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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 공립도서관(오른쪽) 옆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의 모습. 도서관과 주택 등 큰 건물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
![지난 2012년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의 모습. 당시 주변 조경이 전혀 되지 않아 백영현 1492그린클럽 대표(오른쪽) 등이 팰팍 정부의 허락을 받고 기림비 시야를 가리고 있던 나무들을 베고 잔디를 깔았다. 이처럼 팰팍 기림비 관리 및 홍보는 자원봉사를 자청한 한인들에게만 맡겨져 있다. [뉴시스]](/contents/175/925/726.mime4) |
| 지난 2012년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의 모습. 당시 주변 조경이 전혀 되지 않아 백영현 1492그린클럽 대표(오른쪽) 등이 팰팍 정부의 허락을 받고 기림비 시야를 가리고 있던 나무들을 베고 잔디를 깔았다. 이처럼 팰팍 기림비 관리 및 홍보는 자원봉사를 자청한 한인들에게만 맡겨져 있다. [뉴시스] |
“위안부 기림비가 뭐에요?”
지난 7일 딸과 함께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 공립도서관을 찾은 한인 2세 차한나(37)씨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아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
팰팍 주민인 차씨는 위안부 피해자에 관해 대략적인 설명을 듣더니 “세상에 그런 일이 있느냐. 크레이지(crazy)”를 연발했다. 그는 "팰팍 도서관에 딸과 함께 자주 오지만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기림비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고 말했다. 위안부 기림비는 도서관 바로 왼편에 있다는 말에 “정말 몰랐다. 지금 당장 가보겠다”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2010년 10월 23일 팰리세이즈파크 공립도서관 옆에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세워졌다. 위안부 기림비로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처음 건립됐지만 대다수 팰팍 주민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본지가 기림비 바로 옆에 자리 잡은 팰팍 도서관을 방문한 주민 등을 대상으로 취재를 한 결과 타민족은 물론, 한인 2세 가운데 위안부에 대해 ‘안다’고 답한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팰팍에 사는 타민족들의 경우 위안부 기림비에 대해 ‘안다’고 답한 사람은 숱하게 질문을 던진 끝에 단 1명을 만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기림비는 커녕 위안부 이슈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기자와 대화하며 도서관 옆에 서 있는 기림비를 보고는 “저런 게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놀랍다”고 답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한인 2세의 경우 10명 중 9명꼴로 ‘위안부 기림비’는 커녕 ‘위안부’의 의미조차 몰랐다. 12학년생인 권모군의 경우 “위안부라는 단어조차 처음 들어봤다”고 말했다. 왜곡된 지식을 갖고 있는 2세들도 허다했다. 도서관 앞에서 차를 기다리는 한인 2세 청소년들에게 다가가 질문하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일본 여자 아니냐”고 되묻는 학생들도 있었다.
아무리 많은 위안부 기림비를 세워도 기림비의 존재를 알리고 이와 관련된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사전적 의미조차 희미해질 가능성을 크다는 것이 팰팍 주민들의 반응에서 확인된 셈이다.
앞서 본 차한나씨는 “오늘 들은 위안부 역사와 기림비에 대해 미리 알았더라면 도서관에 올 때마다 딸에게 기림비를 보여주고 잘 가르쳐 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겠다”고 말했다. 교육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4년 전 미국 내 최초로 세워진 팰팍 기림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가 된 2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을 추모하고, 인권보호 메시지를 지역사회에 널리 알리는 동시에 후세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 기림비를 시작으로 뉴욕·뉴저지·캘리포니아·버지니아주 등 방방곡곡에 모두 7개의 위안부 기림비가 잇따라 세워졌다.
하지만 기림비를 세울 때만 관심이 쏟아지고, 정작 설립의 근본적인 이유인 교육에는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팰팍 기림비의 경우 설립 후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 행사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간 팰팍 기림비는 2012년 일본 정치인의 기림비 철거 요구 방문, 일본 우익세력의 말뚝 테러 등으로 세간을 관심을 샀지만 정작 연례 기념행사 등 지역사회에 기림비를 알리기 위한 이벤트는 없었다.
타민족 주민 가운데 유일하게 기림비를 안다고 답한 필 위딩턴(61)은 “한국의 정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림비를 찾아 참배할 때 언론에서 이를 취재하는 장면을 몇 번 본 적이 있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주목을 끌만한 이벤트가 있다면 더 많은 이들에게 기림비를 알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학교에서도 위안부 관련 교육은 전무하다. 본지가 팰팍 학군을 찾아 취재한 결과 학군 전체적으로 위안부 관련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고위 관계자는 “학군 차원에서 위안부 관련 교육을 권고하는 것은 고려해 본 적이 없다”며 “현재로는 일선 교사들의 재량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올해 팰팍고를 졸업한 김동리양은 “고교 시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기금모금을 하려고 했었는데 주변 친구들의 무관심한 반응에 다소 놀랐다”며 “타민족 급우는 물론, 2세들도 ‘위안부가 뭐냐, 관심 없다’식으로 일관한다. 위안부 기림비가 도서관에 있는 것을 아느냐는 물음에도 ‘본 적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그간 기림비를 활용한 위안부 이슈 알리기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화가이자 팰팍 도서관 큐레이터인 스티브 카발로는 그간 위안부를 주제로 한 미술전을 두 차례 열었고, 제이슨 김 팰팍 부시장 등과 함께 팰팍 위안부 기림비 홍보 책자도 만들어 배포했었다. 하지만 이 같은 활동은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카발로 큐레이터는 “기림비 교육 활동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백영현 1492그린클럽 대표 등은 지난 2012년 사비를 들여 팰팍 기림비 주변 조경 작업을 실시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주변 환경을 돌보고 있다.
또 2012년 팰팍 기림비 말뚝테러의 최초 발견자인 윤금종씨는 ‘기림비 지킴이’를 자처하며 기림비 주변 순찰과 환경미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지난 2월 연이은 폭설로 인해 눈 속에 파묻혀 있던 기림비를 보고 자발적으로 제설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정작 기림비 관리를 맡아야 하는 팰팍 정부는 예산 부족과 무관심 등을 이유로 한인들에게만 미루고 있다. 또 한인사회 역시 이 같은 활동에 무관심하다. 백 대표 등은 “동참을 권하면 외면하는 한인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또 시민참여센터가 위안부 이슈 등을 타민족 학생들에게 교육하기 위해 2012년 가을학기부터 시작된 동아시아 역사 인턴십은 재정 지원 부족 등을 이유로 중단 위기에 몰렸다가 올해 초 다시 시작됐다.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는 “한 학기 교육을 위해서 약 1만3000달러가 필요한데 모금이 부족해 결국 지난해 가을학기에는 수업이 열리지 못했다”며 “지난해 말 약 8000달러를 어렵게 모금해 올해 타민족 학생 10명에게 관련 교육을 재개할 수 있었다. 기림비 건립 이상으로 교육을 위한 지원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관심이 덜하다”고 말했다.
결국 기림비를 세워 주목을 받고자 하는 이들은 많지만, 교육과 관리는 내 일이 아니라는 의식이 문제인 셈이다.
제이슨 김 팰팍 부시장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타운정부 내 위안부 기림비 위원회를 조직을 제임스 로툰도 시장에게 건의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부시장은 “지금까지는 위안부 관련 이슈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나 기관이 없었다”면서 "위안부 기림비 교육과 관리를 전담하는 위원회를 만들면 주민들에게 위안부 이슈를 알리는 행사나, 관련 교육을 학군 내 학생들에게 제공할 것을 권고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 지금보다는 책임 있는 활동이 전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한서·황주영 기자 hseo@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