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상을 만든 ‘부모’인 부부조각가 김운성, 김서경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보러 오면 옆 의자에 꼭 앉아보라”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숙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000차 수요시위 때 세상에 태어난 소녀상은 어느샌가 평화의 아이콘이 됐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인도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대사관을 응시하는 소녀상은 이제 서울 중구 중학동뿐 아니라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고양시 호수공원, 경남 거제시 거제문화예술회관 소공원에서도 만날 수 있다.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청 앞 올림픽공원에서는 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소녀상 어깨에 왜 새가 앉아 있나

소녀상은 해외로도 뻗어나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공원에 소녀상이 있다. 오는 8월에는 디트로이트 지역에 있는 사우스필드의 미시간 한인문화회관 앞에 세워진다. 미국 내 두 번째 소녀상이다.

소녀상의 생일은 2011년 12월 14일이다. 소녀상에 보내는 시민들의 애정은 뜨겁다. 비오는 날이면 근무하던 경찰이 우산을 씌워주고, 한겨울이면 추울세라 털모자와 털목도리를 둘러준다. 크리스마스엔 외로울까봐 미니 트리도 선물해준다. 시민들에겐 소녀상이 곧 위안부 할머니인 셈이다. 소녀상을 만든 ‘부모’인 부부 조각가 김운성(50), 김서경(49)씨는 “시민들이 조각상으로 느끼지 않고 아픈 소녀처럼 대한다. 내 자식 보듯, 엄마를 보듯 소녀상을 대한다”며 고마워했다.

“기도하면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제막식 하고 나서 크리스마스가 바로 있었어요. 모자를 씌워줄까 생각했는데 시민들이 먼저 양말 신겨주고, 담요 덮어주시더군요. 할머니들이 20년 동안 일본대사관 앞에서 외치던 걸 봐왔으니까 소녀를 더 짠하게 바라봐요. 불쌍하고, 애잔해 보이니까 보호해주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김서경씨)

해외 소녀상 건립에 대해 김운성씨는 “글렌데일은 시의회에서 결정해 소녀상을 건립했다”며 “처음 연락은 디트로이트에서 먼저 왔다.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도시인데 일본 자동차 회사가 너무 크다보니 일본 외교부를 통해 압력이 들어가 늦춰지다 올여름에 제막식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김씨는 “일본은 곤혹스럽겠지만 소녀상은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한다.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선 소녀상 건립이 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전 세계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모두 세웠으면 하는 꿈이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소통하고 공감하길 바랐어요. 그래도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이 생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소녀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바로 알고 할머니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게 돼 뿌듯해요. 나중에 할머니들이 다 세상을 떠나시더라도 소녀상이 끝까지 남아 그 역할을 할 거예요.” 김서경씨는 이같이 말하면서 “소녀상을 보러 오면 옆 의자에 꼭 앉아보라”고 권했다. 그 자리에 앉아 일본 대사관을 바라보면 다른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숙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김운성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가장 낮은 자리에 설치했다는 게 다른 조각상과 다르다”고 말했다. 인도에 조각상을 설치한 이유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직접 소녀상을 만져보고 쓰다듬으면 또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게 이들 부부의 말이다.

비 내리는 날이면 소녀상은 영락없이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모습이다. 햇볕이 나면 살짝 미소 띤 얼굴이다. 소녀상 어깨에는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와 살아 있는 우리를 연결해주는 영매다. 소녀상 뒤에는 모자이크 된 그림자가 있다. 그런데 어깨가 구부정한 할머니 형상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현재의 모습을 상징한다. 또 그림자에는 할머니들의 환생을 의미하는 나비 한 마리가 있다. 김서경씨는 “위안부 문제는 과거지만 현재이고, 미래로 연결된다는 의미다.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더라도 수요시위 하던 그 자리에 남아서 역사를 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소녀의 얼굴에선 슬픔과 분노, 다짐이 느껴진다. 김서경씨는 “어리지만 일본을 꾸짖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며 “일본대사관에서 불편해한다는 게 참 좋다”고 했다. 소녀는 발뒤꿈치를 살짝 들고 있다. 고국에 와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소녀의 아픔을 담았다. 소녀를 빚기 위해 1930~1940년대에 촬영했던 한복 입은 옛날 사진을 많이도 구해 봤다.

할머니들 “잘했다” 칭찬 세례

소녀상이 태어난 후 할머니들은 무척 고마워했다. “잘했다”고 칭찬도 받았다. “김복동 할머니는 눈이 잘 안 보이니까 더듬어서 형체를 만지곤 하세요. 수요시위가 딸들을 위해 하는 일이니 애잔하게 바라보시는 것 같아요. 할머니들이 대단하세요. 용감하신 분들이죠.”

20년간 곁에서 지켜보던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부부는 온 정성을 쏟았다. 1991년 김학선(1924~1997)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위안부’임을 최초로 증언해 큰 반향을 일으킨 후 위안부 피해자들이 속속 정부에 등록했고,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시작됐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도 참여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11년 늦봄에 김운성씨가 “뭐 도와드릴 일이 없느냐”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아갔다. 때마침 평화비를 만들려는 정대협과 일사천리로 이야기가 진행돼 소녀상은 1000차 수요시위에서 우리 곁으로 오게 된 것이다. “처음에 할머니들의 1000차 수요시위의 상징물을 만드는데 ‘할머니를 해야지, 왜 소녀로 하느냐’는 반대 의견이 많았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을 끌고 가서 성매매를 시킨 게 아니잖아요. 소녀들을 데려가서 그렇게 한 거니까요.”(김운성씨)

소녀상 제작은 아내가 주도했다. 남편은 석고를 뜨고 손과 발을 만졌다. “아무래도 여성의 감성과 남성의 감성은 다르니까요. 전쟁을 바라보고, 인권을 바라보는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욕심을 냈어요. ‘내가 할게. 건들지 마’ 했지요.”(김서경씨)

작가에게 작품은 분신이다. ‘내 새끼’인 소녀상이 수난을 겪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 씁쓸할 것 같다. 두 해 전 일본 극우단체 대표가 소녀상에 ‘독도는 일본땅’이라 쓰인 말뚝을 박는 테러를 저질렀다. 김서경씨는 “미국 글렌데일에선 친일 미국인이 봉지를 씌워놓고 ‘못난이’라고 조롱한 일도 있었다”며 “그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 화가 많이 났고 마음이 불편했다”며 말을 이었다. “정말 허접한 행동을 하는구나, 싶더군요. 하지만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홍보위원 같아요.(웃음)”

“소녀상 이름은 ‘순이’죠”

부부는 대학 때부터 민족미술협의회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참여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김운성씨는 민족미술협의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중앙대 예술대학 84학번 동기로 대학에서 소문난 캠퍼스 커플이었다. 아내는 “이 사람이 1학년 때만 머리가 길고 계속 깎고 다녔다”고 하자 옆에 있던 남편이 “내가 정말?”이라며 파안대소한다. “3학년 때 예술대학 학생회장 했고 저는 그냥 같이 열심히 일을 도왔죠. 주변에선 학생회장 애인이라며 ‘FL(퍼스트레이디)’이라고 불렀어요.(웃음)”

이들 부부는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있는 인혁당 사형수상과 동학100주년 무명용사탑, 효순·미선 추모상 등도 만들었다. ‘소녀의 꿈’ 연작을 만든 김서경씨는 “소녀상 이름은 ‘순이’”라며 “순이는 고유대명사다. 외국에 나가면 ‘수니(sonny)’로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슬하에 스물네 살 된 아들과 열세 살 된 딸을 두고 있다. 김서경씨는 “우리 딸이 많이 도와줬다”며 웃었다. “남들이 얼굴 모델을 딸이 했다고 아는데 그건 아니고요. 상상 속에서 만든 인물인데 딸이 의복을 입고 모델을 서줬어요. 이렇게 인터뷰하면 딸은 ‘왜 나는 같이 인터뷰 안 해?’라며 욕심을 내요. 딸이 굉장히 자랑스러워 해요. ‘내가 모델 섰어’ ‘내가 할머니 아이디어 냈어’ 하며 공동 제작자로서 뿌듯해해요.”

인터뷰를 하다 기자는 부부의 옷차림과 재킷에 달린 노란 리본에 눈길이 갔다. 상복 같은 검은색 옷을 입은 부부는 “세월호 사건 이후로 화려한 옷은 못 입겠더라”고 했다. “그저께(4월 30일) 안산 갔다 오고. 서울시청에는 매일 나가죠.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 마련된 전시장에 나가 일을 돕고 있어요. 작품을 모아 프린트를 해서 걸어주고 있어요.”

소녀상은 세월호 참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김서경씨는 “분통이 터질 것 같다”며 “또 당했구나, 싶을 것 같다”고 했다. 아내의 말을 남편이 받았다.

“할머니들이 늘 이야기하시는 게 있어요. ‘여러분,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셔서 국가를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안 당합니다.’ 모든 어른들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반성합니다’ 해야죠. 소녀상을 보고 또 반성을 했으면 좋겠어요. 세월호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치다 손톱 다 빠진 시신들이 나왔다는데 정말 가슴 찢어지죠.”

이들 부부의 바람은 무엇일까. 먼저 아내가 말했다. “소녀가 지금보다 더 많이 알려져서 일본이 사과할 정도의 힘을 가졌으면 해요. 민들레가 씨앗을 퍼뜨리듯 소녀가 위안부 할머니의 아이콘이 됐는데 더 많이 알려져서 일본이 독일만큼 반성을 하면 좋겠어요.”

“평화의 소녀상이 군국화되는 일본의 속살을 벗겨버렸잖아요. 전쟁범죄를 한·일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문제로 확산시키는 데 한 발짝 나갔지만 일본의 계획은 멈추지 않았어요. 평화헌법을 수정하려는 움직임도 있고요. 그런데 미국의 입장이 참 아이러니해요. 전쟁범죄 국가와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중국, 한국과 공존을 이뤄나가면서 평화를 정착시켜야 되는데 그러지 안잖아요. 군비 축소 방향으로 가는데 소녀상이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어쨌든 일본에 소녀상을 데려가서 한번 얘기해 보고 싶어요. 직접 가져가서 전시하면서 극우주의자들에게 묻고 싶어요. 소녀가 도끼를 쥔 것도, 칼을 든 것도 아니고 그냥 다소곳이 앉아 있는데 왜 문제로 삼는지, 그 문제에 대한 원인이 당신들인 것을 왜 모르는지 공개적으로 부딪혀보고 싶어요.”(김운성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