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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단체들의 혐한(嫌韓) 시위 속에서 미국 국무부는 지난 2월 말 "일본 내에서 인종과 국적에 따른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담긴 '2013년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냈다. 일본인의 혐한 감정은 뿌리가 깊다. 재일동포 작가 양석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최양일 감독의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를 보자. 일본인 택시 노동자 호소는 동료 기사인 재일조선인 강충남에게 "추(강충남)는 좋지만, 조센징(조선인)은 싫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호소는 소설에서도 "조센징은 교활하고 불결하고 교양이 없다"며 관습적 인식을 표출한다. 재일동포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GO'는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에 대한 신체적 차별의식을 보여 준다. 일본인 여자주인공은 남자친구가 재일조선인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아빠가 '한국이나 중국 남자와는 사귀지 말라. 한국인은 피가 더럽다'고 했다"며 신체 접촉을 거부한다.
재일조선인은 일제강점기와 제2차 세계대전 중 징용으로 강제 이주됐거나, 전후 정치적 혼란기를 겪으면서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이다. 이들은 한반도의 어느 한쪽 국민도, 일본인도 아닌 제3의 인생을 살아온 경계인들이다.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은 디아스포라를 외적인 이유에 의해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이라고 정의한다.
재일 조선인에게 치명적인 신체적 폭력이 집단적으로 가해진 사건이 1923년 9월 일본인들에 의해 자행된 간토(關東) 대학살이다. 당시 학살에 죽창과 쇠갈고리 등이 동원됐으며, 피살된 조선인 수천 명 중에는 10세 미만의 어린이도 다수 포함됐다고 한다. 국가기록원은 간토대학살 피해자 318명에 관한 정부 공식문서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진정한 화해의 조건은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역사적 진상 규명이다. 이번 명부 공개가 그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백태현 논설위원 hy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