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집?” “이 집도 아니고 저 집의 정체가 뭘까?” “언제 이런 곳이 생겼지?”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하문터널 위쪽. 낡은 건물들 사이에 새로 들어선 하얀색 건물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연신 발길을 멈춘다. 간판도 없다. 담벼락에 조신하게 적혀 있는 ‘저집’이라는 글씨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평지에서 반 계단은 내려앉아 건물들 사이에 끼어 있는데도 사람들이 고개를 들이밀고 사진기를 들이댄다.

서울 도심에서 ‘문화예술촌’으로 한창 뜨고 있는 부암동의 새 명소로 떠오른 ‘저집’의 정체는 국내 최초의 젓가락 갤러리다. ‘저집’은 일본과 중국에 밀려 있는 한국 젓가락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만든 젓가락 브랜드이다. 젓가락을 뜻하는 한자어(箸)를 사용해 만든 조어다. 강원도 옻칠 무형문화재와 손을 잡고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원주 옻을 사용해 디자인을 현대화한 옻칠 젓가락이 이곳에서 전시·판매되고 있다.

‘저집’ 젓가락은 공식 론칭을 하기도 전에 한국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떠올랐다. 오는 9월 4일 시작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베트남 순방길에 동행할 ‘대통령의 선물’로 선택됐다. 최근 청와대 해외순방 선물 선정팀에서 ‘저집’의 옻칠 젓가락을 순방 선물 중 하나로 선정해 8월 28일 300벌의 젓가락을 주문했다.

◇상류층 고급 문화로 호주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에서 급부상하는 ‘젓가락’

중국과 일본 젓가락에 밀려 있던 한국 젓가락의 반격이 시작됐다. 한국을 알리는 대표 문화상품으로 젓가락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라지고 있던 젓가락 문화를 다시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밥상머리 교육의 핵심이 젓가락이라는 주장을 펴며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젓가락 교육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젓가락은 종주국인 한·중·일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고급 문화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10여년 전부터 젓가락 열풍이 불기 시작한 호주를 비롯해 미국·영국 등에서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식사예절로 젓가락질을 가르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 젓가락의 중요성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충북 청주남평초등학교는 지난해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수저면허증제’를 도입했다. 1분 내에 정해진 개수의 콩을 옮기는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에게 면허증을 발급하고 있다.

김미환 청주남평초교 연구부장은 “급식지도를 하다 보니 젓가락질을 못하는 학생이 너무 많았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이 있듯이 단지 젓가락 사용 교육이 아니라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2차례 수저 사용법을 가르치는 시간을 따로 갖고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면허증을 발급하니 아이들도 흥미로워한다. 올해가 2년째인데 지난해보다 합격률이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청주남평초교의 ‘수저면허증제’가 관심을 끌면서 음성감곡초교 등 ‘수저면허증’ 제도를 도입하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11월 11일은 무슨 날일까? ‘빼빼로 데이’? 이제부터 11월 11일을 ‘젓가락의 날’로 기억해야 한다. ‘젓가락의 날’ 운동을 펴고 있는 사람은 대림대학교 자동차공학과 김필수 교수이다. 김 교수는 ‘올바른 젓가락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기능성 젓가락을 개발하는 등 ‘젓가락 전도사’로 뛰고 있다.

김필수 교수는 주간조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젓가락 문화가 심각하다.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지고 부모도 올바른 젓가락질을 못하다 보니 아이들이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다. 일본은 젓가락 박물관을 만들고 젓가락의 날을 만드는 등 젓가락을 통해 일본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고 중국도 공자학원 등에서 젓가락질을 가르치는데 우리 정부는 관심조차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필수 교수가 성인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젓가락 사용 실태를 보면 성인 62%가 손가락을 잘못 사용하는 ‘일부 불량’이거나 ‘완전 불량’이고, 초등학교 5학년의 경우는 올바른 젓가락질을 하는 경우가 20%에 불과했다.

◇일본에선 ‘젓가락 축제’ ‘젓가락의 날’ 등 국가적 행사, 유튜브 젓가락 동영상만 5만여개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 젓가락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지난 8월 22일, 일본의 대표적 온천관광지인 시즈오카현 이토온천 지역. 태평양을 향한 ‘오렌지해변’에 나무젓가락 수천 쌍을 쌓아올린 공양탑이 세워졌다.

젓가락을 태운 불길이 하늘로 치솟자 주변에 있던 시민과 관광객들은 저마다 건강을 기원하며 소원을 빌었다. 젓가락 공양탑 점화는 매년 이토 지역에서 열리는 젓가락축제의 하이라이트이다. 젓가락축제는 이토 지역의 여름을 마무리하는 축제로 젓가락을 태우며 불꽃놀이·가마 퍼레이드 등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

젓가락축제는 단지 이토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1975년부터 젓가락의 공헌을 기리고 올바른 젓가락 사용법을 배우자는 의미에서 8월 4일을 ‘젓가락의 날’로 정했다. 이날 전국의 신사 등에서 젓가락 감사제를 지내고 젓가락을 태우는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일본의 젓가락 역사는 한국보다 400년 이상 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젓가락 문화와 산업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젓가락은 일본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꼽힌다. 서양에서도 스시가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젓가락질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 구글에서 젓가락(chopsticks)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800만개에 가까운 웹문서가 검색된다.

유튜브에서도 젓가락 사용법(How to use chopsticks) 동영상이 5만여개가 올라와 있다. 조회수가 100만에 이르는 것도 있는데 일본·중국식 젓가락 사용법이 대부분이다.

김필수 교수는 “젓가락은 과학이다. 사람이 젓가락질을 할 때 모두 64개의 근육이 움직인다. 두뇌발달은 물론이고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쇠젓가락은 손의 움직임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중국, 일본의 나무젓가락보다 뇌가 20~30%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이큐가 세계 최고인 것은 젓가락질 덕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에는 밥상머리에서 예의범절을 다 배웠는데 이게 완전히 무너졌다는 점이다. 정부가 통감을 해야 한다”면서 “젓가락이 무너지면 교육이 무너지고 우리 미래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교수는 “올바른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사단법인으로 만들고 작업하다 중단한 젓가락 책도 만들어야 하는데 자동차학계 쪽 일이 너무 바빠서 미뤄 두고 있다”면서 “정부가 인식을 바꿔 젓가락 문화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더 많은 기사는 2013년 9월 2일 발매된 주간조선 2272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