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등록 일시 [2013-07-29 11:29:01] 최종수정 일시 [2013-07-29 13: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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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지난 2010년 미주 최초의 위안부기림비가 뉴저지 팰리세이즈팍에 건립된 것은 2007년 미 연방 하원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위안부 결의안’이 단초가 됐다.
일본이 2차대전 중 자행한 위안부 범죄의 역사적 책임을 명시하고 사과와 배상을 촉구한 결의안이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도록 당시 유권자센터(현 시민참여센터)와 고교생 인턴들이 위안부기림비 건립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후 3년, 미국의 지방정부 최초로 버겐카운티 위안부기림비 등 동부에 3개의 기림비가 세워졌고 서부엔 30일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 건립되는 해외 최초의 위안부 소녀상 등 2개의 기림비가 존재한다.
가끔 한국에 있는 이들이 궁금해 한다. 왜 일본과 상관없는 미국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고 기림비가 세워지냐고.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다. 자유와 평등, 인권 등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로 탄생한 나라이다. 세계 220여개 민족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터전을 일군 나라이다. 공공장소에 나치 학살 희생자를 기리는 홀로코스트 기념비와 아일랜드 대기근 추모비, 흑인인권 기념비, 아르메니아 학살 추모비가 서 있는 것도 시대와 장소, 인종은 달라도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미국의 건국 이념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은 일본이 한사코 숨기려 했고 피해자 한국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인류 최악의 집단 성범죄를 전 세계에 고발하며 전쟁의 추악함과 여성, 어린이 인권 문제를 제기한 역사적인 장거였다. 미국이 관심을 갖자 일본은 동요했다. 아무리 한국이 떠들어도 눈하나 깜짝 않던 일본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바로 미국의 손으로 일본의 뺨을 후려치는 작동 방식이다.
그러나 결코 공짜로 이뤄진 일은 아니었다. 뉴욕과 LA의 한인들이 연방 의원들이 있는 워싱턴DC로 수없는 발품을 팔아 설득하고 또 설득하여 이룩한 ‘풀뿌리 로비’의 개가였다.
미국에서 살면서 의로운 한인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의 국적이 대한민국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다.
간도협약 ‘100년 시효설’로 우리 민족의 고토, 간도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했을 때 “도시락 폭탄을 든 심정으로 대한민국 국새를 위조해서라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던 한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샘물교회 신도들이 피랍됐을 때 아픈 여성 대신 인질이 되겠다며 현지 접촉을 하다 미 정부의 만류를 받은 한인, 유태인 명절은 쉬는데 왜 우리는 안 되냐며 설날을 한인들이 많은 뉴욕의 공립학교 공휴일로 지정하는 운동을 펼치는 한인. 태극기 명함 수천 장을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깃발인 태극기를 알리는 운동을 펼치는 한인, 미국시민권자 1호인 서재필 박사의 후예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어찌보면 21세기의 독립군과도 같았다.
런던올림픽에서 일본 체조대표팀이 전범기 컨셉의 디자인을 한 유니폼을 입고 나오고 운동장에서 체육관에서 부끄러운줄 모르고 욱일전범기를 흔들어대는 응원단을 보고 격분, ‘일전퇴모(일본전범기퇴출시민모임)’를 결성한 것도 이곳 한인들이었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일본 전범기 배너를 만들었을 때, 뉴욕시가 전범기 컨셉의 광고 디자인 홍보물을 온오프라인에 걸쳐 뿌렸을 때 강력하게 항의해 공식 사과를 받아낸 것도 이곳의 한인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본국에선 전범기 닮은 광고물이 공공연히 신문 방송 온라인에 출몰하고 어느 지방 공무원들은 야유회 때 유사 전범기를 흔들어대는 짓을 버젓이 저질렀다. 일부에선 “전범기를 닮았다고 문제삼는 건 디자인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한번 물어보자. 일본의 전범기와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는 동급이 아닌가? 나치의 문양은 유사한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전범기를 앞세운 채 3400만 명을 죽이고 20만여 명의 꽃다운 소녀들을 성노예로 삼은 일본의 전쟁범죄는 유태인 600만여 명을 학살한 나치의 만행을 넘어서는 인류 최악의 범죄이다.
욱일전범기 비스무레한 것도 얼씬대면 안 되는 이유다. 컬러도, 모양도 다른 유사 전범기를 뉴욕시가 인정하고 사과했는데 전범기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인은 통크게(?) 받아들이자는 건가? 우리 언론도 피의 살육으로 얼룩진 전범기에 ‘욱일승천’이라는 좋은 말을 더 이상 진상해선 안된다. 욱일전범기, 아니면 일본전범기라 불러라.
2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일전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한국 축구가 일본에 1-2로 져서가 아니다. 결단코 용납해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바로 일본의 전범기다. 일본 응원단이 대형 전범기를 경기 중 휘두른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일본을 35년 간 식민지배하고 20만 명의 소녀들을 성노예로 삼고 수천만 명을 전쟁에서 살육한 그 상징의 깃발을 일본 경기장에서 감히 들어올릴 수 있었을까. 안전요원들의 제지로 일장기를 대신 들었지만 이미 저들은 우리 안방에서 전범기를 보란 듯 흔들어대며 순국선열을 욕보이고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조롱했다.
전범기는 반입 자체가 불허됐어야 한다. 저렇게 큰 전범기를 일본 응원단이 들고오는데 몰랐다면 말이 안 된다. ‘울트라니뽄’엔 이처럼 관대하면서 우리 문화체육관광부와 축구협회는 ‘붉은악마’가 애국가 제창 시 펼치려 한 조선 제왕의 투구와 갑옷 현수막은 불허 방침을 통보했다. 일본이 식민시대 몰래 빼낸 조선의 제왕 투구 사진이 펼쳐지면 일본이 망하기라도 하나?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대신 붉은악마는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걸개를 선보였다. 그리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유훈을 플래카드로 펼쳤다. 그러나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축구협회의 의뢰를 받은 용역업체가 철거하려 한 것이다. 추악한 전범기를 노골적으로 흔들어댄 일본의 정신병자들과 ‘역사를 잊지 말자’고 침묵의 함성을 지른 우리의 붉은악마가 동급이란 말인가?
백보 양보해서 그것이 정치적 제스추어라 해도 우리 경기장에서 우리 응원단이 그 정도 몸짓도 못 한단 말인가. 만약에 국제축구연맹(FIFA)이 문제를 삼는다면 더 잘 된 일이다. 일본의 추악한 과거 역사가 널리 홍보될테니 말이다.
붉은악마가 잔여 경기에서 응원을 보이콧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아니,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자주독립국가 대한민국 경기장에 있었던 게 아니라 일본의 통치를 받는 식민국가 경기장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왜 축구협회가 박종우의 ‘독도는 우리땅’ 해프닝 때 일본협회에 극구 머리를 조아렸겠는가. 그게 아니라면 왜 문체부가 응원 걸개를 놓고 반입을 막는 외압 논란을 일으켰겠는가. 그대들은 누구의 정부요, 누구의 협회인가, 미국의 한인들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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