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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Jul 2014 20:14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코피노’

Malte E. Kollenberg for The Wall Street Journal

손범식 씨(50)는 ‘코피노(Kopino)’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장본인이다. 코피노는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를 가리킨다. 필리핀 어머니는 생계에 쪼들리고 한국인 아버지와는 연락이 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손범식 씨는 2006년 소박한 학교 겸 지원 센터를 열었다.

“한국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임신한 필리핀 여자친구를 나 몰라라 하는 한국 남자들이 있다.”

‘코피노 어린이 재단’이 문을 연 후, 손범석 대표와 그의 필리핀 아내 노미(Normi)와 함께 산 아이들만 200명 가량 된다. 부부에게도 코피노 자녀가 두 명 있다.

던 델라디아(20)는 손 씨 부부가 제 2의 부모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센터에 살고 있는 16명 중 1명이다. 대학교에 다닌다는 던 델라디아의 어머니는 해외에 일하러 나갔다. 던 델라디아와 남동생은 한국인 아버지의 소식은 모른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름 말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워낙 인종이 다양한 필리핀에 코피노는 다양성을 한층 더했다. 수 세기 동안 식민 지배를 받은 필리핀에는 스페인과 미국 혈통을 물려 받은 이들이 상당수 있다. 코피노 어린이 재단처럼, 일본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지원하는 단체도 존재한다.

손 대표는 필리핀 배우자가 결혼비자를 취득하는 것이 어려워 아이들을 남겨두는 한국인 아버지들이 많다며 “양육비를 보내는 아버지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손 대표는 한국인 아버지 가운데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를 배우러 온 연수생이나 한국에 처자식이 있는 사업가나 관광객도 있다고 전했다.

필리핀 정부가 발표한 관광 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필리핀을 방문한 외국인 470만 명 가운데 한국인은 4분의 1 가량으로, 외국인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필리핀을 찾는 한국인 숫자는 지난 5년 사이에 거의 2배 증가했다.

한국이 최근 수십년 사이에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데다가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을 동경하는 필리핀 사람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필리핀에 늘어난 한국 교민 사회와 한국 관광객에 대한 필리핀 국내의 평가는 엇갈린다. 마닐라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한국 손님들이 무례하다고 평한다. 필리핀에 골프 여행을 온 한국 남성들은 매너가 없기로 악명이 높다. 필리핀 최대 경제 일간지 ‘비즈니스 미러’는 2009년 게재한 사설에서 한국 부동산 투기꾼들이 필리핀 국토를 ‘식민지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동 복지 운동가들은 코피노 출생률 증가는 필리핀 교민 사회 성장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필리핀에 한국계 아동이 정확히 몇 명 태어났는가에 관한 공식적인 통계치는 없다. ECPAT(아동 성매매, 인신매매, 포르노를 근절하기 위한 국제 기구) 한국 지부는 코피노 숫자가 지난 2~3년 사이에 1만 명에서 3만 명으로 급증했다고 추산한다.

이현숙 대표는 성매매나 일탈을 위해 필리핀에 가는 한국 남성들이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당한 성적 착취 문제를 오래 전부터 제기했는데, 이제 한국도 좀 잘 살게 되자 한국 남성들이 필리핀에 가서 똑같은 악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출신인 이 자스민 의원은 한국은 남겨진 코피노 아이들을 체면을 구기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는 가족 중심이라는 통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한국 외교부의 홍보 담당자인 김민진 씨는 필리핀에 코피노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진 씨는 해외에서 성매매를 하다 적발될 경우 한국 현행법에 따라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킨 혐의로 구속되거나 여권을 무효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진 씨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필리핀 일부 지역에서 코피노 아동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필리핀 보건부와 외교부 대변인은 코피노 문제는 담당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손 대표는 이 문제가, 필리핀 어머니나 아이 곁에 없는 한국인 아버지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상황은 저마다 다 다르다. 나는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아버지를 찾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생계를 해결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는 코피노들이 인종적으로 동일성이 높은 조국에서 상처를 받을까봐 더 걱정한다. 그는 이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동남아 여성들과 불륜의 결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봐 두렵다.

그는 이 아이들이 단지 혼혈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코피노들이 한국에서 어떤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국 정부는 부모나 조부모가 한때 한국 국적자였던 재외동포들에게 취업 및 체류 비자를 발급한다. 법무부에서 이민 정책을 담당하는 임은진 씨는 코피노들은 아버지가 현재도 한국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외동포 비자를 발급 받을 자격이 안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아버지에 대한 신원 정보를 거의 모르는 코피노들도 있다.

던 델라디아는 자신이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손 대표 부부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올해 말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는다.

그녀는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앝보지 못하게 하려면 꿈을 이뤄야 한다고, 손 대표 부부가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기사 번역 관련 문의: jaeyeon.woo@ws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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