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29 19:21
수정 : 2013.04.2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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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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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에는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러워서 그런지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등 약간의 시차를 두고 피던 꽃이 거의 동시에 산야를 덮고 있다. 게다가 이제 막 돋아난 연두색의 신록까지 더하니 정말, 자연이 주는 새 생명의 향연에 흥이 절로 나고, 감격을 주체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 생명의 잔치 뒤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 잔치에 초대받기는커녕,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하루 평균 43명이나 된다고 한다. 남은 가족들의 비통한 마음을 생각하면, 같은 땅에 살면서 봄을 즐기는 것도 죄스럽다. 신이 준 소중한 생명을 인위적으로 꺾어서는 안 되며, 만약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렇게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최대의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지난 8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오이시디 평균의 2배라는 압도적 수치를 기록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문명을 향해 달려왔는데, 도착하고 보니 야만이더라”라는 글귀가 자꾸 생각난다. 즉 한국은 경제성장과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라고들 자랑하지만, 사실 깊은 병에 걸려 있으며, 이제는 성장과 경쟁이라는 우상에 사로잡혀 왜 우리가 그 길로 가려 했었는지에 대한 질문조차 던지기를 포기하고, 그래서 치유의 길까지 잃어버린 나라가 되었다.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150개국 중 56위에 머물고, 생명의 약동을 마음껏 자랑해야 할 청소년 2명 중 1명이 자살을 생각하는 나라를 발전된 나라, 문명국가라 부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자살 유발 후진국에 살고 있다.
그런데 매년 증가하기만 하는 자살자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자살을 오직 개인 문제로 치부하면서 통계가 보여주는 진실을 외면하는 정치권과 사회의 태도다. 청소년, 장년, 노인층 각각의 자살 이유나 배경도 물론 상이하다. 그러나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자살 빈도나 양상에서 의미있는 특징이 나타나도 계속 개인의 선택이라고 우길 것인가?
외국 연구에서도 노동자와 군인의 자살 위험이 높다는 조사가 있고, 한국에서도 이미 제주대 의대팀, 최근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최하위 계층이 가장 자살 위험도가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서울시의 ‘자살 고위험 지역’은 대체로 다세대 밀집지역, 영구임대아파트, 쪽방촌 등의 빈민 주거지역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사회복지사들의 높은 자살 빈도 역시 생활고, 실적 경쟁 스트레스, 희망 상실 등이 원인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우리 사회의 자살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연관성이 매우 높으며,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 타살의 성격이 강하다. 서울 노원구에서 자살 위험 집단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관리한 결과 자살률이 낮아졌다는 사실은 역으로 한국 자살이 주로 사회가 유발한 것임을 입증한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자살은 사회의 도덕적 붕괴를 웅변해주는 현상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기보다는 생존의 전쟁터에 나간 전사처럼 도구화될 때, 이 전쟁터에서 비굴하게라도 살아남기를 강요하고, 대열에서 탈락한 사람의 손을 아무도 잡아주지 않을 때, 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기 쉽다. 여린 생명체인 인간에게 따사로운 봄볕 같은 사회의 배려와 관심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고귀한 생명은 올봄의 피다 만 꽃처럼 사라져갈 것이다. 각종 예방조치도 중요하지만, 이 잔혹한 경쟁의 채찍을 과감히 거두어야 한다. 국가나 사회의 기본 목표와 방향을 돌리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죽음의 행진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자. 그러나 죽은 자의 무언의 외침을 듣자.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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