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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7일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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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朝鮮人들의 95~99%가 '문맹(文盲)'이었다
조선은 스스로 망한 것이다. 일본을 탓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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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없는 기회! 24일간의 특별할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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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치하(日帝治下) 1920년대 조선의 인구는 2천만 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교육을 받은 사람은 1%에 불과했다고 한다. 즉 99%의 조선인들이 글을 읽을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일례로 1922년 1월5일자 <동아일보> 사설을 보면 “신문 한 장은 고사하고 일상 의사소통에 필요한 서신 한 장을 능수하는 자가 역시 100인에 1인이면 다행이라 하겠도다”라며 참담한 조선인들의 문맹(文盲)상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조선 말의 문맹률은 日帝시대인 1920년대 문맹률(조선시대 인구의 95%가 글을 읽지 못했다고 함)과 거의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은 가히 1~5%만을 위한 국가였다.  조선은 스스로 망한 것이다. 일본을 탓할 것도 없다. 그럼 일본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개항(開港) 전 일본인들의 전반적인 의식수준은 조선과 비교해 이미 서양(西洋)문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일본의 국민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幕府 시대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일본인들의 비율은 70%나 됐다. 당시 일본인들의 약 10%는 사무라이였는데 이들은 識者계급이었다. 농·상·공에 종사한 사람도 문자(文字)를 알았다”고 밝히고 있다.
 
명치유신(明治維新) 이전 도쿠가와 幕府시대 사무라이들을 칼부림이나 하는 무식한 사람들로 일본을 잘못 보는 경우도 없다. 明治維新기의 일본인들은 양반이 다스리던 조선조 백성들보다도 문맹률이 훨씬 낮았다. 특히 지방 영주 등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남긴 글과 예술품들을 봐도 그 수준이 매우 높아 이들이 全人的 교양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朝鮮이 신미양요(辛未洋擾)와 병인양요(丙寅洋擾)를 통해 척화비 세우기에 열을 올리기 훨씬 전인 1774년 네덜란드로부터 들여온 서양 의학서적을 사전과 통역 없이 장장 4년에 걸쳐 일본어로 번역해냈다.
 
‘해체신서’(解體新書)로 알려진 이 의학(醫學) 서적을 번역한 사람은 스키타 켄바쿠(杉田玄白 )란 인물로 그와 그의 동료들이 도전한 네덜란드 의학서적의 원제는 ‘Tafel Anatomy’였다. 解體新書가 번역되면서 일본의 의학기술은 급속하게 발전했으며, 난학(蘭學, 네덜란드 학문) 보급의 계기가 됐다. 그러나 번역은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겐바쿠가 이 의학서적을 번역하려고 했던 이유는 인체 해부가 그 계기였다고 한다. 손에 넣은 ‘타펠 아나토미아’의 해부도가 눈앞의 인체와 모두 일치했기 때문이다.
겐바쿠 등은 서양 의학서적의 이 같은 정확성에 놀라 번역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번역을 시작하자 “노와 키가 없는 배를 대해로 끌고 나온 것처럼 망망대해에서 의지할 데 없이 기가 막히기까지 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그 어려운 의학서적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당시 겐바쿠는 의사였기 때문에 책 사이에 끼여 있는 인체(人體)해부도를 보고 장기(臟器)의 명칭을 대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번역한 장기명(臟器名)을 모두 본문에 대응시키고 번역팀 내에서 네덜란드어를 가장 잘하는 마에노 료타쿠(前野良澤)가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일본어로 번역시켰다.
 
그러나 처음에는 “눈썹에는 눈 위에 난 털이다”라는 문장 하나도 풀지 못한 채 몇날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기를 1년을 버티자 하루에 10줄 정도를 번역할 수 있게 됐고, 4년 동안 총 11회에 걸친 수정을 거쳐 1774년 마침내 ‘解體新書’를 간행했다.
 
‘解體新書’를 만들면서 일본어에 없는 새로운 단어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거의 한자(漢字)로 조어됐으며 신경-연골-동맥 같은 것은 오늘날에 다른 한자문화권에 퍼져 쓰이고 있다.
 
‘쇄국’(鎖國)이란 단어는 1801년 시키키 다다오가 캠벨의 일본지(日本志)를 번역할 때 처음 사용한 것이 최초였다. 그러나 일본의 에도 막부는 동시대의 조선왕조와 달리 활발하게 국제교류를 추진하고 무역을 했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중국, 루큐(現 오키나와 섬)가 교역대상국이었다. 특히 일본이 수출한 동(銅)의 경우 유럽 경제에까지 영향을 주었고, 동전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화폐로 유통됐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 등에서는 소화(昭和) 시대 초기까지 일본의 동(銅)이 사용됐다. 일본은 또 국제무역을 통해 국내에도 수많은 상품을 수입했다.
 
예를 들어 에도의 유력 상인은 외제(外製) 향수를 바르고 산호 비녀를 꽂고 유리잔에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한편,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吉川宗, 1716~1745년)의 시대에는 외국상품에 대한 수입제한(輸入制限)이 완화되어 漢字로 번역된 유럽서적을 비롯해 페르시아어, 베트남의 코끼리와 낙타 등 진기한 동물까지 유입됐다.
 
요시무네는 또 스스로 천문학(天文學), 역학(曆學), 법학(法學)을 익혀 스스로 강우량을 조사해 홍수를 예상했으며, 서양식 승마를 배우고 부하에게 네덜란드어를 배우게 했다.
 
일본의 현대화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흔히 화혼양재(和魂洋才)를 내세운다. ‘일본의 정신’에다 ‘서양의 기술’을 합쳤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의 이 같은 정신은 서양 학문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그대로 반영됐다. 일례로 ‘철학’(哲學)이란 단어는 일본인들이 서양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든 단어다. 계몽가 니시 아마네(西周)가 명치유신 초기 ‘백일신론’(百一新論)이란 저서에서 서양 개념인 ‘philosophy’를 ‘철학’으로 번역한 것이 처음이었다.
 
‘사회’(社會)도 마찬가지다. 신문기자 후쿠치 겐이치로(福地源一郞)가 1875년 마이니치(每日)신문에 사용하면서 서양 개념인 ‘society’에 해당하는 동양 한자권의 언어로 정착됐다. 물론 일본인들의 이 같은 조어(造語)능력의 원천은 漢字를 사용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韓日양국을 비교하면서 흔히들 빠지는 한 가지 착각이 있다. 그것은 바로 ‘朝鮮이 쇄국정책(鎖國政策)을 버리고 日本보다 먼저 개항(開港)을 했더라면 이후의 역사(歷史)는 크게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歷史에 假定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스스로의 과거(過去)와 현재(現在)를 객관화(客觀化)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아울러 일본과의 격차를 줄인 이승만의 건국(建國), 박정희의 근대화(近代化)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리고 노예국가 北韓이 아니라 大韓民國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참고로 이승만 대통령은 의무교육제도입 등 근대적 교육제도의 완비를 통해 교육적 기적을 이뤄냈다. 李 대통령의 혁명적 교육개혁결과 해방직후 78%였던 문맹률은 1959년에는 10%로 급감됐으며, 대학생의 수는 12배나 증가해 고도성장의 기초가 됐다. 휴전직후 엄청난 재정적 압박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으로 초등학교교사들의 봉급을 삭감하는 안건을 李대통령이 강력하게 제지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교육에 대한 李대통령의 열정은 탁월했다.>

 
다시없는 기회! 24일간의 특별할인展
[ 2014-07-15, 12:10 ] 조회수 : 3148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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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전독조   2014-07-15 오후 10:35
망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리석은 국민이 가만히 있으면 그냥 그렇지. 망하는 것이 무엇인가. 누군가가 어리석은 놈을 잡아 먹어 어리석은 놈이 망하지. 원 참 잘난 놈이나, 못 난 놈이나 뭘 알고 좀 이야기 해라, 어리석은 놈을 잡아 먹는 놈이 잘난 놈이냐, 약한 놈을 잡아 먹는 놈이 잘난 놈이냐, 왜 이렇게 정의도 모르고 공의도 모르고 자기를 비하하는 놈들만 넘쳐 나냐.에라이 못난 놈들아, 정의도 모르고, 공의도 모르고, 잘난 놈, 힘 있는 놈만 쳐다 보는 쪼다들아. 뭐 문맹이면 어떠냐, 지렁이가 뭘 알아서 꿈틀대냐. 어리석은 놈들 눈에는 뭘 보이는게 없지. 어떤 놈들이 어리석은지, 배운 놈이냐, 못 배운 놈이냐, 어리석은 자는 배운 놈에서 나오지, 못 배운 놈에서는 어리석은 놈이 나올 수가 없다. 원래 어리석은 자라는 정의 자체에 배우고도 배운바를 모르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놈이 어리석은 자이기 때문이지. 못 배운 놈은 그냥 무식한 놈에 불과하지, 무식한 놈하고 어리석은 놈하고는 다르지, 그것도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거라. 지봉씨는 배운 어리석은 놈이지.
  zuocap   2014-07-15 오후 7:56
 나는 왜정때 일본의 우민화 정책으로 조선사람들이 배울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말하곤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왜정때 신식학교룰 세워 가르치기도 했으니까...
위의 본글 내용으로 보아서도 구한말에 이미 문맹율이 높았던것을
알 수 있다.
30년대 농촌계몽운동을 주제로한 최은희 주연의 영화를 보면
시골 어른들이 글을 몰라 출가한 딸에게서 온 언문편지를 학당에서
공부하는 어린 여학생으로 하여금 읽게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녀의 낭독을 듣고서 나누던 대화...
"서양에선 여자도 배워 의사도 되고 변호사도 된다더라..."
  jibong   2014-07-15 오후 6:17
구한말은 모르겠습니다.
내가 실제로 경험한 것은 1960년대 초반까지 논산훈련소에 공민학교가 있었고 거기서는 징집되어오는 장정들 가운데 한글로 자기의 이름도 못쓰는 사람들을 골라 2개월 도는 3개월간 한글만은 익혀 훈련병으로 집어넣었는데 그 인원이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게 1963년 또는 1965년 까지 계속되었어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까지 원어민 강사로 영어를 가르치니 이 나라가 저절로 그렇게 잘 사는 나라로 아는 젊은 분들 너무 기가 차 말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지금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50%도 넘을 지경인데도 자신보다 3대쯤 전의 할아버지께서 써두신 글은 읽지 못해요. 왜냐 그게 한문으로 쓰여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 세계 어느 나라의 대졸자가 자신의 고조부가 쓴 글을 읽지 못하는 나라가 있습니까? 저는 모르는데 아르켜 주십시요.
그러니 우리나라는 아직도 문맹률이 90%는 되는 나라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고조부께서 쓰신 글을 읽지 못하고 이른바 학자라는 분들이 퇴계도 율곡도 못 읽습니다.
이러고서도 문명국이라고요? 영미에서는 고등학교에서도 라틴어를 가르쳐요.
앞으로 황우여는 이걸 해결할까요? 그럴 능력이 충분해서 지명했겠지요?
  wicks   2014-07-15 오후 6:03
영어 배우려는 노력의 100분지 1 이하의 한자 교육 투자로, 언어 능력과 사고력을 키워주자는 제언과 주장에 한사코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중국어 배우겠다고 중국에 유학하느니, 틈틈히 한자 공부해서 똑똑해지자는 게 뭐가 잘못되었나? 배워서 남 주나!
  얼핏보다가   2014-01-10 오전 10:28
최빈국에서 이룬 대한민국의 산업화기적....
90년대부터 정보화라는 소용돌이시대에서 뒤떨어지지 않고 세계도처에서 경쟁가능하게한 최고의 수단은....
아무리보아도, 세종대왕의 한글창조이고....
이승만의 건국초기의 근대적 교육제도는 물론
한자위주에서 한글위주 교육으로 혁신적으로 전환했던 박정희대통령의 '영웅적 결단이 새삼 느껴진다.

어린시절/젊은시절부터 투자한 한자공부부터..한자로 표기 가능한 웬만한 단어는 무조건 한자로만 적기도 했었고...옛문헌부터 한문 자체를 스스로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건만 한자/한문이라는 그 엄청난 벽에 고전했던 과거가 ....학문이든 기술이든 평생공부라는 시간투자에서 솔직히 후회스러울 정도다.
모르긴 몰라도, 한자를 잘 안다는 조갑제대표를 포함하여 여러 노장년층이... 일년에 몇페이지 장 되지도 않는 한두권정도의 옛 한문문헌를 읽는데 그친다든지...한정된 한자실력으로 대충 짐작하는 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한자실력을 가지고 한자위주교육으로 가야한다는 발상을 어찌 박정희대통령이 몰랐으랴...
그래서 한글학자들까지도 의외의 충격으로 까지 여겨질 솔선수범한 박정희대통령의 한글현판 보급 /한글위주 교과서 변경등...시대를 앞서가는 지도자의 안목은 따로 있는법.
  아즈라엘   2014-01-10 오전 10:00
양반을 중심으로 상놈, 그리고 여자를 차별했던 이조 500년이 무슨 법치와 문치를 구현했던 국가인가?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 할 것이다.
  압구정동주   2014-01-10 오전 8:59
李朝 500년의 역사를 폄하하는 그릇된 史觀은 이본 학자들의 역사 외곡에서 비롯 되었다.李朝500년은 일류 엿사상 가장 장구한 왕조일 뿐 아니라 ,法治와 文治와 儒敎的 道德으로 王道를 실현한 영광의 역사라는 것을 인싯해야한다.남자 아동들의 최소 반은 書堂에서 千字文을 배웠으니 문맹율은 여자를 포함해서 60% 종도로 추산한다.
  성산   2014-01-10 오전 8:36
한국인은 자신들의 과거와 현제를 객관화 하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말은 한국인들의 모든 잘못된 역사 인식의 핵심을 찌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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