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용후기' 세상이야기2011/02/07 13:03
'대한민국 사용후기'
J. 스콧 버거슨 (안종설 옮김)
이 책은 표지에서부터 '고집스럽게 대한민국을 사랑하시는 분들은 절대로 이 책을 읽지 마십시오.'라는 도발적인 명령어를 부제로 달고 있다.
저자는 자칭 '우리의 대한민국에서 매일 전쟁을 치르듯 사는 흰둥이'의 관점에서 에세이와 인터뷰를 통하여 한국사회의 민족주의, 지속 불가능한 발전, 문화와 정체성, 섹슈얼리티 등을 고발하고 있다.
한국인을 화나고 열 받고 충격 받게 할 목적으로 책을 엮었다는 고백은 '미치도록 증오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증을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쉼표를 남용하는 장문구조, 무리한 자기중심 해석 등 몇 가지 찜찜한 구석도 있지만 대체로 가슴이 서늘하다.
책을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글은 독자의 구미를 끈다.
‘ 치열한 사색, 교양 있는 수다, 노골적 도발, 아찔한 글발, 성역 없는 비판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우리가 한국인이라서 절대 알지 못했던 한국, 아메리카 유목민이 대한민국 원주민을 신랄하게 해부한다.’
저자의 대한민국은 아직 사용 중이지만 얼마 안가 정말 일회용 휴지처럼 ‘사용 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슬픔이 엄습한다.
그래서 더욱 ‘자신이 글 쓰는 전사가 되어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개방과 관용과 사랑으로 한국의 미래에 희망’을 주려는 저자에게 빚을 지고 있다.
저자가 조국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살지 못하고 탈출하여 ‘아메리칸 유목민’이 될 수밖에 없는 배경은 무엇인가?
‘팍스 아메리카나’는 ‘이기적이고 무식하고 폭력적인 사회로 영혼이 죽어버린 나라’로 보는 저자는 구성원으로 살 수 없는 곳이다.
‘아메리칸 유목민’은 다음과 같이 ‘미셀 우엘벡’의 ‘플랫폼’에서 끌어온다.
‘유럽의 걱정스럽고 수치스런 자식으로 경멸만 남고 희망의 메시지도 없다. 극심한 이기주의, 남성우월주의, 죽음의 기운으로 더 이상 삶을 지속하기 불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고 끊임없이 수출한다.’
그런 저자가 7년을 살고 있으면서도 ‘사용 후기’를 쓰고 탈출을 그리는 대한민국은 어떻게 비춰진 것일까?
먼저 대한민국이 그가 살지 못하고 탈출한 ‘미국’을 흉내 내는 원숭이들처럼 ‘작은 미국이 되려고 용쓰는 모습’을 못 견뎌 한다.
둘째, 한국은 성공지상주의에 빠진 미숙하고 유치하고 황당하고 저질스런 ‘고등학교 사회’를 참지 못한다. 차갑고, 무례하고, 야만적이고 바쁘기만 한 사회에서 우물 안 개구리들이 우글거리는 매트릭스에 다름 아니다. 배타적이고, 무 배려, 무관심, 자기중심적,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특히 유색인), 사교결핍이면서 ‘아시아의 허브’를 지향하는 한국인을 ‘진짜 똥구멍’으로 한방 먹일 때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이라서 절대 알지 못했던 한국‘은 무엇일까?
그는 책에서 몇 가지 요약해 본다.
첫째, 피맛골 대학살이라는 종로의 강남화이다.
피맛골 대학살은 오천년 역사와 전통을 돈의 논리가 짓밟는 ‘역사강간’이다. 강남화는 콘크리트와 유리와 쇠붙이로 떡칠이 된 차갑고 추한 쓰레기장으로 서울을 역사의 공동묘지로 만드는 일이다.
둘째, 천박한 민족주의이다.
한국은 천박한 민족주의가 판치는 나라다. 천박한 민족주의는 극우파 민족주의로 일종의 부족독재, 종교적 믿음,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개인의 기능, 독립의식 무시 또는 거꾸로 개인을 위해 민족정체성을 짓밟거나 초월할 수 있다. 때문에 자본과 정치주권이 지배하는 천박한 민족주의의 다음은 파시즘이다.
지금 MB정권을 상기하여 부족독재는 강남, 종교적 믿음은 기독교나 소망교회로 대입시켜보면 파시즘의 경종이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셋째, 한국통일은 완벽한 환상이다.
남한의 시장경제체제는 북한의 공산주의 수용이 불가능하고 북한은 스스로 붕괴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방문에서 확인 한 것은 남북한이 통일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기에 통일은 유토피아이다.
넷째, 386세대의 실상과 한국여성의 문제점이다.
한국사회의 중심인 386세대는 실상 영어 콤플렉스와 군사문화가 몸에 밴 샌드위치 세대로 무한경쟁 사회의 일벌레이다.
여성은 경쟁의지가 박약하고 남성의존형인 결혼 중심사고, 능력이나 주장이 약한 자기비하, 노력부족으로 전문직 부족, 정상적인 일자리와 기회 부족으로 향락사업에 쉽게 노출된다.
다섯째, 치즈냄새 풍기는 무식한 외국인들이 ‘장님나라의 애꾸눈이 왕노릇’하는 세태이다.
일본에 비해 외국인을 위한, 외국인이 쓴 좋은 안내서가 없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머리에 똥찬’ 외국인과 갈보가 돈, 술, 섹스 등 향락의 퍼레이드를 벌인다.
여섯째, 결혼 적령기와 중매 및 매춘의 구조적 관계, 한류의 본질 등은 발상의 전환이나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최근 결혼적령기의 연장은 인적자본의 개발, 활용, 수탈하여 생산성을 높이려는 산업사회의 특징이다. 이에 따라 성적 전성기에 공식적인 섹스 파트너가 없으므로 배출구는 필요악으로 섹스산업이 번창할 수밖에 없다.
중매제도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남성의존형의 가부장적 제도에는 이의가 없다. 중매는 남녀의 사랑보다 필요 때문에 결혼하므로 남편과 아내가 결혼굴레 밖에서 성적만족을 찾는 반작용을 불러온다.
이렇게 결혼제도의 옹호, 불륜, 매춘과 비도덕적 활동의 비판은 도덕적 만족일 뿐이고 주일아침 설교에 지나지 않는다.
한류 열풍은 천박한 섹시 산업의 수출에 지나지 않으며 해외 경쟁력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문화인가? 하고 대한민국 문화 정체성을 묻고 있다.
일곱째, 위안부 문제이다.
위안부는 초국가적, 가부장적 가치체계가 자행한 수탈, 억압의 희생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일본과 라이벌 차원에서 민족주의적, 국가적 판단하는 전 근대적 접근법은 옳지 않다. 그전에 위안부 공출에 부역하거나 경제적 이득을 취한 점, 그들의 고통에 침묵하며 차별하고 낙오자로 인식한 포용부재, 나아가 한일협정으로 박정희 정권에 면죄부를 준 자신의 진면목을 보아야 한다.
여덟째, 국수주의의 황소의 강박이다.
한국은 물질적이고 주의력이 결핍한 나라로 국수주의라는 황소가 추악한 대가리를 쳐들고 발호한다.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강박에 가까워 진면목을 못 보거나 왜곡한다.
이는 한국이 자생적 근대화를 못 이루어 20세기는 그만큼 고통스럽고 진보이념보다 집단
적 사고와 이기주의, 자기중심적 사고가 근저에 있다. 일례로 가장 진보적이어야 할 기독교
가 유교의 대안으로 갈구했기 때문에 개방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으로 여러 기형적 요소를 보
인다.
아홉째, 사라져야 할 사람들이다.
다 나가 죽어야할 ‘천박한 놈’ ’잘난 척 하는 놈‘ ’ 술 취한 놈‘ ’인종 차별하는 놈‘ ’멍청한 놈‘ 그들이 서울의 홍대나 압구정 또는 이태원이나 대학로에서 보이는 행태는 역겨워 못 참을 정도다.
그곳은 미국 빈민촌 양아치 같은 강남 중산층 남자애들, 패리스 힐튼의 복제판인 갈보 같은 여자애들, 영어선생인 척 하는 알콜중독자 외국인들의 천국으로 오천년 한국의 문화와 문명을 갉아먹고 있다. 슬픈 자화상이다.
열 째, 한국에서 레즈비언의 삶이다.
익숙하지 않고 호기심 가는 대목이지만 우리사회는 분명 소수자들이 살아가기에 쉽지 않다. 저자는 레즈비언 인터뷰를 통해 개방과 관용, 그리고 사랑의 힘만이 우리의 미래의 희망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저자를 미치게 만드는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는 것인가?
하지만 ‘사용 후기’를 쓰고도 이 땅을 떠나지 못하는 저자는 스스로 - 발목 잡힌 나는 개판이고 고자이고무용지물이 된 남자의 영원한 어리석음과 놀라운 멍청함의 순교자 - 고백하는데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물론 깊은 성찰과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냉정하게 읽고 이어서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보면 더욱 좋을 듯하다.
버거슨이 '전사의 격정'으로 말을 달렸다면 박노자는 '선비의 열정'으로 회초리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