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 1월 정홍원 총리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배춘희 할머니의 모습. ⓒ News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가 노환으로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8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따르면 배 할머니는 이날 오전 5시께 나눔의 집에서 운명했다.
배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생존자는 54명으로 줄었다.
고 배춘희 할머니는 1923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1942년 19살 때 취업사기로 강제 동원돼 1945년까지 중국 만주에서 4년 동안 피해자 생활을 했다.
절친한 친구 봉순이네 놀러갔다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성노예'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친구 봉순이와 정신대에 자원,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했다.
할머니는 중국에서 위안부 생활을 한 후 고국에 돌아왔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오랫동안 살았다. 광복 후 일본으로 건너가 엔카 가수 생활을 했다.
1980년대 초 친척의 도움으로 한국에 왔으나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모은 돈을 다 잃어버린 후로는 사람을 잘 믿지 못했다.
1993년 한국 정부에 일본구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됐으며 1997년 5월15일 나눔의 집에 입소해 생활해 왔다.
배춘희 할머니의 별명은 예술가였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미술 치료를 받을 때 놀라운 그림 솜씨를 발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눔의 집 마당 돌들을 모두 그리시기도 했으며 '중국에서', '고향생각' 등 사실묘사에 뛰어난 그림도 그리셨다.
소녀같은 마음으로 음악도 좋아했으며 노래와 장고도 잘한 만능재주꾼이셨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애환을 노래한 '소녀 아리랑'을 즐겨 부르시기도 했다.
할머니는 또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봉사활동을 오던 외고 학생들과 각국 언어로 대화를 나누시기도 했다. 시사에도 관심이 많아 TV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을 즐겨 보셨으며 중국 생활을 오래 한 할머니들에게 한국 드라마와 코미디 프로그 설명할 때 뿌듯하다고 하셨다.
언제나 낙천적이고 매력적인 생활 모습을 보이시려고 애썼던 할머니는 화장을 즐겨한 나눔의 집 패션 스타이기도 하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을 쉽게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쉽게 마음을 터 놓고 말을 나누지 않았다. 예민하고 불안증이 있으셨으며 병원에 가는 걸 극도로 꺼리시는 등 상처를 안고 사셨다.
장례식장은 분당 차병원, 나눔의 집에서 10일 오전 발인, 납골 안치 및 추모식이 있다. 장례식장 031-780-6160, 나눔의 집 031-768-0064.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