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뉴스=황민호 기자)
동두천 보산동 클럽, 4백여명 이상 외국여성 종사…인권 ‘사각지대’
이국땅에서 위험에 노출된 채 미군상대…제도적 안전장치 시급
동두천을 연상하면 미군기지가 떠오를 정도로 동두천은 미군기지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다. 동두천의 42%가 미군기지이고 주한미군 3만5천여명 가운데 1만여명이 동두천지역에 주둔하고 있다.
하지만 잘나가던 동두천도 미군기지 이전을 앞두고 경기가 최악으로 추락했다. 경기북부지역의 미군기지들이 평택으로 배치될 예정인데다 미군 수도 감축되고 있는 추세라 소비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불경기를 견디지 못한 지역 상인들은 머리를 삭발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동두천 보산동 일대는 ‘양색시’나 ‘양공주’로 불리는 한국여성들이 달러를 벌어들이던 제2의 산업전선이었다. 변화 일로를 걷고 있는 동두천 보산동을 찾았다.
보산동 밤거리 황제는 미군헌병
26일 오후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동두천 보산동에 위치한 속칭 ‘클럽거리’를 찾았다. 보산동 클럽거리는 미2사단 캠프 케이시 정문앞에서 반경 100m 내에 위치한 미군 전용 유흥가다.
평일에다 날씨도 쌀쌀해 거리는 한산해 보였다. 골목마다 평상복을 걸친 덩치 좋은 미군들이 눈에 띄었다. 헌병들이 검은 베레모를 눌러 쓰고 업소마다 순찰을 돌고 있었다. 거리는 헌병 반, 귀가를 서두르는 미군 반이다.
함께 동행한 이 지역 토박이인 피영식(36)씨에 따르면 헌병들의 순찰이 최근 몇 년 사이 강화됐다고 한다. 미군들끼리의 잦은 싸움도 있지만 ‘미선이 효순이 사건’ 이후로 미군들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지면서 행여 일반인들과 마찰이 있을 수 있어 이에 대비하는 이유라고 한다. 그만큼 미군이 대외 이미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피씨는 이어 헌병들의 순찰이 강화되면 지역 상권은 시들해 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헌병의 단속과 이 지역 경기가 상관관계가 크다는 설명이다.
피씨는 “보산동에서 왕은 MP(미군 헌병)들이다. MP들에게 잘못 보이면 장사하기 힘들어진다. 모르긴 몰라도 상납관계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 업소에서 자주 싸움이 벌어지거나 민원이 제기돼 미운털이 박히면 헌병들이 문제의 업소를 집중순찰하거나 입구를 맴돌아 미군의 출입을 막는 등 영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현란한 간판사이에 앳돼 보이는 필리핀 여성들 즐비
500m 남짓의 보산동 클럽거리는 양쪽으로 외국 간판들이 현란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주로 ‘클럽’이란 글자가 눈에 띄었다. 입구에는 필리핀 아가씨들이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지나가는 미군들에게 호객 행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는 2002년까지만 해도 러시아 여성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불경기인 요즘은 필리핀 여성들이 업소종사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필리핀 여성들이 보산동에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다. 생활수준이 높아진 한국 여성들이 ‘벌이’가 신통치 않은 미군클럽 종사를 기피하는 탓에 러시아 여성과 필리핀 여성들이 저렴한 인건비로 보산동 유흥업소를 떠받쳤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러시아 여성들도 이곳을 차츰 떠나고 필리핀 여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실정이다. 유독 필리핀 여성들이 많은 것은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것과 오랫동안 미국의 지배를 받아 문화적,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90년대 중반부터 경기 나빠져
클럽거리 안쪽으로 갈수록 비틀거리며 삼삼오오 무리지어 부대로 들어가는 미군들이 눈에 띄었다. 필리핀 여성들과 미군의 ‘찐한’ 포옹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필리핀 여성들은 의외로 밝아 보였다. 주변 상가들은 거의 문을 닫고 튀김집이나 햄버거 상점들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한국 상인들의 인상이 어두워 보였다.
피씨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동두천이 9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경기가 그럭저럭 괜찮았다. 미군철수를 앞두고 있는 지역 상권은 거의 초토화 직전”이라며 “이라크전을 치룬 다고 4천여명의 미군들이 빠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사가 안 되니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군도 비상상태라 외출, 외박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만큼 지역 상권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 여성 한달 월급 1백만원
미리 약속된 한 업소에 들어갔다. 이곳은 이 지역에서 중간규모 술집이라고 한다. 필리핀 여성 7명 정도가 영업마감을 서두르는 것이 보였다. 업소 지배인격인 한 남자에게 요즘 경기를 물었다, 대답은 “한마디로 최악”이라고 했다.
그는 “몇년전의 절반도 장사가 안된다. 말이 관광특구지 미군들이 떠나면서 장사는 점점 안 되고 있다”며 “북한 핵실험으로 미군들도 비상이 걸린 상태이고 헌병들의 순찰도 강화됐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나이트클럽처럼 중앙에 춤을 출 수 있는 무대가 있고 바와 구석에 테이블들이 보였다. 이곳은 내국인 금지 업소다. 한국인들이 출입하기 위해서는 업소 사장이나 지배인에게 허락을 받거나 친분이 있어야 한다.
지배인은 요즘 일부 클럽에서는 장사가 되지 않자 내국인을 받기도 한다고 이곳 분위기에 대해 귀뜸했다. 필리핀 아가씨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라고 한다. 이들이 한 달 동안 일하고 받는 인건비는 한국 돈으로 대략 백만원선이다. 숙식은 제공되고 보통 오후 2시 이후부터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해 주말에는 새벽 4~5시, 평일에는 1시까지 일을 한다.
아가씨를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서는 주스나 위스키를 시켜야 하는 게 이곳 룰이다. 잔당 1만원선이다. 아가씨와 10분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단골이 되고 아가씨들과 친해지면 기본적인 주스값이나 술값을 내고 오랫동안 내화를 나눌 수 있다. 여기서도 2차를 나가려면 업소 사장이나 지배인등에게 허락을 받고 아가씨에게 돈을 지불하해야 한다. 미군들은 대부분 술만 마시는 편이라고 한다.
70~80년대 보산동 거리 호황 누려
피씨는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보산동 거리는 미군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며 “미군들과 상가 사람들끼리 싸움도 많았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미군들의 수준이 낮았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다 보니 사소한 시비로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특히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미군들 때문에 상점 유리창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도 당시는 경기가 좋아 이곳에서 장사하면 무조건 돈을 번다는 소문이 있어 장사를 해보려는 한국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당시 가장 성업했던 업종은 술집을 제외하고 전파사, 양복점, 구두방, 세탁소 등이었다. 여기서 장사를 해 돈을 번 사람은 대부분 동두천을 떠나 인근 의정부나 서울 북부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보산동을 지키고 있다.
이 술집 지배인은 미군철수에 대해 “철수할 때가 되면 떠나겠지만 (철수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말을 했다. 지배인에 따르면 전성기인 70~80년대 클럽거리는 1만여명에 가까운 미군들이 주말에 몰렸다고 한다. 또 달러가 귀해 돈 버는 재미도 쏠쏠했다고 전했다.
필리핀 여성들을 위한 법적인 안전장치 미흡
기자와 동행한 피씨는 “미군들과 한국 사람이 시비 붙으면 맞아도 때려도 한국 사람이 불리하다”며 “과거 한국 여성 종사자들에게 미군이 행패를 부리고 구타하거나 살인하는 사건이 많았다. 달러를 벌어들여 애국했지만 양색시라고 손가락질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르긴 몰라도 필리핀 여성들이 일부 못된 미군들의 범죄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라며 “과거 양색시들은 강했지만 아마 순하게만 살아온 필리핀 여성들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동두천 보산동 거리에 있는 업소들은 한 업소당 5명 이상의 필리핀 여성들을 고용하고 있으니 어림잡아 300~400백명 이상의 필리핀 여성이 종사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필리핀 여성들이 남의 나라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달러를 벌어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필리핀 여성들에 대한 법적 보호나 제도적 장치는 전무하다. 업소의 특성상 여성들에게 하루 할당량이나 의무적인 액수가 떨어질 것은 뻔하다. 경기가 안 좋은 요즘 필리핀 여성들은 이국땅에서 자신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온갖 위험에 노출된 채 미군을 상대하고 있다.
한국여성의 경우 성매매특별법이나 기타 국내법으로 최소한의 법적 보호가 가능하지만 외국여성들은 타 인종에게 배타적인 한국법이 보호해줄리 만무하다. 그녀들은 먼 이국땅에서 후진국 여성이란 이유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과거 윤금이 살인사건 등 미군범죄들이 동두천 보산동을 중심으로 일어난 것을 감안할 때 필리핀 여성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 저작권자 © 팝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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