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16 19:25
수정 : 2013.12.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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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 검도 6단이 경북 구미시 광평동 구미운동장 내에 있는 구미시청팀 검도관에서 중단 자세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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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빛낸 스타] ⑤ 국제대회 개인전 첫 우승 이강호
10월 컴벳대회서 감격의 정상
‘스피드+노련미’ 만년 2위 벗어나
“2015년 일 세계대회 우승 목표”
“‘칼의 노래’가 생각났죠.”
10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3 스포츠어코드 세계컴뱃대회에서 검도 종주국 일본을 제치고 한국 검도 사상 국제대회 첫 개인전 우승을 일군 이강호(35·구미시청) 6단. 그는 당시 뭉클했던 순간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번뇌를 다룬 소설 <칼의 노래>가 떠올랐다고 했다. 이강호는 4강전에서 일본의 시메 히토시, 결승에서 헝가리의 두비 샨도르를 꺾으며 한국 검도의 한을 풀었다. 그는 “시상대 정상에서 일본 선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대한검도회는 지난달 창립 60돌 기념식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로상을 현역 선수인 이강호한테 주었고, 정부도 체육훈장 맹호장을 주어 이강호를 격려했다.
‘대기만성형’인 이강호는 실업팀인 구미시청뿐 아니라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당대 최고의 검객. 올해 봄철전국실업대회 단체전·개인전(6단부) 우승, 봉림기 전국실업대회 단체전·개인전(6단부) 우승 등 국내 무대에서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11일 구미운동장 안에 있는 구미시청팀 검도관에서 만난 이강호는 “상복이 터졌죠”라며 살짝 웃었다.
이강호 칼의 특징은 ‘공격적인 쾌검’.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의 허점을 찌른다. 공격해 오는 상대의 허점을 노리는 ‘기다리는 칼’과 대비된다. “상대를 부수고 들어가는 공격적인 칼이죠. 상대를 몰아서 혼란스럽게 만든 뒤 빈틈을 찾아가죠.” 검을 잡은 팔뚝은 23년 수련의 깊이처럼 근육이 섬세하게 굴곡져 있다. 머리치기와 손목치기에 능하지만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머리치기로 득점하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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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35·구미시청) 6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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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특출한 선수가 아니었다. 성실하게 잘하는 선수 중 한명이었다. “대학 1학년 때도 이름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검도부원 10명 중에 5등 하는 수준이었죠.” 그러나 탄탄한 기본기의 힘으로 목포대 3학년(당시 3단) 때인 1999년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186㎝(86㎏)의 큰 키에 스피드와 힘이 뛰어난 그를 눈여겨본 장홍균 당시 대표팀 감독이 뽑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9명의 선배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훈련하다 2000년 미국 샌타클래라 세계대회(11회)를 몇 달 앞두고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검도가 스피드와 체력으로 되는 줄 알았는데, 내 칼이 아무리 빠르고 힘이 좋아도 통하지 않았던 겁니다.” 대표팀 감독의 눈에 ‘2%’ 부족해 보였다. 장 감독은 “나이가 어려서 숙련도와 노련미가 부족했다. 검도는 기다리고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성급했다”고 회고했다.
그때 아픔을 뼈에 새긴 이강호는 이후 2003년 영국 세계대회(12회)부터 2012년 이탈리아 세계대회(15회)까지 4차례 연속 국가대표로 나가 단체전에서 우승(2006년), 준우승(2003·2012년)을 일구는 데 선봉이 됐다. 그러나 14살이던 순천 승평중 1학년 때부터 검을 쥔 이강호는 일본세에 밀려 세계대회 개인전 결승에 올라가보지는 못했다. 2009년 브라질 세계대회 4강전에서 일본의 일인자 데라모토 쇼지에게 져 3위에 그친 것이 가장 아까웠다. 이강호는 “일본에서 검도를 배운 심판들이 전세계에 많아서 판정까지 가면 한국 선수가 불리합니다. 그래서 일본 선수를 만나면 한판으로 이기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10월 모스크바 컴뱃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게 더 감격스러웠다.
이강호의 목표는 2015년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대회(16회) 개인전 우승이다. 종주국인 일본에서 열리기 때문에 더 욕심이 난다. “‘검도의 심장부’에서 이긴다면 일본이 한국 검도에 강한 인상을 받을 겁니다.”
현재 국내 성인 엘리트 선수들의 풀은 16개 실업팀의 160여명과 일부 대학팀 선수들이 전부다. 검도를 국기의 하나로 여기는 일본의 선수층에 비하면 저변이 열악하다.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30대 중반의 이강호도 체력에 부담을 느낀다. 검도는 거리 싸움인데 젊었을 때는 거리가 멀어도 근력이 받쳐줘서 먼 거리에서도 상대를 가격할 수 있었다. 이강호는 “먼 거리에서 무리하게 공격을 하면 빈틈이 생기고 실점합니다. 거리 싸움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나만의 거리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제일검 이강호는 ‘검도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됨됨이가 바른 사람’으로, 시간이 흘러도 김치찌개처럼 언제나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칼은 날카롭지만 둥글둥글하게 서로 감싸면서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구미/글·사진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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