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한국 마트서 파는 생선 안전"

  • 진중언 기자

  • 입력 : 2013.10.04 03:01

    [이마트 수산물 관리 트레이너 '사시미 선생' 히구치 유키하루]

    전국 물류센터서 방사능 검사 "걱정 없이 마음껏 먹어도 돼"
    수산물 코너 직원 1200여명에게 생선 손질·진열법 등 10여년 교육 "입맛 한국식 돼… 과메기가 최고"

    지난 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이마트 수산물 코너. 도마 위에 중량 40㎏가량의 소형 참치 한 마리가 놓였다. 일본인 히구치 유키하루(樋口幸治·56)씨가 큰 식칼로 능숙하게 뱃살 한 덩어리를 썰어냈다. 식칼을 놓고 길쭉한 회칼로 바꿔 든 히구치씨는 참치 덩어리를 더 작은 크기로 자르면서 둘러선 직원들에게 일본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참치회를 준비할 때는 담뱃갑 크기의 스테이크를 만든다고 생각하세요. 손질하기도 편하고, 소비자들 먹기도 좋거든요."

    일본 시즈오카현 출신인 히구치씨의 정식 직책은 '수산물 카테고리 트레이너'이지만 이마트 직원 사이에서는 '사시미(생선회) 선생님'으로 통한다. 전국 이마트 매장을 순회하며 총 1200여명에 달하는 수산물 코너 직원에게 회 뜨는 법, 생선 손질하는 법, 수산물을 관리하고 진열하는 요령 등을 교육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참치·연어 같은 고급 어종부터 생선회로 많이 먹는 광어나 우럭, 고등어·갈치·오징어·새우 등 이마트에서 파는 모든 수산물이 그의 강의 교재이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생활해온 그는 2만6000여명에 이르는 이마트 임직원 중 단 2명뿐인 외국인 직원이기도 하다.

    지난 2000년 수산물 코너 경쟁력 강화를 고민하던 이마트는 일본의 유명 컨설팅 업체로부터 생선 손질 전문가로 손꼽히는 히구치씨를 소개받았다. 그는 당시 시즈오카현 내 한 대형 수퍼마켓 체인에서 부점장을 맡고 있었다.

    히구치씨는 처음엔 이마트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지만 담당 임원과 수산팀장이 두 번이나 일본을 방문하며 공을 들이자 스카우트에 응했다. 히구치씨는 "한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기술을 전수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히구치 유키하루씨가 1일 이마트 성수점에서 참치를 부위별로 잘라내고 있다.
    히구치 유키하루씨가 1일 이마트 성수점에서 참치를 부위별로 잘라내고 있다. 전국 이마트 수산물 코너에서 일하는 1200여명의 직원이 모두 그의 제자다. /김연정 객원기자
    히구치씨는 "처음 한국에 오니 개별 어종의 특성에 맞는 '선도(鮮度) 관리'가 가장 시급해 보였다"며 "백화점이든 동네 수퍼마켓이든 생선에서 내장과 피를 빼고 진열만 할 줄 알았지 일본처럼 체계적인 선도 관리를 하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삼치는 배 쪽이 쉽게 물러지기 때문에 얼음에 진열할 때 등 쪽이 아래로 가게 놓아야 합니다. 오징어회는 얼음 위에 바로 진열하면 특유의 갈색 빛이 하얗게 변하기 때문에 채반 등에 올려서 진열해야 하죠."

    그는 다른 어종의 선도 관리 방법도 소개해달라고 하자 "영업 비밀"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이마트가 염분이 들어간 냉염수기를 이용해 수산물의 신선도를 높인 것도 히구치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저는 맨 처음 칼 가는 법부터 가르칩니다. 수산물 관리 능력은 칼을 다루는 기본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죠." 히구치씨는 "단순한 기술 전달도 중요하지만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더 좋은 상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고민하라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이세우 이마트 수산물 담당 바이어는 "워낙 꼼꼼하고, 쉴 새 없이 떠들며 이것저것 주문하는 게 많아 직원들이 그에게 '우루사이 구찌(시끄러운 입)'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방사능 오염수 유출 문제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수산물 판매가 많이 줄어 걱정"이라면서 "내가 일본 사람이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마트에서 파는 생선은 방사능 걱정 없이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마트는 8월 말부터 전국 3개 물류센터에서 모든 수산물에 대해 방사능 측정 검사를 하고 있다.

    히구치씨는 "한국서 살면서 입맛이 완전히 변했다"며 "김치찌개에 고춧가루 더 풀어서 먹고, 이제는 우동을 먹어도 청양고추를 좀 넣어야 한다"며 웃었다. 전국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지방 별미를 빠짐없이 먹는 것도 한국 생활의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제일 맛있는 게 뭐냐'고 묻자 처음으로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로 대답했다. "과메기가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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