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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10명 중 9명이 월급 200만원 미만

  • 박유연 기자

  • 입력 : 2012.06.05 03:05

    [본지, 근로자 임금 통계 분석… 절반이 월급 200만원 미만]
    어쩔 수 없이 맞벌이 - 월급 200만원 미만이면 실수령액 최저생계비 수준
    비정규직 문제로 양극화 심화 - 400만원 이상 일자리 증가율,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
    OECD 통계 그대로 증명돼 - "저임금 노동자 비중 25.7%… 고용의 질 OECD國 중 최악"

    한 중견기업의 파견직원으로 일하는 김선경(가명·27)씨는 한 달 140만원을 받는다. 영업부서 서무직원으로 일하며 부서 잡일을 처리하는 게 김씨의 일이다.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을 나온 김씨는 여러 차례 구직에 실패하다 지금의 일을 겨우 얻었다. 한때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갈까 생각했지만 부모 뵐 낯이 없어 서울에 눌러앉았다.

    그의 생활은 무척 고단하다. 원룸 월세로 한 달 50만원을 내면 90만원이 남는데, 하루 평균 생활비 2만원을 빼면 여윳돈이라곤 한 달에 30만원 정도 남는다. 김씨는 "옷 한 벌 제대로 사입기 어렵고 문화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좋은 직장으로 옮겨야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제 거의 포기했다"고 말했다.

    ◇둘이 안 벌면 못살아

    김선경씨의 사례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월급쟁이 중 절반 이상이 한 달에 200만원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본지가 분석한, 통계청이 운영하는 '국가통계포털'에 올라온 임금대별 일자리 통계에 따르면, 2011년 4분기 기준 전체 1731만명의 임금근로자(자영업자 등을 제외하고, 남에게 고용돼 임금을 받는 사람) 가운데 940만명(54.3%)이 월 200만원 미만 을 받는다.

    내 일자리는 어디에… 우리나라 월급쟁이 절반 이상이 한 달에 200만원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한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구직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월급 200만원은 4인 가구가 기본적인 생활만 할 수 있는 돈이다. 통계청의 가계수지동향 등에 따르면 월 200만원을 받을 경우 세금, 4대 보험료, 대출이자 등 명목으로 30만원 정도를 뗀 뒤 170만원쯤 남는다. 이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이 되는 최저생계비 149.5만원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자녀 사교육이나 저축은 꿈도 꾸기 어렵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2011년 기준 배우자가 있는 1162만 가구 가운데 43.6%가 맞벌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들이 맞벌이 전선에 뛰어든다고 해도 10명 중 8명(76.7%)은 200만원 미만의 저임금 일자리를 잡을 뿐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장 혼자 벌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여성들이 취업전선에 내몰리고 있지만 좋은 일자리가 없어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만연한 비정규직이 문제의 핵심

    이번 통계에서 200만원 미만 월급쟁이 940만명 가운데 임시·일용직(대부분 비정규직)과 상용직(대부분 정규직)의 수는 각각 473만명, 467만명으로 임시·일용직이 6만명가량 많다. 하지만 각 직군 내 비율을 놓고 보면 임시·일용직 524만명 가운데 무려 87.7%가 월 200만원 미만인 반면 상용직은 42.2%다. 임시·일용직 10명 중 9명이 월 200만원 미만을 받고 생활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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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통계에서 대졸 이상 학력자의 27%가 월급이 200만원을 밑돌았다. 대학을 나와도 4명 중 1명은 200만원 미만 월급쟁이가 되고 만다.

    쥐꼬리만 한 월급 문제는 정규직에선 개선되고 있지만, 비정규직에선 별 진전이 없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도 이번에 확인됐다. 4분기를 기준으로 2010년과 2011년을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월 100만원 미만의 질 낮은 일자리는 11.3% 감소한 반면, 월 400만원 이상 일자리는 11.6% 증가했다. 그런데 임시·일용직으로 한정하면 월 100만원 미만 일자리 감소폭과 월 400만원 이상 일자리 증가폭은 각각 6.5%와 5.3%에 그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자리 질 개선 상황이 상용직 중심으로 이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OECD 최악 수준의 고용의 질 통계도 이번에 증명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2009년 기준 한국의 저임금(중간임금의 2/3 미만) 노동자 비중은 25.7%로 OECD 내에서 가장 높다. 벨기에(4.0%), 노르웨이(4.0%) 등 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24.8%), 영국(20.6%), 캐나다(20.%) 등 영미권 국가보다도 높았다. 실업률은 OECD 내에서 최저 수준이지만 일자리의 질은 OECD에서 가장 안 좋은 것이다.

    이같은 분석에 대해 그간 정부는 공식 통계가 아니며 수치에 왜곡이 많다고 해명해 왔다. 하지만 임금 근로자 2명 중 1명 이상의 월급이 200만원을 밑돈다는 이번 통계는 OECD 등의 분석을 그대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근태 위원은 "정부는 일자리 통계 수치에 집착하기보다 질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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