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01 20:02
수정 : 2015.03.02 11:22
세월호 삭제, 진보당 해산 삭제
언론 독립성 삭제, 경찰 채증 삭제…
나라별 자유권 규약 이행 의견서
인권위원 거치며 초안에서 후퇴
쟁점 65개→37개→31개로 줄어
“인권위가 정부 인권 침해 은폐”
국가인권위원회가 유엔에 인권규약 이행실태 의견서(정보노트)를 내면서 초안에 있던 세월호 진상규명, 청와대의 언론인 고소, 통합진보당 해산 등 인권 후퇴로 보일 수 있는 내용을 대거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유엔 자유권규약 제4차 국가보고서 심의 관련 정보노트’를 지난달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 보냈다고 1일 밝혔다. 앞서 2011년 우리 정부는 2004~2010년 자유권규약 이행 상황을 보고했다. 유엔은 각국 정부 외에 비정부기구(NGO)와 국가인권기구에 각각 의견을 구한 뒤 심의를 거쳐 최종 권고사항을 결정한다. 인권위 같은 ‘독립적’ 인권기구의 의견은 다소 일방적일 수 있는 정부와 시민사회에 견줘 객관성·중립성이 높게 평가된다.
인권위 인권정책과는 1월15일 상임위원회에 정보노트 초안을 보고했다. 유엔 자유권규약이 정한 17개 분야의 65개 쟁점이 선정됐는데 △간첩조작사건 소멸시효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의 공정성·독립성 △국가정보원의 감청 및 통신업체의 데이터 보관·제공 △헌법재판소의 진보당 해산 △언론인에 대한 청와대·정부의 고소·고발 증가 △집회 참가자 일반교통방해죄 적용 △파업 노동자 손배·가압류 등 중요한 인권·기본권 침해 사례가 다수 포함됐다.
인권위 상임위원들은 “인권위가 의견을 내지 않은 사안이 포함됐다”, “4차 국가보고서 내용인 2010년까지의 상황이 중심이 돼야 한다”, “내용이 너무 길다”며 재작성을 요구했다.
인권정책과는 지난달 5일 수정안을 보고했다. 초안에서 무려 28개 쟁점을 삭제했다. 상임위원들은 6개 쟁점을 더 걸러냈는데, 인권위가 지난해 경찰청에 개선을 권고한 ‘불법 채증’마저 사라졌다.
인권위는 “내용이 너무 방대해 추려보자는 취지에서 쟁점을 줄인 것으로 안다. 재판이 진행중이거나 세월호 진상규명처럼 마무리가 안 된 사안들을 제외했다”고 했다. 하지만 인권위 내부보고서에도 “유엔의 국가보고서 심의는 현재까지의 이행상황을 포함해 심의한다”고 돼 있어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인권단체들은 이런 조처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의 인권 후퇴와 현병철 인권위원장 시기 인권위의 ‘몰락’에 대한 국제적 평가를 의식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명숙 ‘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은 “인권위는 자국 인권침해 상황을 유엔에 정확히 알리고 문제를 예방할 의무가 있다. 삭제 조처는 의무 방기이자 국가의 인권침해를 적극 은폐한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인권위 관계자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권위원들이 인권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정부에 부담 될 사안을 뺀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인권단체들은 삭제 조처에 대한 성명서를 유엔과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에 보내기로 했다.
이재욱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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