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포츠 유관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53)은 “소비자 중심의 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공급자 위치에서 무엇을 내려줄까를 고민하는 데서 탈피해 국민이 원하는 욕구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구현하겠다는 뜻이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김 차관은 ‘소비자’들 속으로 뛰어들어 귀를 열었다. 어디가 막혀 있는지, 그걸 어떤 방향으로 뚫어야 할지를 알기 위한 일이었다.
프로야구 두산 기획홍보과장을 거쳐 국내 최초로 스포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양대 예술체육대학장을 지낸 김 차관은 ‘스포츠 저변 확대, 스포츠 산업 활성화, 전문인력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꿈틀거리는 스포츠 세상을 꿈꿨다. 문화부의 세종시 이전을 앞둔 지난해 연말 서울 와룡동 청사에서 그를 만났다.
▲ 소비자 리포트 제작… 학교체육 정상화돼야 저변 확대
스포츠 전문인력 부족으로 국제경쟁력 약한 것도 문제
‘골프존’은 창조경영의 모델… 돔구장 설립도 긍정 검토
- 취임 직후부터 스포츠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결과제는 무엇인가.
“스포츠 저변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 그걸 위해서는 스포츠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바뀌고 기업들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투자해야 한다. 그것이 잠재 고객을 만들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길이다.”
- 저변을 확대하려면 무엇보다 체육교육의 정상화가 선행돼야 할 것 같다.
“학교체육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학교체육이 정상화되려면 학부모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학부모 자신들은 건강을 걱정해 열심히 운동하면서 자녀들에게는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
- 동시에 학교 내 인프라 구축도 절실하다.
“지금 학교는 모든 게 학업에만 맞춰져 있다. 라커, 샤워실이 있는 학교가 드물다. 지금 우리 자녀들은 20~30년 전과 마찬가지로 교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 또 모든 체육수업을 학교 안에서만 하려고 고집해도 안된다. 주말에 학교 밖 스포츠 시설에서 운동하는 것도 체육수업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 그렇다면 정부가 추구하는 스포츠 산업화는 어떤 것인가.
“스포츠를 통해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부가가치가 계속 창출되는 산업화된 시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구계에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면 새로운 직종이 10개 이상 생긴다. 지금 국내 스포츠는 선수만 돈을 버는 데 그칠 뿐 추가적인 부가가치 창출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 스포츠 산업화를 위해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경기장 소유 또는 장기임대다. 그건 스포츠의 자립기반이다. 이 부분에 투자하는 기업에 혜택을 주겠다. 또 국내 스포츠 시설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현 상황에서는 충분히 마련돼 있는 시설을 국민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금은 스포츠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어디서부터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지 다들 잘 모르고 있다.”
- 그 점을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은 무엇인가.
“스포츠 소비자 리포트를 제작하는 것이다. 소비자인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즉 소비자의 ‘니즈’(needs·욕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소비자 중심 정책을 펼 수 있는 기반이다. 예컨대 등급을 매겨 나누는 ‘피트니스센터 인증제’, 스포츠 시설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스포츠 매핑’, 스포츠를 어떤 방식으로 즐기는지를 알려주는 ‘스포츠 활동 인덱스’ 등이다. 정부는 다양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데 그치고 실제 업무는 민간이 진행하는 식이 될 것이다.”
-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2014년 체육분야 예산은 1조28억원으로 정부 전체예산(357조6856억원)의 0.28% 수준이다. 체육 예산에 대한 문제는 두 가지로 풀어야 한다. 첫번째는 현재 예산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추가적인 예산확보인데, 이건 확실한 명분과 가치를 찾아낸 뒤 설득력 있는 그림을 그리면 충분히 얻어낼 수 있다.”
- 전문 인력 육성과 일자리 창출에도 중점을 두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이 뛰어나면 일은 훨씬 수월하게 된다. 스포츠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과거 스포츠계에 몸담았다가 경력이 단절된 인재를 고용하면 많은 게 해결될 것으로 본다. 현재 우리나라 토종 스포츠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는 것도 결국 전문 인력 부재 때문이다. 국내 브랜드가 전문 인력을 고용할 의지가 있다면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
- 정부가 스포츠계 창조경영의 성공모델로 ‘골프존’을 꼽는 이유는 무엇인가.
“골프존은 없는 수요를 창출한, 스포츠와 IT(정보기술)가 융합된 성공 모델이다. 다른 종목에서도 프로선수가 연습해도 될 만큼 기능이 뛰어나고 재미까지 갖춘 융·복합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정부가 돕겠다. 앞으로 스포츠계는 융·복합이 대세다. 스포츠와 관광, 여행, 체험 등을 엮는 식이다. 무주태권도공원에 외국인들이 올 수 있도록 ‘태권도 스테이’ 등 유인책을 마련하는 게 좋은 사례다.”
- 돔구장 설립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돔구장은 스포츠와 문화행사 수행, 일자리 창출, 국민 의식 전환을 모두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에 대형 돔구장이 있다면 스포츠뿐만 아니라 K팝 공연, 국제모터쇼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치를 수 있다. 그러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스포츠에 대한 국민 의식 확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스포츠를 산업으로 이해하는 김 차관이 취임하면서 골프계도 정부에 바라는 게 많다.
“골프계는 정부에 뭔가를 요구하기에 앞서 자구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카트비, 음식값, 캐디피 등을 낮춰 국민에게 ‘골프는 대중이 즐기는 스포츠’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주말에 골프를 치는 데 30만원이 들어가게 해놓고 특소세를 없애달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 골프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게 골프계가 먼저 해야 할 일이다.”
- 정부의 스포츠 정책 방향을 총정리한다면.
“과거처럼 정부가 공급자 위치에서 국민에게 정책을 내려주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게 저절로 돌아가면서 다양한 부가가치가 창출된다. 그걸 위해 정부는 미래를 위해 씨앗을 뿌린다는 자세로 번거롭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을 맡겠다. 그렇게 5년 동안 정부와 민간이 원활하게 협조하면 스포츠에 대한 국민 인식이 개선되면서 국민 누구나 스포츠를 좀 더 쉽게 즐길 수 있고, 스포츠로 전국 방방곡곡이 꿈틀거리는 대한민국이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