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프로필 이미지
진실은 밝혀져야 하고, 정의는 바로 세워져야 하며, 인권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땅에서 전쟁이 멈추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중단될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 속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다녀간 블로거를 삭제하시겠습니까?
등록시 다녀간 블로거에 남지 않으며, 일부 블로그 활동이 제한됩니다.
확인 취소
창닫기

전체보기 (1039)

0QYRi
길원옥 할머니께서 프랑스 빠리에서 나비의꿈팀과 함께 한 간담회에서 당신의 삶을 이렇게 절절하게 읽으내려가셨습니다.
B0401
길원옥 할머니께서 프랑스 빠리에서 나비의꿈팀과 함께 한 간담회에서 당신의 삶을 이렇게 절절하게 읽으내려가셨습니다.
윤미향 2014.06.25 16:03

길원옥 할머니의 삶을 직접 할머니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오늘(6월24일), 프랑스 빠리에서 유럽평화기행 [나비의꿈] 팀 참가자 50명과 함께 만난 자리에서 할머니는 이렇게 당신의 삶을 긴 서사시로 읽으셨습니다. 





평화가 춤춘다 통일이다.


나 그 때 열 세 살,  철부지 어린 아이였습니다.

내 고향 평양을 나의 놀이터 삼아 여기저기 새처럼 날아다녔습니다.

그 어렸던 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몰랐습니다.

어느 날 연기처럼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용감하게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세상이 내 것인냥 놀았습니다.


전쟁이 무엇인지도, 남자가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나를 빼앗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남의 나라 식민지로 겪는 설움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 무서운 세월이 

내 어린 시절을 다 빼앗아 가버리고, 

내 소녀시절도 빼앗아 가버리고, 

내 청년시절도 빼앗아 가버릴 줄 몰랐습니다. 


돌아보면 그래서 행복했던 철부지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원옥아~” 아버지가 부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쪼르륵 무릎으로 기어가면

아버지는 하얀 쌀밥을 한 숟갈 떠서 내 입에 넣어주셨습니다.

엄마의 호통치는 소리가 들리지만 

내 입에 들어온 하얀 쌀밥은 꿀처럼 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나를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 불러보지만 아버지가 앉아있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내 귀에 속삭였습니다. 

감악소에 갇힌 아버지를 빼낼 수 있는 돈 10원이 있어야 한다고,

철부지 어린 나, 

돈을 벌어서 아버지 나오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음이 콩닥거렸습니다. 

아버지를 나오게 해드릴 수 있다는 믿음이

철부지였던 나를 어른이라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오빠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며 내 앞에 나타난 낯선 사람을 따라 나섰습니다. 

아버지 감악소 벌금 10원을 벌고 싶어서 

그 길이 그렇게 아프고 죽음보다 못한 삶일 줄 누가 알았을까요?  

너무 아팠습니다. 

내게 닥치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소리치고, 구르고, 버팅기며…

  

내게 돌아오는 것은 구타와 고문과 감금이었습니다.

열세 살 어린 나이로 견디기 너무 힘들어

“엄마, 엄마” 소리쳤습니다. 

저 멀리 평양에 있을 내 엄마에게 내 통곡소리가 들리기를 바라며

그렇게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5년이 지났지만, 

공장은 없었고, 돈도 없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남들은 해방이랍니다. 남들은 그 추운 겨울을 이겼더니 봄이 왔답니다. 

그러나 열 여덟, 여전히 어리기만 했던 길원옥…

내겐 아버지 감악소 벌금 10원이 없었습니다. 

다시 내겐

또 다른 어둠이 시작되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엄마 소리도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겐 아무 의미없는 이름들이었습니다.


열 세 살이던 원옥이가 어느덧 팔십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는 당당히 외치게 되었습니다. 

사죄하라! 배상하라!  

그렇게 주먹을 높이 들고 나의 인권을 요구합니다. 

이제 내게 나의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이 생겼습니다. 

내가 손을 잡아줘야 할 친구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내 힘이 필요하다 합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외칩니다. 

나는 모든 전쟁을 반대합니다! 

나는 평화를 원합니다! 


이제 내게 아버지 감악소 벌금 10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삼팔선에 가로막힌 휴전선은 

또다시 내 고향, 내 아버지를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아 ~ ~ 

나비가 되어 날고 싶습니다. 

아직 해방 받지 못한 이 몸, 늙은 몸이지만 

훨훨 날아 고향으로 가고 싶습니다. 

휴전선이 가로 막은들 못가겠습니까? 

철조망 가시덤불에 찢겨 내 몸뚱아리 피투성이 된들 못가겠습니까? 

가는 길에 분단도 허물고, 휴전선 가시덤불도 걷어치우고

‘휴전’을 ‘평화’로 ‘통일’로 만드는 일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열세 살 이별 이후 생각만 해도 아프던 내 고향, 내 아버지 무덤가에

감악소 벌금 10원 내어 드리며 내 손으로 아버지 해방시켜 드리렵니다. 

  

아 - 보입니다. 

저기 저 보통강 가에 놀고 있는 열세 살 철부지 길원옥이가

식민지의 고통도 다 걷어치우고, 

‘위안부’라는 아픈 굴레도 다 벗어버리고

전쟁의 공포도 전혀 없이 

평화롭게 친구들과 동네에서 고무줄 놀이하고 있는 원옥이가 보입니다. 


이야기 : 길원옥할머니 / 글쓴이 :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



등록
텍스티콘 텍스티콘
  • 길원옥 할머니께서..
    길원옥 할머니께서..
    |
    2014-06-25 16:03:45
    길원옥 할머니의 삶을 직접 할머니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오늘(6월24일), 프랑스 빠리에서 유럽평화기행 [나비의꿈] 팀 참가자 50명과 함께 만난 자리에서 할머니는 이렇게 당신의 삶을 긴 서사시로 읽으셨습니다. 평화가 춤춘다 통일이다. 나 그 때 열 세 살, 철부지 어린 아이였습니다. ..  
  • 빠리에서의 아홉 ..
    빠리에서의 아홉 ..
    |
    2014-06-25 08:46:32
    6월 24일, 오늘의 마지막 활동.... 밤늦도록 이어집니다. 길원옥 할머니도 노란 점퍼를 입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50명의 청년들을 만난다면서 기분 좋고 가볍게 숙소를 나섰습니다. 나선 시간은 저녁 7:30. 평소같으면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인데, 오늘은 달랐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노란 ..  
  • 빠리에서의 여덟 ..
    빠리에서의 여덟 ..
    |
    2014-06-25 08:20:56
    이번 우리의 파리 방문 일정에 참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분이 지방의원연수원 이브 헤미 대표입니다. 한국을 방문했을때 쉼터도 들러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만나셨고,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도 방문하여 감동의 인사를 전해 주셨던 분입니다. 오늘(6월 22일) 아침, 상원의원들과 간담..  
  • 빠리에서의 일곱번..
    빠리에서의 일곱번..
    |
    2014-06-25 08:03:05
    정대협이 프랑스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몇가지 추진했던 것이 있습니다. 첫번째가, 프랑스 정부가 일본정부와의 외교관계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입장을 밝히게 하고, 일본정부에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관련한 공식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활동..  
  • 파리에서 여섯번째..
    파리에서 여섯번째..
    |
    2014-06-24 07:24:56
    오후 6시, 소르본대학교에서 학생과 교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군'위안부'문제 강연회가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정살렘 교수님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설명르 했고, 이어서 길원옥 할머니께 짧게 할머니를 소개하고, 길원옥 할머니는 이렇게 먼 데 까지 ..  
  • 파리에서의 다섯번..
    파리에서의 다섯번..
    |
    2014-06-24 07:08:25
    일본군'위안부' 관련 글을 불어로 불어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모임을 오후 2시 30분부터 4시까지 가졌습니다. 소르본대학교의 정살렘 교수님이 소개를 해서 함께 만났습니다. 일드프랑스의회 부의장을 면담하고 급히 오는 길이어서 길원옥 할머니가 많이 피곤하신 모..  
  • 파리에서의 네번째..
    파리에서의 네번째..
    |
    2014-06-24 06:54:20
    23일, 12시 일드프랑스의회 부의장과 오찬약속이 잡혔습니다. 부의장 뿐만 이나라 프랑스지방교육기관 시데프 대표를 맡고 있는 이브 헤미씨도 함께 했습니다. 이브 헤미 씨는 서울을 방문한 길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관람하고, 쉼터를 방문하여 김복동 할머니를 만났다며, 부의장에..  
  • 6월 23일, 파리의..
    6월 23일, 파리의..
    |
    2014-06-24 06:39:31
    아...집을 떠나온지 12일, 이제 몸이 지치나봅니다. 아침에 눈이 떠지지를 않습니다. 몸이 침대에서 떨어지지를 않으려 합니다. 이미 알람은 울려, 빨리 길원옥 함러니 아침밥을 채려드려야 하는데, 침대에 누워서 무슨 반찬을 내어드리나 속으로 속으로만 그렇게 반복하다가 10분이 가고, ..  
  • 빠리에서의 세 번..
    빠리에서의 세 번..
    |
    2014-06-23 05:23:45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두시간 동안, 파리 시내 꼴레떼 광장에서 유럽평화기행 나비의 꿈, 정대협, 파리나비, 길원옥 할머니가 함께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1억인 서명과 거리 전시회 등 거리캠페인에 참여하였습니다. 한사람 한 사람을 만나 설명을 하고, 서명에 참여를 요..  
  • 빠리에서의 두 번..
    빠리에서의 두 번..
    |
    2014-06-23 02:41:08
    프랑스 파리에는 한인교회가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서 단독 건물을 갖고 있는 교회는 빠리침례교회라고 합니다. 정대협의 빠리 캠페인 소식을 들으신 교회 목사님 사모님께서 오늘 예배시간에 우리를 초청해 주셨습니다. 교회내 전시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에 사지도 전시할 수 있..  

 
윤미향's blog is powered by Daum
 
0%
10%
20%
30%
40%
50%
60%
70%
80%
90%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