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일 통화협상서도
日 “97년처럼 비협력” 위협

韓, 中과 300억달러 체결하자
日, 비로소 ‘스와프’ 액수 늘려

한국과 일본 간의 통화스와프가 오는 23일 만료 후 재연장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국에 대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일본의 고압적 행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서 거액의 단기자금을 일시에 빼내 외환위기 발생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바 있는 일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당시에도 고압적이고 냉랭한 반응으로 일관한 바 있다. 이번 한·일 통화스와프 재연장 협상 과정에서도 일본 측은 “한국이 아쉬우면 고개를 숙이고 재연장을 부탁해오면 검토해보겠다”며 사실상 한국 정책당국의 ‘백기 투항’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일 간 냉랭한 기류를 감안해 경제분야에서 한국의 기(氣)를 꺾어놓겠다는 심산으로 해석된다.

16일 기획재정부와 경제계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를 겪게 된 데는 일본이 10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일시에 인출한 것이 ‘결정타’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10월에 열린 한·일 재무장관 회담에서도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차가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펴낸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일본이 10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인출해 간 것이 결정타였다”며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당시 1997년처럼 협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일본 실무자의 발언은 당시 상황을 상기시켰다”고 회고했다. 일본과의 협상이 난항에 빠지자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국과의 협상을 시작했다. 중국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흔쾌히 승인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일본은 갑자기 고압적인 자세를 버리고 논의를 시작한 지 두 달만인 2008년 12월 한국과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일본의 이 같은 과거 행태가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오는 23일 한·일 통화스와프가 재연장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굴욕적으로 재연장을 사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경상수지 흑자 폭이 크다는 객관적인 여건 때문이 아니라,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다시 군국주의의 길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통화스와프 때문에 백기 투항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까지 최종 결정은 나지 않았으며, 협정 연장 여부에 대해 양국이 협의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협상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당국자의 외교적 수사(修辭)일 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향후 미국이 정책금리 인상을 할 경우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통화스와프가 많을수록 좋다”며 “그러나 일본의 과거 행태 등을 고려할 때 현시점에서 한·일 통화스와프의 재연장을 위해 굴욕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조해동·박수진 기자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