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27 19:56
수정 : 2012.05.2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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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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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촌 등 발전소4곳 가스터빈 공급
‘전범기업 입찰제한’ 지침 효과 없어
일제 강점기에 강제징용당한 한국인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를 외면해온 미쓰비시중공업이 올해 한국에서 수천억원대의 발전소 설비 수주 실적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미쓰비시중공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계속 응하지 않을 경우 한국에서 거둔 사업이익의 압류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27일 한국전력 산하의 주요 발전회사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확인한 결과, 미쓰비시중공업은 올해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동서발전과 서부발전 등이 발주한 발전소 4곳에 가스터빈(M501 J형) 10기를 납품하는 계약을 맺었다. 4곳의 발전소는 율촌발전소(2기), 신울산발전소(2기), 평택복합화력발전소(2기), 동두천발전소(4기)로 모두 95만~190만㎾급의 대규모 발전소들이다. 이 가운데 평택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서부발전은 지난 1월 미쓰비시중공업과 마루베니상사로 구성된 컨소시엄과 4342억원에 납품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와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8월 마련한 ‘일제 전범기업 입찰 제한 조처’가 한국 시장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이 수주 활동을 하는 데 아무런 제약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국회와 재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 조달협정상 개방 대상 공공기관이 아닌 중앙부처 7곳과 전국 기초자치단체, 263개 공공기관 등이 발주하는 사업에서 일제 전범기업의 입찰 자격을 제한하기로 합의했으나, 지침 수준인데다 그나마 한국전력 등을 제외했다. 한 발전회사 관계자는 “국제 입찰인데다 이전부터 진행해오던 것이어서 특정업체(미쓰비시중공업)의 참여를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국언(44)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무국장은 “재정부에서 해당 기관에 전범기업 입찰 제한 관련 협조공문을 보낸 뒤 참고자료로 삼으라는 정도로는 효과를 전혀 거둘 수 없다. 중국 정부가 일제의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는 일본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단호하게 밝힌 뒤 니시마쓰건설이 백기를 든 것을 교훈으로 삼아, 우리 정부도 전범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압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니시마쓰건설은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한 중국인 징용 피해자 543명에게 개별 협상을 통해 2009~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약 47억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니시마쓰건설은 같은 건설 현장에서 중국인과 함께 강제노동을 한 한국인 110명에겐 단 한푼의 보상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미쓰비시중공업이 대법원 판결에 따른 파기 환송심에서 배상 또는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확정판결이 내려진 뒤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에서 수주한 공사대금이나 이익에 가압류를 신청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이끈 최봉태 변호사는 “공사대금이 있다면 지급을 못하도록 할 수 있고, 채권에 대해서는 추심 명령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이승준 김정필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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