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안타까운 우리 그릇문화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식탁 차지
日서 뿌리 내린 조선그릇과 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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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처음 방문한 한 일본인 친구가 한국의 풍광과 유적뿐 아니라 한국 문화 전반에 흠뻑 젖어서 돌아갔다. 특히 미식가를 자처하는 그 친구는 각 지방마다 특색 있는 우리 음식 맛에 엄지손가락을 쉴 새 없이 치켜들었다. 또 한 사람의 친한파 지식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단 일주일 새 못 말리는 한류 팬이 되어버린 그 친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나라 식당의 그릇문화였다. 관광지 어느 식당에 가도 스테인리스 밥그릇과 플라스틱 반찬 그릇을 내놓는 일을 보고 ‘조금 의아했다’고 한다. 일본인이 남의 집안일을 ‘조금 의아했다’고 표현하면 그건 ‘경악했다’는 게 진심이라고 보면 된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일본의 찬란한 도자기 문화의 본가가 한국임을 아는 일본 사람 눈에는 한국 본토의 스테인리스 밥그릇은 분명 이해하기 힘들 게다. 조선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간 그때부터 일본은 그릇다운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도자기 산업이 전통적으로 발달한 곳이 사가, 야마구치, 가고시마 등 주로 규슈 등 서일본 지역인 이유는 주로 그쪽 지역의 다이묘(大名)들이 조선의 도예가들을 끌고 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삼평(李參平)이다. 사가현 지방의 영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에 의해 아리타(有田) 지방으로 끌려간 이삼평은 일본에서 도조(陶祖)로 불리며 지금도 추앙받는 존재다. 그가 1616년 아리타 이즈미야마(泉山)에서 백토(白土)를 발견하고, 근처에 가마를 짓고 자기를 굽기 시작한 것이 그 후 유럽의 상류층 사회를 열광시킨 ‘아리타야키(有田燒)’의 시작이다. 그가 만든 백자는 질 좋고 아름다워 생산되자마자 대히트를 친 모양이다. 첫 생산 다음해부터 그 지역 세수가 35배로 급증했다. 이때 나베시마는 조선 도공 7명에게 성(姓)을 하사하고, 이삼평에게는 자손 대대로 삼석영대(三石永代)의 문서도 함께 내린다. 무사계급과 대대손손 녹봉을 보장하는 엄청난 특권이었다. 이삼평 가문의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선조의 이름을 그대로 쓰면서 조선 도자기의 맥을 잇고 있다. ‘아리타야키’는 이후 주요 수출항인 근처 이마리(伊万里)항의 이름을 따서 ‘이마리 자기’로 불리며 1730년까지 70여년간 동인도회사를 통해 700만개의 도자기를 동남아시아, 인도, 남아프리카, 유럽 등지로 실어 보내게 된다. 사가현을 비롯한 서일본의 번들은 도자기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그것이 막부 타도와 일본 근대화의 동력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얼마 전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백자장(白磁匠) 백영규 선생을 만났다. 인사동에서 그가 연 ‘달항아리전(展)’에서였다. 3대에 걸친 전승과 수련으로 조선백자와 다완(茶碗)을 완벽하게, 아니 더욱 맛깔나게 재현해낸 그의 60년 도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는 전시회였다. 선생은 1938년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났다. 도공인 할아버지 아래서 일을 배우던 부친이 열 일곱 살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홋카이도의 개간지에서 30년 가까이 벌채일을 했기 때문이다.

1945년 광복 후 귀국해 김천의 가마를 인수한 아버지를 따라 그도 도자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열 네 살이었다. 하지만 도자기 일을 하면서 깊은 회의가 왔다고 한다. 한두 달치 월급을 선불로 받아 쥔 도공들이 그날로 사라졌다가 탕진하면 다시 돌아와서 마지못해 일감을 잡는 그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도공의 맥을 잇는 것을 아버지도 탐탁잖게 여겼다. ‘진흙만지는 자’라는 뜻의 ‘점놈’이라 놀림감되는 그 운명을 물려주기 싫었기 때문이란다. 가출을 거듭하던 그였지만, 매번 돌아와 불을 지피는 곳은 도자기 굽는 가마 앞이었다. 그래서 인간문화재까지 되었다. 그러나 백영규 같은 이가 몇 명이나 될까. 일본에 끌려간 도공들은 영웅이 되고, 한국에 남은 도공들은 놀림감이 되었다. 일본이 빼앗아간 조선 그릇은 국보가 되었는데, 한국인의 밥상에는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놓여 있다. 일본인의 다탁(茶卓)에는 조선 도공의 후예들이 만든 예술품이 놓여 있는데 한국인의 손에는 종이컵과 머그가 들려 있다. 부끄럽고 기가 막힌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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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