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Q&A|일본군 위안부 문제, 일본정부의 조사는… 한국에서만 청취조사, 다른 나라에서는 실시 안 해

October 15, 2013

오다 겐지=小田健司

Q: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어떤 조사를 했나.

A: 우선, 성청(省廳) 등에 남아 있는 1991~1992년의 자료를 조사해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정부의 관여를 인정하는 담화를 냈다.

Q: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닌가.

A: 그렇다. 여성을 강제 연행한 사실을 인정하라고 요구한 한국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 측은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16명의 청취조사도 했다. 이 증언을 토대로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에서 본인 의사에 반하는 징집 사례가 많았다고 했다.

Q: 일본정부는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한 것인가.

A: 조사는 한국을 의식한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청취조사를 하지 않았다.

Q: 조사를 통해 무엇을 알게 됐나.

A: 1932년 상하이 사변 무렵부터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시아 각지에 군의 요청으로 위안소가 설치됐다. 대부분은 민간업자가 경영했으나, 군은 관리에 관여했다.

Q: 위안부는 어느 나라 여성들이었나.

A: 조사로 밝혀진 것은 일본 외에 한반도와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다. 숫자는 명확하지 않다.

Q: 조사 이후엔 어떻게 됐나.

A: 일본정부의 주도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보상사업을 펼쳤다. 한국, 대만, 필리핀에서 신청한 285명에게 한 사람당 200만 엔을 지급했다. 기금은 2007년에 해산됐다.

Q: 보상은 끝난 것인가.

A: 일본정부는 조약을 맺음으로써 국가 간의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므로, 보상차원의 자금은 지급할 수 없다는 뜻을 양보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상금은 민간차원에서 모금됐고, 이를 이해하고 받은 사람도 있으나 일본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정식으로 보상할 것을 요구한 사람들은 수령을 거부했다. 중국과 북한 등 보상사업을 추진하지 않은 나라도 있다.

오다 겐지=小田健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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