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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이런 日本人 친구 없나요
- 이한수
- 문화부 기자
- E-mail : hslee@chosun.com
- 조선일보 문화부 학술·출판·종교 담당 기자를 거쳐 현재 국제부 ..
Talk & 通
(총 7개)
1. 가만히 보면 조선일보에 나이브한 사고방식을 지닌 기자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우선 한국의 TV 드라마 작가였던 한운사씨가 1930년생인 가지야마 도시유키씨에게 한국에 대한 일제 강점기의 악랄한 범죄자로서의 일본의 죄과(罪過)를,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불과 16년의 삶을 살았을 뿐인 그에게, 그래서 조선과 조선인에게 아무런 악행도 저지를 수 없었을 것임이 분명한 그에게, 그가 단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표성‘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연좌제적 관념의 정죄(定罪)의 올무를 씌워 사과를 권고했다는 것부터가 조리(條理)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 논리대로 하자면 가지야마씨는 자신의 조상들이 저지른 또 다른 범죄들 중 하나인 임진왜란에 대해서도 역시 ’일본을 대표하여 사과할 용의는 없는가?‘라는 웃기지도 않는 연좌제적 관념의 물음 앞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엎드려 절 받기’가 그리도 좋은가? 권고를 통해 받은 것이든, 강요를 통해 받은 것이든, 상대가 자발적으로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와 행한 것이 아니라면 그건 모두 ‘엎드려 절 받기‘에 불과한 것이 되며 그런 사과는 받아봐야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왜들 그리 깨닫지를 못하는가?
2. 못 난 근성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울화가 치민다. 일본은 곤충인 개미 사회가 보여주는 주도면밀한 집단주의 시스템처럼 무서운 단결력과 일체감을 과시해온 대단히 독특한 획일주의 국가다. 실제 일본의 역사를 되돌아보더라도 내란이나 내부혼란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명운이 풍전등화로 치달을 만한 상황은 거의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도,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전국통일과정에서도 극도의 내란으로 치달을 만한 혼란은 없었다. 이는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 후 미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역사의 변화를 주도해온 계급은 언제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지배계급이었으며, 민중들은 그 변화에 일시적인 저항을 하다가 결국은 국가권력이 발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객체로 전락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이것이 일본의 역사였다. 나이브하기 이를 데 없는 조선의 기자들이여! 일본의 지식인층을 일본 우익세력에 대한 저항세력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가? 하기야 한시적으로는 그러한 저항의 논리가 일본의 지식인 사회에서 물론 목소리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3. 그들이 습득해온 ’지식‘은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저항 정신‘을 ’정의와 부합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올바른 정신‘이라고 그들의 양심에 호소를 해 왔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그건 우리의 ’일방적이고도 야무진 꿈‘이었을 뿐이라는 냉정한 실상(實狀)에 대한 자각(自覺)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나는 전망한다. 일본사회와 일본국의 근본을 규정하고 있는 국민정서에 해당하는 ’회사제일주의‘ 문화와 같은 공동체 의식, 목표나 방향이 설정되면 통합된 가치관을 요구하고 창출해 내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통, 그리고 이에 무섭게 순응하고 동화해 가는 일본인의 집단주의적 행동양식은 대립은 있을지라도 결단코 판은 깨뜨리지 않는다는 일본적 실용주의와 견실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후로는 일본 우경화에 대한 우려를 한낱 허상에 불과한 ’일본의 지식인층‘에게 하소연하는 식의 어리석고도 나약한 방식으로 해소해 보려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이다.
4. 그보다는 차라리 집요하면서도 주도면밀하게 핵무장을 실현하는 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철통 자주국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하겠다. 아니, 그 길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책이라고 본다. 오로지 그 길만이 구한말(舊韓末)처럼 열강들 틈에 끼어 여전히 이용가치를 가늠당하고 있는 가련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21C.에 들어서도 열강들의 이해(利害)와 탐욕으로 인한 긴장의 파동(波動)이 여전히 거세게 맴돌고 있는 극동지역의 중심국으로서 지향할 수 있는 (별도의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최선의 물리적, 논리적 방책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