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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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국가보안법

[중앙일보] 입력 2004.09.08 18:39 / 수정 2004.09.09 08:38
법은 숨결이다. 법을 만든 사람의 욕망과 세계관과 이해관계가 요동친다. 법은 사람처럼 모순 덩어리이고 그러면서 확장과 소멸을 반복한다. 56년간 일곱 차례 개정된 국가보안법은 체제를 지키기 위해 체제의 가치를 부정하기도 했던 어두운 기억을 갖고 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의 가치를 부정했던 과거사다.

보안법은 1948년 헌법이 제정된 뒤, 그해 12월에 대한민국의 다섯째 법으로 태어났다. 경황없는 국가 형성기에 형법은 5년 뒤에나 만들어졌으니 보안법은 법 중의 맏형인 셈이다. 49년 한 해 동안 이 법에 걸려든 사람이 11만8000명이었고, 132개 정당과 사회단체가 해산됐다.

보안법은 한쪽은 공산주의를 베고, 다른 쪽은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양날의 칼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칼은 한쪽 방향으로 주로 사용됐다. 야당과 언론과 무고한 시민의 희생이 늘어갔다. 단출했던 6개 조항은 58년에 세번째 바뀔 때 40개 항으로 늘어났다. 당시 동아일보는 "신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은 공산당이 아닌 자들도 공산당과 같이 처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신문은 관보 노릇을 하지 않는 한 폐간하거나 망해야 할 것.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헌을 변란하겠다는 것 아닌지"라고 반문했다. 과연 권력은 무술 경위를 동원해 야당 의원들을 국회 밖으로 몰아내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그 법으로 경향신문을 폐간시켰다.

그러곤 61년 5.16쿠데타. 권력은 한 술 더 떠 반공법을 추가로 제정했다. 반국가단체의 목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그 단체와 비슷한 주장을 하기만 하면 고무.찬양.동조죄로, 용공이란 딱지가 붙어 죄인이 돼야 했다. 80년 반공법은 다시 보안법으로 흡수됐다. 그 뒤로도 10여년, 보안법은 강성했으나 점점 피로해졌다.

그 시절 보안법의 죄인들이었거나 그들을 변호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지 6년이 됐다. 권력이 그를 외면하자 보안법은 한쪽뿐 아니라 다른 쪽 날도 무뎌졌다.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로도 쓰이지 못하고 공산주의를 베는 실력도 형편없어졌다. 그 보안법이 이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을 받다가 죽을지 모른다. 어떤 경우든 어두운 과거는 도려내고, 나라의 체제는 강해져야 한다. 우선 그 공포스러운 이름부터 바꾸면 좋겠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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