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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11월15일 제334호
2000年11月15日第334号 

[표지이야기] 편견인가, 꿰뚫어 본 것인가
[表紙話] 偏見か, 突き通して見たことか

미군 정치고문 제임스 맥의 보고서 “쿠앙남성 주둔 한국군은 무능·부패·잔혹”
米軍政治顧問ジェイムズ脈の報告書 “クアングナムソング駐屯韓国軍は無能·腐敗·残酷”


(사진/총을 맞은 채 연못 근처에서 발견된 퐁니·퐁넛촌 여성들.이 사진을 찍은 '본'은 “가운데 임신한 여성은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맞은 듯 머리앞이 날아가 있다”고 썼다)
(写真/鉄砲を当たったまま池近くで発見されたポングニ·ポングノッチォン女性たち.この写真を撮った '本'は “中姙娠した女性は近くの距離(通り)で鉄砲を当たったように頭前が飛んでいる”と書いた)


“한국군의 전투력은 타군보다 강하고, 무섭다. 한국군과는 접전하지 말라. 한국군 병사들은 잔인하다. 한국군은 약점을 찾아서 기습하거나, 저격을 해서 전투력을 약화시켜라.”
“韓国軍の戦闘力は他郡より強くて, 恐ろしい. 韓国軍とはせめより戦わないでね. 韓国軍兵士らは残忍だ. 韓国軍は弱点を捜して奇襲するとか, 狙い撃ちをして戦闘力を弱化させなさい.”

한 베트남전 참전용사는 최근 수기에서 월맹군사령부가 한국군을 이렇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한국군은 “용감하고, 멋있고, 친절하며, 인정이 많고, 예의 바른” 군대였다. 이같은 사실은 또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주월한국군사령부의 일관된 지휘방침으로도 입증된다는 것이다. 또한 베트남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던 미군과는 달리,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한국군은 베트남인의 정서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대민지원사업과 군사활동 등을 통해 그들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一ベトナム戦参戦勇士は最近手記でベトコン軍司令部が韓国軍をこんなに評価したと明らかにした. それによれば韓国軍は “勇ましくて, 格好よくて, 親切であり, 人情が多くて, 礼儀正しい” 軍隊だった. このような事実はまた ‘100人のベトコンを逃す限りがいても 1人の良民を保護しなさい’と言うズオル韓国軍司令部の一貫された指揮方針でも立証されるというのだ. またベトナム文化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米軍とは違い, 同じアジア人として韓国軍はベトナム人の情緒を正確に突き通していたから大民志怨辞業と軍事活動などを通じて彼らの感動を導き出すことができたと言う.

비아냥 섞인 부정적 평가
皮肉まじた否定的評価

그러나 <한겨레21>이 입수한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소의 베트남전 관련 문서들에서 미국이 평가한 한국군의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미군은 문서에서 한국군에 대해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주월미군, 남베트남 군대 등 연합군에 비협조적이었고, 베트남 민간인들을 상대로 잔혹행위를 했으며, 암시장 거래 등 각종 불법행위를 일삼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しかし <ハンギョレ21>が手に入れた米グックリブムンソギロックボグァンソのベトナム戦関連文書たちでアメリカが評価した韓国軍の姿はこれとは距離が遠い. 米軍は文書で韓国軍に対して “戦闘力が劣ることはもちろんズオル米軍, ナムベトナム軍隊など連合軍に非協調的だったし, ベトナム民間人たちを相手で残酷行為をしたし, 暗市場取り引きなど各種不法行為を事とした”と言う結論を下している.

미군은 한국군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몇몇 부분에서는 비아냥까지 섞어 비난하고 있다.
米軍は韓国軍に対して全般的に否定的な評価を下しているし, いくつかの部分では皮肉まで交ぜて責めている.

도대체 이런 정반대의 평가가 어떻게 가능할까.
一体こんな正反対の評価がどんなに可能だか.

파월한국군에 대한 미군쪽의 이같은 평가는 당시의 상황을 엄밀하게 객관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 이같은 평가에는 한국군에 대한 인종적 편견이 녹아 있을 여지도 많다. 특히 무엇보다 주월미군이 자신들의 군사적·정치적 실책을 한국군에 덮어씌우기 위한 방편으로 악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パウエル韓国軍に対する米軍側のこのような評価は当時の状況を厳密に客観的に表現したように見えない. またこのような評価には韓国軍に対する人種的偏見がとけている余地も多い. 特に何よりズオル米軍が自分たちの軍事的·政治的失策を韓国軍に被せるための方便に悪用された可能性もある.

그러나 <파월한국군전사> <해병전투사> 등 한국쪽의 공식적인 역사기록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한국군에 대한 미국쪽의 평가라는 점에서 이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것은 베트남파병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새로운 장을 연다는 의미가 있다는 게 <한겨레21>의 판단이다.
しかし <パウエル韓国軍戦死> <海兵戦闘社> など韓国側の公式的な歴史記録には全然登場しない, 韓国軍に対するアメリカ側の評価という点でなるありのまま公開することはベトナム派兵に対する歴史的評価に新しい章を相次ぐ意味があるというのが <ハンギョレ21>の判断だ.

한국군에 대한 평가는 1968년 2월12일부터 1969년 4월15일에 이르는 1년2개월 동안 다낭시에 파견된 미군 정치고문 제임스 맥이 주월미대사관 정치담당 참사관 니콜라스 손에게 보내는 장문의 보고서에 등장하고 있다. 평가대상 부대로는 당시 베트남 쿠앙남성 지역에서 작전을 벌인 한국군 해병 제2여단에 맞춰져 있다.
韓国軍に対する評価は 1968年 2月12日から 1969年 4月15日に至る 1年2ヶ月の間ダナンの時に派遣された米軍政治顧問ジェイムズ脈がズオル米大使館政治担当参事官ニコルラス手に送る長文の報告書に登場している. 評価対象部どおりは当時ベトナムクアングナムソング地域で作戦をした韓国軍海兵第2旅団に合わせられている.

미군은 크게 △한국 해병 제2여단의 전투력 및 전투태도 △주월미군과 남베트남군대와의 협조 관계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잔혹행위 △암시장 거래 등 전투와 무관한 불법행위 등을 주로 다뤘다.
米軍は大きく △韓国海兵第2旅団の戦闘力及び戦闘態度 △ズオル米軍とナムベトナムグンデとの協助関係 △ベトナム民間人に対する残酷行為 △暗市場取り引きなど戦闘と無関係な不法行為などを主に扱った.

먼저 한국군의 전투력에 대해 미군은 “베트콩 등 적들에 대한 주요 군사행동을 주도적으로 취하기를 꺼린다”고 분석했다. 1968년 3월18일치 보고는 “한국군은 정기순찰과 매복을 하기 위해 그들의 사령부를 떠나기를 꺼려했고, 베트콩의 매복을 매우 두려워했으며 (베트콩이) 밤에 나타나는 상황에 대응하는 것을 피했다”고 썼다. 같은달 25일치 보고에서는 “쿠앙남성 자문단이 (베트콩에 대한) 수색과 파괴활동을 요청했지만 이를 무시했다”는 언급도 등장한다.
先に韓国軍の戦闘力に対して米軍は “ベトコンなど敵方に対する主要軍事行動を主導的に酔うのを憚る”と分析した. 1968年 3月18日分見てからは “韓国軍は定期巡察と待ち伏せをするために彼らの司令部を発つのを憚ったし, ベトコンの待ち伏せを非常に恐ろしがったし (ベトコンが) 夜に現われる状況に対応することを避けた”と書いた. 同月 25日分報告では “クアングナムソング自問団が (ベトコンに対する) 捜索と破壊活動を要請したがこれを無視した”と言う言及も登場する.

“한국군보다 베트공이 더 낫다”
“韓国軍よりベトコンがもっとましだ”


(사진/미군 정치고문 제임스 맥의 보고서는 “한국군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증오심이 대단히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写真/米軍政治顧問ジェイムズ脈の見てからは “韓国軍に対するベトナム人たちの憎悪心がすごく深刻だ”と診断する)


미군은 또 한국군이 주월미군과 남베트남군대와의 협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연합군 사이에 이뤄져야 할 정보 무료교환 요청이나, 남베트남 정부 관료들로 구성된 성(省) 자문단의 권유나 요청에 대해서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남베트남 정부에 대한 한국군의 자세도 문제삼고 있다.
米軍はまた韓国軍がズオル米軍とナムベトナムグンデとの協助もまともにできなかったと評価している. 連合軍の間に成り立たなければならない情報無料交換要請や, ナムベトナム政府官僚たちに構成された性(省) 自問団の勧誘や要請に対しても無視する態度を見せたというのだ. ナムベトナム政府に対する韓国軍の姿勢も問題視している.

“많은 한국군들이 남베트남 정부가 자유롭고 자율적인 정부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대부분의 한국군은 남베트남 경찰과 관련된 법률을 무시한다. 한국군 책임전술지역에서 남베트남 군경찰의 교통통제권한과 도로차단 기능을 뺏어버리는 것이 그 한 가지 예이다.… 김연상 준장도 (연합군들이 참여하는) 지휘관 회의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것은 그에게 남베트남의 주권에 대한 강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1969.7.9)
“多くの韓国軍たちがナムベトナム政府が自由で自律的な政府というの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何種類証拠がある. 大部分の韓国軍はナムベトナム警察と係わる法律を無視する. 韓国軍責任戦術地域でナムベトナム郡警察の交通統制権限と道路遮断機能を奪ってしまうことがその一つはいだ.… 金連想准将も (連合軍たちが参加する) 指揮官会議に含ませなければならない. これは彼にナムベトナムの株券に対する強い認識を植えてくれることができる.”(1969.7.9)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잔혹행위는 가장 심각하게,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韓国軍のベトナム民間人に対する残酷行為は一番深刻に, そしてしばしば登場する主題だ.

“지난 두달 사이 한국군 정찰대가 마을에서 발생한 조그마한 총격전에 대한 보복으로 포로를 살해한 사건이 최소한 세번 발생했다. 가장 불명예스러운 사건은 1968년 2월12일 퐁니(Phong Nhi)마을에서 일어났다. 그곳에서는 79명(또는 69명)의 여성과 아이들이 죽음을 당했다. 베트남 농민들은 한국군을 매우 두려워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군보다 베트콩이 더 낫다고 얘기했다.”(1968.3.18)
“去る2ヶ月の間韓国軍偵察隊が村で発生したやや小い銃撃戦に対する仕返しで虜を殺害した事件が最小限三度発生した. 一番不名誉な事件は 1968年 2月12日ポングニ(Phong Nhi)村で起きた. その所では 79人(または 69人)の女性と子供達が死にあった. ベトナム農民たちは韓国軍を非常に恐ろしがった. 多くの人々は韓国軍よりベトコンがもっとましだと話した.”(1968.3.18)

“한국군 부대가 디엔 반(Dien Van)현에 주둔했고 그들은 우리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우리 마을로 들어와서 주민들을 집에서 끌어내고 총을 쏴 사람들을 죽이고 가족들의 몸을 자르는 등 야만적인 행위를 했다. 한국군 부대는 시체를 그대로 두거나 숨기고 그 현장을 떠났다.”(1969.2)
“韓国軍部隊がデ-には半分(Dien Van)現に駐屯したし彼らは私たちの地域で作戦を遂行した. 我が村に入って来て住民たちを家で引っ張り出して鉄砲をうって人々を殺して家族たちの身を切るなど野蛮的な行為をした. 韓国軍部隊は死骸をそのまま置くとか隠してその現場を発った.”(1969.2)

미군과 남베트남 군 수뇌부들은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가혹하게 다루는 것은 “게릴라전의 정치적인 면을 이해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군의 잔혹행위로 인한 결과로서 베트남 주민을 상대로 한 심리전에서도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米軍とナムベトナム軍首脳部たちは韓国軍がベトナム民間人を苛酷に扱うことは “ゲリラ戦の政治的な面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によること”という分析も出している. これと共に韓国軍の残酷行為による結果としてベトナム住民を相手にした心理戦でも失敗したと評価している.

“한국군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증오심은 너무나 심각해서 주민들은 베트콩이 설치한 지뢰나 그들이 저지른 테러까지 종종 한국군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베트콩의 정치적 선동활동에 의해 ‘박정희 용병’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얻은 한국군들은, 도저히 가망성은 없지만, 만일 그들이 위대한 전사 또는 인도주의자로 돌변한다 하더라도 주민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1969.4.23)
“韓国軍に対するベトナム人たちの憎悪心はあまりにも深刻で住民たちはベトコンが設置した地雷や彼らがやらかしたテロまでたびたび韓国軍のせいにしている. ベトコンの政治的煽動活動によって ‘朴正煕用兵’というもっともらしい名前を得た韓国軍たちは, 到底あてはないが, もし彼らが偉い戦死またはヒューマニストにうって変わると言っても住民たちが口は心の傷は絶対消されないだろう.”(1969.4.23)

피난민 처리 무원칙한 대응
避難民処理無原則した対応


(사진/베트남전 기간중 미군 수륙양용차와 함께 협동작전을 벌이는 한국 해병들)
(写真/ベトナム戦期間中米軍水陸両用車とともに協同作戦をする韓国海兵たち)


“베트남 관리들과 베트남 민간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반한감정의 깊이와 강렬함 때문에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다.… 실상 한국군이 동맹군으로서 행동하기보다는 아시아의 점령군과도 같이 행동하는 상황이 계속됐기 때문에 베트남 관리들의 경고는 효과를 볼 가능성이 없었다.”(1969.4.25)
“ベトナム役人たちとベトナム民間人たちの間に広がっている反韓国感情の深みと強烈から何回も警告を送った.… 実際韓国軍が同盟軍として行動するよりはアジアの占領軍とも一緒に行動する状況が続いたからベトナム役人たちの警告は効果を見る可能性がなかった.”(1969.4.25)

미군은 한국군의 용감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표현을 하고 있지만, 그 용감성 역시 잔혹행위와 연관돼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물론 우리는 한국군의 용감성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우리가 몇몇 사건을 통해 보았듯이 한국부대는 공산주의자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무고한 민간인들의 죽음과 손상에는 무관심했다”는 식이다.
米軍は韓国軍の勇敢性に対しては肯定的な表現をしているが, その勇敢性も残酷行為と連関されて使われている. 例えば “もちろん私たちは韓国軍の勇敢性を高く評価する”と言いながらも “私たちがいくつかの事件を通じて見たように韓国部隊は共産主義者を殺すために血眼になっていたし罪のない民間人たちの死と損傷には無関心だった”と言うふうだ.

피난민 처리에 대한 무원칙한 대응도 비판거리로 등장한다. “한국군의 인구통제 방법은 오히려 한국군 책임전술 지역 안에서 베트콩에 대한 동조자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됐다.… 한국군은 작전이 불필요한 지역에서도 피난민을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호이 안(Hoi An) 근처의 캄 하이(Cam Hai)와 캄 안(Cam An)마을에서 한국군이 베트남 농부들을 특별한 이유없이 이동시켰다. 단순히 그들의 책임전술지역을 늘리고 농부들을 인구가 집중된 도시지역으로 밀집시키기 위해서였는데,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재정착을 위해 사용될 영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1968.3.18)
避難民処理に対する無原則した対応も批判距離(通り)で登場する. “韓国軍の人口統制方法はむしろ韓国軍責任戦術地域の中でベトコンに対する同調者を増加させる要因になった.… 韓国軍は作戦が不必要な地域でも避難民を作り出す. 最近にはホイ中(Hoi An) 近くのカムこんにちは(Cam Hai)とカム中(Cam An)村で韓国軍がベトナム農夫たちを特別な理由のなく移動させた. 単純に彼らの責任戦術地域をふやして農夫たちを人口が集中された都市部で密集させるためだったが, これは非常に深刻な問題だ. 再定着のために使われる領土が減るからだ.”(1968.3.18)

암시장에 물건을 내다팔거나, 물건을 공공연히 훔치는 등의 ‘도덕적 해이’는 보고서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단골메뉴다.
暗市場に品物を売るとか, 品物を露に盗むなどの ‘道徳的な緩み’は報告書で何回言及される行き付けメニューだ.

“한국군의 암시장 운영은 디엔 반 지구, 빈 수엉(Vinh Xuan)과 라이 나이(Lai Nghi)마을에서 한창 진행중인 것이 명백하다. 우리는 이 마을들에서 한국군들이 소다수, C레이션, 쌀을 대규모로 팔고 있다는 보고서를 끊임없이 받고 있다. 1969년 3월13일 아침 우리는 한국지프차가 라이 나이마을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뒤 마을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 주민들이 마을에 주차돼 있는 한국 군지프에서 맥주와 소다수 상자들을 가지고 오는 것을 목격했다. 지프차를 조사하면서 우리는 뒷좌석이 전부 맥주와 소다수 박스로 채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1969.3.14)
“韓国軍の暗市場運営はデ-には半分地球, ヴィンスオング(Vinh Xuan)とライ年(Lai Nghi)村で盛んに進行中のことが明白だ. 私たちはこの村たちで韓国軍たちがソーダ水, Cレーション, 米を大規模で売っているという報告書を絶えず受けている. 1969年 3月13日朝煎ずる韓国ジープがライ年村に現われたという事実を伝えて聞いた後村を訪問した時ベトナム住民たちが村に駐車されている韓国郡ジープでビールとソーダ水箱たちを持って来ることを目撃した. ジープを調査しながら私たちは後座席が全部ビールとソーダ水ボックスで満たされていることを見つけた.”(1969.3.14)

“한국 해병 제2여단 소속 병사들이 포획한 쌀을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다는 보고서를 받았다. 쌀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마을 사람들이 사지 않으려 하자 한국군들은 남베트남군과 민병대를 상대로 이 쌀을 팔려 했다. 그들도 거부하자 한국군들은 민병대들이 기지로 돌아가는 못하도록 했다. 같은날 한국군들은 주월미군사령부 기지로 찾아와서 관할 벙커 근처에 수류탄을 투하할 것이라고 위협했으며 이후 장전한 권총을 꺼내서 수류탄을 쏘겠다며 협박했다. 이 사건과 연루된 한국군들은 대부분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1969.3.16)
“韓国海兵第2旅団所属兵士らが捕獲した米を村人々に売ったという報告書を受けた. 米の価格が高過ぎて村人々が買わないようと欠点韓国軍たちはナムベトナムグンと民兵隊を相手にこの米を売れてした. 彼らも拒否すると韓国軍たちは民兵隊たちが基地に帰るできないようにした. 同日韓国軍たちはズオル米軍司令部基地に尋ねて来て管轄バンカー近くに手榴弾を投下すると脅威したし以後装填したピストルを取り出して手榴弾をうつと脅かした. この事件と掛かり合った韓国軍たちは大部分は酒に酔った状態だった.”(1969.3.16)

암시장에서의 활약
暗市場での活躍


(사진/잿더미가 된 퐁니·퐁넛촌 주민.이 상황은 <한겨레21>이 취재한 생존자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写真/灰燼になったポングニ·ポングノッチォン住民.この状況は <ハンギョレ21>が取材した生存者たちの証言と一致する)


암시장 운영과 관련해 보고서(1969.1.30)는 “한국군이 가장 성공적으로 얻어낸 성과는 사실상 (암시장 등을 통한) 경제적인 것”이었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暗市場運営と係わって報告書(1969.1.30)は “韓国軍が一番成功的に得た成果は事実上 (暗市場などを通じる) 経済的なこと”だったと皮肉っている.

이와 관련해 한국군들이 베트콩들을 상대로 노획한 쌀을 처리하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대목도 있다. 문서에 따르면 1969년 1월 한국 해병 제2여단은 베트콩이 숨겨놓은 225톤의 쌀 은닉처를 발견해 쌀을 부대로 후송했다. 쿠앙남성 성장(省長)은 한국군에 노획한 쌀 일부를 피난민에게 먹이는 데 쓸 수 있도록 요청했다. 한국군은 어디에 쌀이 필요한지를 여단에 보고해야 하며 한국군이 주민들에게 직접 쌀을 배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뒤 제2여단은 피난민들에게 먹일 목적으로 300포대의 쌀을 주민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한국군은 빈 포대 300개가 반환될 때까지 배포를 중단했고, 대신 이 쌀을 암시장에서 베트남 정부의 공식가격보다 아주 낮은 가격으로 팔았다는 것이다.
これと関して韓国軍たちがベトコンたちを相手に捕獲した米を処理する過程を詳らかに記録した書き入れ時もある. 文書によると 1969年 1月韓国海兵第2旅団はベトコンが隠しておいた 225トンの米隠匿先を見つけて米を部どおり後送した. クアングナムソング成長(省長)は韓国軍に捕獲した米一部を避難民に食べさせるのに使うことができるように要請した. 韓国軍はどこに米が必要なのかを旅団に報告しなければならないし韓国軍が住民たちに直接米を配布すると明らかにした. その後第2旅団は避難民たちに食べさせる目的に 300砲台の米を住民たちに送った. しかし韓国軍は空の砲台 300個が返還されるまで配布を中断したし, 代わりにこの米を暗市場でベトナム政府の公式価格よりとても低い価格で売ったというのだ.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한국군을 묘사한 대목도 많다. “1969년 3월18일 한국군 부대 경계선 안에 침입한 돼지를 베트남 농부가 데려가려 하자, 한국군은 그 돼지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1969년 3월17일 수엔 쿠앙(Xuyen Quang)마을에 있던 한국군들이 맥주를 마시고는 돈을 지불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또 그 가게에서 일하는 소녀한테서 돈을 훔쳤다고 한다.” “한국 병사들이 라디오·맥주·쇠고기·치즈·닭고기 등을 훔쳤다”는 표현도 나온다.
品物を盗むとか奪う韓国軍を描いた書き入れ時も多い. “1969年 3月18日韓国軍部隊境目の中に侵入した豚をベトナム農歌連れて行こうと欠点, 韓国軍はその豚を返すことを要求した.” “1969年 3月17日ことにはクアング(Xuyen Quang)村にあった韓国軍たちがビールを飲んでからはお金を支払うことを拒否した. 彼らはまたその店で働く少女からお金を盗んだと言う.” “韓国兵士らがラジオ·ビール·牛肉·チーズ·鳥肉などを盗んだ”と言う表現も出る.

미군은 한국군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당히 과격한 제안을 하고 있다. 즉, 한국군을 후방으로 보내자는 주장이다. “정치적·군사적 상황이 허락한다면 한국 해병 제2여단은 평정지역이 아닌 지역으로 재배치되어야 하며 적어도 동등한 규모의 다른 여단으로 교체돼야 한다”(68.7.27)거나 “베트콩이 100% 장악하고 있어 아무나 닥치는대로 죽일 수 있는 곳을 한국군의 책임전술지역으로 하자.”(1969.4.23)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米軍は韓国軍の問題点を解決するための方案によほど過激な提案をしている. すなわち, 韓国軍を後方に行かせようという主張だ. “政治的·軍事的状況が承諾したら韓国海兵第2旅団は平定地域ではない地域に再配置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し少なくとも同等な規模の他の旅団に入れ替え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68.7.27)か “ベトコンが 100% 掌握していて誰でも次から次へ殺すことができる所を韓国軍の責任戦術地域にしよう.”(1969.4.23)増えた主張さえ出ている.

미군은 결론적으로 “상급 사령부가 한국군의 과거행태를 고려해 이 지역의 평정작전에 다른 연합군 군대를 대대적으로 투입하는 것을 즉각적인 관심사항으로 삼지 않는 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米軍は結論的に “上級司令部が韓国軍の過去行動を考慮してこの地域の平定作戦に他の連合軍軍隊を大大的に投入することを即刻な関心事項にしない限り状況が改善しないこと”と見込んだ.

채명신 총사령관의 반박
チェ名臣総司令官の反駁





(사진/어머니와 함께 흉측한 모습으로 죽은 아이(맨위).미군들이 주검을 수습하고 있다(아래). 작전에 참여했던 장교들은 이곳이 미군 자매부락이었다고 회고했다)
(写真/お母さんと共にいやらしい姿で死んだ子供(一番上).米軍たちが死骸を収まっている(下の). 作戦に参加した将校たちはこちらが米軍姉妹部落だったと回考した)

그러나 당시 파월한국군 총사령관이었던 채명신(74·예비역 중장)씨는 <한겨레21>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미군쪽의 이런 평가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채씨는 “베트남전의 성격 규정에서부터 한국군에 독자적인 작전권 행사를 허용할지 여부 등 크고 작은 문제를 두고 주월미군과 주월한국군 사이에는 심각한 의견대립이 있었다”면서 “(이 때문에) 미군이 비판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군이 아시아문화권을 이해하지 못하는데다 게릴라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탓에 나중에는 한국군이 채택했던 전술개념 등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었다”고 덧붙였다.
しかし当時パウエル韓国軍総司令官だったチェ名臣(74·予備役中将)さんは <ハンギョレ21> 取材陣と会った席で米軍側のこんな評価を正面から駁した. チェさんは “ベトナム戦の性格規定から韓国軍に独自の作戦圏行事を許容するか可否など多様な問題を置いてズオル米軍とズオル韓国軍の間には深刻な意見対立があった”と “(このために) 米軍が批判的なことはもしかしたら当たり前の事”だったと言った. 彼はまた “米軍がアジア文化圏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うえゲリラ戦の本質に対する理解が不足だったせいに後には韓国軍が採択した戦術概念などを全面的に受け入れたりした”と付け加えた.

전투력 문제에 대해 그는 “해병대의 경우 적극적인 전투태세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오히려 참전 초기 성급하게 공격에 치중한 나머지 베트콩들의 매복이나 기습공격에 다수가 사망한 사건 등을 허위보고하는 사례도 발견돼 3명 이상의 적군을 추격할 때는 사령관의 허가를 받으라는 무리한 지시를 내려야 할 정도였다”고 반박했다.
戦闘力問題に対して彼は “海兵隊の場合積極的な戦闘態勢を取り揃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いうことは話にならない”と “むしろ参戦初期性急に攻撃に重点を置いたあげくベトコンたちの待ち伏せや奇襲攻撃に多数が死亡した事件などを虚偽報告する事例も発見されて 3人以上の敵軍を追撃する時は司令官の許可を受けなさいという無理な指示を下さ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だった”と駁した.

그는 그러나 한국군이 암시장 거래 등을 벌였다는 등의 미군쪽 지적에 대해서는 “전쟁터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라며서 한국군에도 이같은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彼はしかし韓国軍が暗市場取り引きなどをしたというなどの米軍側指摘に対しては “戦地で一般的に現われる道徳的な緩み現象”イラミョで韓国軍にもこのような不法行為があったという点を認めた.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ギムチァングソック記者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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