고 외출하던 수준이었다.

송 대표는 "증언을 들으면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지만 먹고 사느라 할머니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다. 그런데 할머니들의 생활 모습이 자꾸 떠올라 가슴이 아파 시민모임을 만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피해 할머니들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 한 채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무척이나 부끄러워했다. 그마나 있던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지인들 20여명이 모아 꾸린 시민모임은 피해 할머니들에게 큰 힘이 됐다. 송 대표는 활동을 더 열심히 하려고 꽃집도 그만뒀다.

귀향해 '위안부 지킴이'로 사는 통영 송도자 씨
귀향해 '위안부 지킴이'로 사는 통영 송도자 씨 (통영=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경남 통영시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 대표 송도자 씨. 송 대표는 1990년 1월에 귀향해 꽃집을 차렸다가 2002년 8월 15일 시민모임을 만들었다. 2015.3.15 pitbull@yna.co.kr

시민모임은 10년 넘게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고 지역 주민들도 피해 할머니들의 존재를 알게 됐다.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김복득 할머니는 각종 행사에 동행하는 것은 물론 쌈짓돈을 모아 학교에 기부도 하고 증언록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송 대표에게 올해가 광복 70주년라는 것과 피해 할머니들이 '커밍아웃'을 한 지 25년이 다 돼 간다는 것은 무거운 책무로 다가온다.

그는 지난 10년 넘는 세월 동안 지역의 피해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한 달 동안 입금되는 후원금이 100만원도 안 되는 시민모임은 늘 운영난에 시달렸다. 매달 3천원이나 5천원을 후원하던 회원들 가운데 아예 후원을 취소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친엄마는 안 돌보고 남의 엄마만 돌보냐"고 늘 섭섭해하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그만두고 싶지만 10여년 전 만났던 할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라 매일 마음을 다잡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시민모임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가칭 '경남 위안부 역사관' 설립에 나선다.

2013년 4월 통영시민문화회관 앞 조각공원에 세운 위안부 추모비인 '정의비'에 이은 두 번째 '책무'다.

그는 추모비와 역사관 건립이 할머니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이후를 준비하는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한다.

송 대표는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들이 피해 할머니들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의 장"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전국 곳곳은 물론 미국에서도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잇따르고 있다"며 "동상 건립 자체에 의미는 있겠지만 비슷한 모습으로 찍어내지 말고 상징성과 독창성을 가진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itbul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03/15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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