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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위안부 문제, 현실적 출구전략을 찾자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은 최근 도쿄에서 자민당에서는 비교적 온건파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을 만났다. 그들조차도 공 전 장관에게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물며 대권을 쥐고 높은 인기를 누리는 아베 총리야 말할 것도 없다. 아베와 그를 둘러싼 민족주의적 보수파 정치인들은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들 중 일부는 그때 그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다는 궤변으로 꽃다운 나이에 인간성을 말살당한 여성들을 인격적으로 두 번 죽이고 있다.
일본이 민주당 천하가 되면 분위기가 호전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지만 민주당이나 자민당이나 위안부 같은 민감한 문제에서는 초록이 동색이다. 좋은 예가 2012년 2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민주당 정부 때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차관이 들고 온 이른바 3점세트 제안이다. 내용은 한·일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일본 총리가 사과하고,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찾아가 사죄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그들에게 피해보상을 한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외교부 아시아국장이었던 조세영 동서대학 교수는 그 제안 자체는 외견상 괜찮은 것으로 보였지만 그 배경과 경위가 문제였다고 말한다. “그건 법적 책임이 아니라 도의적 책임만 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그 정도를 가지고는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과 국민들에게 제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정부는 법적 책임을 지라는 요구 대신 국가책임을 지라는 요구로 문턱을 높여 논의가 불발되었다. 정부 예산으로 보상을 한다는 조항을 넣어 법적 책임을 피해가려는 일본의 꼼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노다가 8월에 가서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강변한 것이 사사에의 3점세트 제안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가를 웅변으로 증언한다.
일본에서 민주당 정부가 취한 가장 성의 있는 조치는 2010년 8월 한·일병합 100주년에 나온 간 나오토 총리 담화다. 그건 1995년 무라야마 담화같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가져 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하여 다시금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했다. 평가할 만한 담화였지만 5년 전 나온 무라야마 담화에 묻혀 한국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 버렸다. 반한, 혐한 감정이 일본 사회에 널리 확산된 지금은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간 나오토 담화는 고사하고 3점세트 제안의 수준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워 보인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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