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민족은 조그마한 한반도 내에서 외침(外侵)만 받아 왔는가? 세계사에서 한민족이란 동양 한 귀퉁이에서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불굴의 의지를 가진 민족일 뿐인가?

 이 질문에 대해 누군가는 광활한 영토를 통치했던 광개토대왕을 언급하고 반론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상고사 속 치우천황을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럽의 본토까지 정복한 세계 3대 정복자(칭기즈칸, 알렉산더대왕, 아틸라) 중 한 사람이 한민족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면?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국학원 130회 국민강좌에서 펼쳐졌다. 이종호 과학국가박사는 13일 오후 7시 대한출판문화협회 대강당에서 ‘세계 3대 정복왕 훈족 아틸라와 한민족’을 주제로 강연했다. 국학원이 주최하고 서울국학원이 주관한 이번 국민강좌에는 15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높은 관심 속에 강좌가 이뤄졌다.

▲ 이종호 과학국가박사는 13일 오후 7시 대한출판문화협회 대강당에서 ‘세계 3대 정복왕 훈족 아틸라와 한민족’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 박사는 "세계 3대 정복자 중 한 사람인 훈족의 아틸라가 한민족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밀접한 연관성은 단순히 훈족(흉노)이 한민족과 가까운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넘어서, 훈족이 곧 한민족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보물 635호로 지정된 ‘황금보검’으로 이 놀라운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 박사는 “황금보검은 당시 세계 최고의 보물인데, 로마 트라키아 지방(현재의 발칸반도)에서 제작되어서 경주 미주왕릉지구 계림로 14호에서 출토되었다. 그런데 신라와 로마제국 트라키아 지방은 7,000~8,000km가 떨어져 있다”며 시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박사는 "황금보검의 이야기는 신라 문무대왕비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며 "비문에는 경주 김씨의 시조(始祖)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이야기 속에 황금보검을 전해 준 사람들(훈족)과의 관계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 장사치가 판매를 목적으로 가져와서 팔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황금보검을 찬찬히 살펴보면 위쪽에 삼태극이 새겨져 있다. 거기에 누금세공 기법까지 4~5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대 최고의 보물이라고 한다.

▲ 황금보검

 그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훈족은 누구인가’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훈족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는 ‘흉노족’이라고 불렀다.  만주와 몽골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한 민족으로 말과 함께 이동을 기본으로 하며 살았다. 기동력 있는 기마부대로 편성되어 움직였고 철기시대에 왕성하게 활동했다고 한다. 이 박사는 “흉노라고 하면 흔히 '북방의 오랑캐’를 떠올리지만 이는 온전히 중국이 만든 말”이라며 “실제 흉노족은 중국보다 3배나 더 큰 거대한 제국을 호령했던 북방민족이었다”고 했다.

 훈족의 진가는 점령한 곳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박사는 “동에서 서로 향한 정복자 중에 유럽 본토를 침공한 이는 없었다. 칭기즈칸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도 유럽 초입에서 멈췄다”면서 “훈제국의 아틸라는 서로마를 제패하고 프랑스 오를레앙까지 진격했다. 그야말로 유럽 본토의 정중앙까지 간 것”이라고 했다. ‘아틸라’는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 있으나 유럽에서 ‘아틸라’는 최고의 정복자로 불린다고 한다.

 아틸라에 대한 세계의 평가가 이렇게 높은 이유는 훈족 아틸라의 유럽 침입이 가져온 결과 때문이다. 이 박사는 “375년 유목 기마민족인 훈족이 동, 서 고트인(게르만 민족)을 공격하였고 그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이동을 하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시키면서 찬란했던 로마 문명이 멸망하는 도화선이 되었다”고 말했다. 당시 게르만 민족의 새로운 정착지를 기준으로 새로운 국경들이 만들어졌는데 이 국경이 대부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훈족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된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황금보검'으로 돌아가 보자. 세계를 호령한 훈족의 원류가 아시아의 최동단에 자리한 한민족일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일까?

 그는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이 저술한 <로마제국쇠망사>라는 책에 주목했다. 책은 동쪽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훈족이 로마제국 멸망의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게 되자 ‘훈족이 누구인가’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 박사는 “이 책은 '훈족은 아무르강(헤이룽 강)과 한반도 사이에 산재한 부족으로 특히 훈족의 본류는 한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서술했다”며 “이 책이 편찬된 시기는 18세기 말로 조선에는 영조 때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 한정된 우리의 기존 역사관을 바꾸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모리스 부비에 아잠(Maurice Bouvier-Ajam, 프랑스인)이 1982년에 출간한 <아틸라, 신의 징벌(Attila, le Fleau de Dieu)>에 나오는 지도

 ‘훈족=한민족’이라는 등식은 다른 곳에서도 쉽게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이 박사는 모리스 부비에 아잠(Maurice Bouvier-Ajam, 프랑스인)이 1982년에 출간한 <아틸라, 신의 징벌(Attila, le Fleau de Dieu)>에 나오는 지도 한 장을 소개했다. 지도는 훈족의 시작이 ‘Corea’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의 신라와 가야 지역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1931년 당시 조선일보에 연재 기고한 ‘조선사’를 통해서도 잘 나와 있다. 이 박사는 "단재 선생은 고조선에서 조선, 선비, 여진, 몽골, 흉노 등의 종족이 나왔고 흉노족이 흩어져서 돌궐, 흉아리(헝가리), 터키, 분란(핀란드) 등의 종족이 되었다고 설파했다”고 했다. 훈족이 한민족이라는 것은 독일의 ZDF방송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핑크스, 역사의 비밀 - 잃어버린 고리찾기’ 편에서도 “훈족은 한반도에서 왔다”고 밝히고 있다.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 공학박사이자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은 이종호 박사는 ‘역피라미드 공법’으로 세계 20여 개국에 특허를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과학자이다. 그런 그가 역사 속 한민족의 존재, 한국인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박사는 “훈족 아틸라의 존재는 한민족이 세계사의 가장 중요한 한 장면을 장식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민족의 역사는 한반도나 동아시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라며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를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마음으로 수많은 퍼즐을 맞춰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며 강연을 마쳤다.

 다음 131회 국민강좌는 6월 10일(화)에 개최된다. 한명희 교수(명지대)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를 주제로 시민들과 만난다. 역사와 문화에 관심 있는 시민은 누구나 무료로 참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