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29년 만에 세계 정상 밟은 우리나라 야구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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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29년 만에 세계 정상 밟은 우리나라 야구 소년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4.08.24 09:30 / 수정 2014.08.25 10:18

2014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이 21일(한국시간) 미국에서 열린 제68회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일본에 4-2 역전승을 거둬 인터내셔널 그룹 결승에 올랐다. [AP=뉴시스]


‘따악~’ 적막이 감도는 공간에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야구가 시작됩니다. 타자는 1루를 향해, 수비수는 공을 잡기 위해 힘차게 달립니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어린이 선수들의 몸집은 작지만 기세만큼은 메이저리거입니다. 소중은 어린이들이 팀을 이뤄 경기를 펼치는 리틀리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올해 열린 ‘2014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우리나라 리틀야구 대표팀은 29년 만에 세계대회 무대를 밟은 데 이어 한국시간으로 지난 21일과 24일 경기에서 숙적인 일본을 연거푸 이기고 25일 미국까지 꺾으며 무패 행진 끝에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어요. 13명의 작은 영웅들이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알아봤습니다.

① 우리나라 리틀야구 대표팀이 7월 6일 열린 2014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아시아-태평양’ 지역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9년 만의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② 지난 21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윌리엄스포트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 대표팀의 경기. 팽팽한 긴장감이 그라운드에 감돌고 있다.③ 일본과의 경기에서 6회 초 황재영 선수가 솔로 홈런을 치고 팔을 번쩍 들며 기뻐하고 있다.④ 일본을 4-2로 꺾으며 승리한 대표팀 선수들이 관중석을 향해 정중히 인사하고 있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야구팬이라면 꼭 봐야 할 경기들이 있습니다.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 올스타전,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입니다. 특히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는 빼놓지 않고 봐야 해요. 미래의 야구 스타들이 출전하기 때문이죠.”

미국 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가 2001년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리틀리그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던 연설이다. 리틀리그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야구기구인데, 이 중 11~13세 어린이들이 경기를 펼치는 ‘리틀리그 월드시리즈’가 가장 유명하다.

올해로 68회째인 이 대회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지난 21일 펼쳐진 예선 3차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한국이 강호 일본을 꺾고 4-2로 승리한 것이다. 미국 스포츠채널 ESPN은 리틀리그 한일전에 앞서 “양 국가는 오랜 시간 최고의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번 리틀리그 경기 중 최고의 명승부가 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날 경기는 양팀 모두에게 중요했다. 승리하는 쪽이 결승 진출 결정전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4대2로 숙적 일본을 격파하다

성인 선수 못지 않은 구속(공을 던지는 속도)을 선보이며 차분하게 수비에 임하는 우리나라 선수들.
역대 대회 성적을 놓고 볼 때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한 수 위였다. 일본은 1967년 이후 이번 대회까지 총 24회 출전해 9회나 우승을 차지한 리틀야구 강국이다. 2012~13년 연속 우승 등 최근 4년간 3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했다. 700개 이상의 리틀야구팀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2007년 이후에는 지역 예선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월드시리즈에 출전할 정도다.

반면 우리나라는 1985년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외 전지 훈련도 거의 못해 경험도 부족했다. 리틀야구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항상 텅 빈 야구장에서 경기를 한 까닭에 관중이 가득한 월드시리즈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도 약점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일본의 승리를 점쳤다.

예상대로 처음 기선을 제압한 쪽은 일본이었다. 일본 선발투수 다카하시 다쿠마가 10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우리 타선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다카하시는 지난 17일 라틴아메리카 지역 대표국인 베네수엘라 팀을 상대로 승리를 따낸 명실상부한 일본의 에이스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았다. 선발투수(경기 시작부터 공을 던지는 투수)로 나선 최해찬(13) 선수가 일본의 공격을 막아내며 0-0의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첫 포문이 열린 것은 3회 초. 다카하시가 던진 공을 최해찬 선수가 힘껏 쳐냈고 공은 관중석으로 넘어갔다. 2점짜리 홈런이었다. ESPN 해설자는 “발렌티어 구장 역사상 가장 긴 장거리 홈런”이라며 극찬했다.

일본의 추격도 재빨랐다. 3회 말 일본이 안타를 계속 뽑아내며 2-2까지 따라 잡혔다. 경기의 승패가 결정된 것은 6회 초였다. 황재영(13) 선수가 솔로 홈런을 뽑아내고, 2사 2루의 상황에서 신동환(13) 선수가 2루타로 추가점을 냈다. 특히 황재영 선수는 3경기 연속 홈런포를 가동하며 팀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6회 말 마운드에 올라 마무리 투수 역할도 수행했다. 이후 단 1점도 내주지 않은 채 4-2로 우리나라가 승리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우리나라 리틀야구의 역사

1938년 발족된 세계리틀야구연맹에 우리나라가 가입한 시기는 1972년이다. 당시에는 ‘애들 야구’라 불리며 관심사 밖이었다. 이후 야구붐이 일었던 1980년대 절정의 시기를 맞았다. 1984년과 85년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하지만 상승세는 거기까지였다. 리틀야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며 오랜 침체기(진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른 시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우승은커녕 예선에서도 탈락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야구붐이 일며 리틀야구에 대한 야구계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작됐다. 2006년 20여 개 팀밖에 없었던 불모지에 가까운 상황에서 158개(2014년 7월 기준)까지 팀이 늘어났다. 체계적인 대표팀 선발 및 운영과 정기적인 국제교류가 이어졌다. 결국 올해 7월 5일 열린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아시아-태평양 지역예선에서 우승하며 세계대회 출전 티켓을 따낼 수 있었다.

29년 만에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우리나라는 그동안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매서운 기량을 뽐냈다. 지난 14일 열린 개막식에 아시아-태평양 대표로 출전해 체코와 붙어 10-3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어 17일 벌어진 2차전 푸에르토리코와의 경기에서도 대역전승을 일궈냈다. 우리나라는 2회까지 푸에르토리코에게 0-3으로 지던 상황에서 황재영 선수가 홈런을 쳐 희망이 보이는 듯 했으나, 4회 말 팀이 2실점을 해 1-5로 밀리고 있었다.

역전 드라마는 5회부터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안타 4개를 몰아치며 4-5까지 따라 붙고 6회 역전에 성공한 다음 2점을 추가해 8-5로 승리했다. 21일엔 숙적 일본을 물리치며 매서운 상승세를 뽐냈다. 박원준 한국리틀야구연맹 이사는 “불과 7~8년 전까지 침체에 빠져 있던 리틀야구가 부활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외국과의 정기교류전을 통해 꾸준히 경험을 쌓은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이야기

세계 최대의 어린이 야구 대회인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는 올해로 68회째를 맞을 정도로 역사도 깊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윌리엄스포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칼 스토츠가 1938년 창시한 리틀리그는 미국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9년 뒤인 1947년에는 제1회 리틀리그 월드시리즈가 시작됐다. 매년 8월 중순에 본선 대회가 열리며, 개최지는 대회가 시작된 장소인 윌리엄스포트로 정해졌다.

대회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약 30만 명의 관중이 작은 시골 마을인 윌리엄스포트를 찾아온다. 경기장마다 2만~4만 명의 관중이 들며 경기는 미 방송사 ESPN과 ABC를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예선을 통과한 미국 8개 지역 대표팀과 인터내셔널 8개 지역 대표팀이 각각 미국과 인터내셔널 그룹으로 나눠 경기를 진행한다. 올해 인터내셔널 8개 지역은 아시아-태평양, 일본, 캐나다, 라틴아메리카, 유럽-아프리카, 카리브해, 호주, 멕시코다. 각 그룹 1위 팀이 결승전에서 맞붙어 우승팀을 가린다.

성인에 비해 몸집이 작은 어린이들이 경기를 펼치기 때문에 성인 야구와는 다른 게 많다. 경기장의 규모 등은 3분의 2로 축소되며 한 경기는 6개의 이닝(Inning, 양 팀이 공격과 수비를 한 번씩 끝내는 동안)으로 구성된다. 무리하게 앞 베이스(내야의 네 귀퉁이에 있는 방석같이 생긴 물건)를 향해 달리는 베이스러닝(Base running)은 금지다. 큰 부상의 위험이 따를 수 있는 행동을 막은 것이다.

리틀리그와 인연이 깊은 사람들도 있다. 43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조지 W. 부시는 9세 때인 1955년 텍사스 중부팀 소속으로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 참가했다. 아버지인 조지 H. W. 부시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매일 야구에 몰입한 결과로, 그는 평생 이 일을 자랑스러워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역시 알아주는 리틀리그 매니어다. 원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챔피언팀을 백악관에 초청해 격려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오바마는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챔피언팀까지 백악관에 초청한 것이다. 2010년 2월 첫 초청 이후 백악관의 연례행사로 자리잡게 됐다.

올해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새롭게 떠오른 스타도 있다. 미국 미드애틀란틱팀의 여성 투수인 모네 데이비스(13)다. 지난 16일 6이닝 완봉승을 거둔, 월드시리즈 역사상 첫 여성 승리투수다. 그는 70마일(약 112㎞)에 달하는 강속구를 던지며 상대팀 남자 선수들을 제압해 호평을 받았다. 이를 두고 미셸 오바마 미국 영부인은 “소녀들이 성공할 때, 우리 모두 성공하게 된다. 모나 데이비스의 완봉승을 축하한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리틀야구 선수 되려면

리틀야구를 하려면 한국리틀야구연맹에 등록된 팀에 소속돼 활동해야 한다. 각 초·중학교가 운영하는 학교 야구부와는 별개다.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158개(초등~중학교 기준)의 팀이 있으며 서울의 경우 각 구별로, 지역의 경우 시·군 단위로 각각의 팀이 운영된다. 월드시리즈와 같은 국가대항 대회가 있을 때는 큰 단위 지역별로 팀을 재편성하는 경우도 있다. 2014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활약한 우리나라 대표팀은 한국리틀야구연맹 소속의 13팀이 모인 ‘서울 대표팀’이다. 문의 한국리틀야구연맹 홈페이지 www.littleleague.co.kr, 02-2268-4668

리틀부(초등학생~중1) 158개 팀 운영 | 연중 10개의 전국대회 개최

한미, 한일, 한·일·대만 등 국제 친선 정기 교류전 시행

주니어부(중학교 1~3학년) 32개 팀 운영 | 주말리그 형식으로 운영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조직위원회,
도움말=박원준 한국리틀야구연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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