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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국적은 달라도, 이야기들은 궁극적으로 다 이어져”

기사입력 2013-12-16 03:00:00 기사수정 2013-12-1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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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여성 소설가 정이현-에쿠니 가오리 日요코하마서 문학낭독회

15일 일본 요코하마 가나가와근대문학관에서 한국과 일본의 단편소설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왼쪽부터 쓰지하라 노보루 근대문학관장,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와 정이현.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문학의 역할에 대해 진솔한 대담을 나눴다. 한일문화교류회의 제공
《 “정치, 그림, 음악에 단 하나의 사실만이 깃들어 있다면, 소설이 존재할 수 있는 여지가 없을 거예요. 세상의 여러 가지 측면을 담아내기 위해서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에쿠니 가오리) “‘삼풍백화점’은 제 단 하나의 자전소설이에요. 뉴스는 백화점이 어떻게, 왜 무너졌는지 다루지만, 문학에서는 그 백화점 안에 사람이 살았고, 그들의 친구들이 그들을 그리워하고,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사회에서 그것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정이현) 한일관계 경색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양국의 문화를 나누는 자리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15일 일본 요코하마(橫濱)에 있는 가나가와(神奈川)근대문학관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 소설가인 정이현(41)과 에쿠니 가오리(49)의 문학낭독회 ‘말의 음률을 타고’가 열렸다. 》

에쿠니가 쓰지 히토나리와 함께 쓴 ‘냉정과 열정 사이’는 한국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됐고,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만 30종이 넘는다. 정이현의 경우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와 단편 몇 편이 일본어로 번역됐다. 이들은 2009년 서울국제도서전 행사에서 만난 적이 있다.

한일문화교류회의(위원장 정구종)와 일한문화교류회의(위원장 가와구치 기요후미·川口淸史)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두 나라 문화의 소통과 공유를 위해 마련됐다. 이날 낭독회가 열린 문학관 2층 홀 220석은 일본인으로 가득 찼다.

에쿠니가 2004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소설집 ‘울 준비가 되어 있다’에 수록된 단편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을, 정이현은 2006년 현대문학상을 받은 단편 ‘삼풍백화점’을 낭독했다. ‘전진…’은 시어머니가 맡긴 고양이를 남편이 버리면서 소통이 단절된 부부의 모습을 그렸고, ‘삼풍백화점’은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일본 관객들은 일본어 텍스트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소설가들의 낭독을 경청했다.

낭독을 마친 뒤 가나가와근대문학관장인 작가 쓰지하라 노보루(십原登)의 사회로 두 소설가의 대담이 이어졌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난 뒤 구덩이에 R(소설 속 삼풍백화점 판매원)의 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 소설을 통해 R라는 개인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3·11 동일본 대지진을 포함해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재난에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사람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싶었습니다.”(정)

“내가 쓰는 소설이든 다른 나라 소설가의 소설이든, 그 이야기들이 궁극적으로는 다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삼풍백화점을 읽고 나니 1990년대의 한국, 여성 주인공, 친구 R까지 경험하지 못한 시대상황이지만 내 몸에 흡수돼 나의 일부가 된 듯합니다. 소설은 기억이어서, 현실에서 그 시대가 없어진다 해도 진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에쿠니)

쓰지하라 관장은 “에쿠니가 각기 다른 세대의 인물을 등장시키며 ‘모르겠다, 숨막힌다’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반면 정이현은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을 통해 1996년의 일을 서랍 속에서 다시 꺼낸다. 구조는 완전히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가슴에 울림을 준다”고 평했다.

나고야(名古屋)에서 온 60대 여성 나카자와 마리코 씨는 “얼어붙은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 오늘 같은 문화교류가 꾸준히 이어지면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꾸준했는데, 이번 낭독회를 통해 소설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다”고 반겼다.

요코하마=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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