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의 한·일 과거사 문제 관련 발언에 내심 당혹해하면서도 “미국의 공식적인 기본 입장이 아니다”며 부인하는 안일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셔먼 차관의 발언이 최근 북한 비핵화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을 둘러싼 한·미 간 ‘엇박자’ 논란에 이어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도 동맹 ‘불협화음’을 내비친 것인데도 별일 아니라는 인식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셔먼 차관의 발언은 미국이 한·미·일 협력의 미래에 더 방점을 두면서 일본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기본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과의 동맹을 중시한다”면서 “한·중이 역사문제를 가지고 일본에 대항한다는 의미로 셔먼 차관의 발언을 해석하는 것은 미국이 생각하는 구도와는 다를 뿐 아니라 미국에도 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도 “한·중·일의 동북아 지역이 긴밀히 협력해 안정·평화·번영을 위해 노력하는 게 미국 이해에도 일치한다는 기본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셔먼 차관이 과거를 거울로 삼아 과거사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자는 입장도 표명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해석은 ‘아전인수’ 성격이 강하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4월 말부터 줄줄이 예정된 한·중·일 3국 정상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나온 발언인 데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주요 인사들의 과거 발언과는 분명히 궤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일 간 협력이 쉽지 않고 예상보다 장기화하자 미국에 훨씬 동조적인 일본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이 최근 부쩍 중국에 편향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미국이 한·미·일 협력에 조바심을 내는 이유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응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태도 변화 가능성을 미리 감지하지 못한 데다, 논란이 된 발언에 대해서도 “미국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며 문제 축소에만 급급하고 있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