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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
ⓒ 한울(한울 아카데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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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가 한 창문을 가리켰다. 인신매매된 며칠 후에 도망치다 붙잡혀 감금됐던 방이라고 했다. 그날 방에 갇힌 채 그녀는 깡패들에게 집단으로 폭행을 당했다. 그 후로도 경찰에 신고했다고, 또는 미군이 사주는 밥을 먹었다고, 미군을 끌고 오지 못했다고 깡패들에게 구타를 당하곤 했다. 그 창문 앞에서 그녀가 무너져 내렸다.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주저앉아 오열을 했다.
- 정: 이 골방에서… 흑흑흑… 이 골방에서 갇혀서 맞고… 흑흑…."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에서<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한울아카데미 펴냄)은 우리나라에도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된 미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미군 기지촌 여성이 증언한 기록, 즉 증언록이다.
증언자는 기지촌 여성, 즉 미군 위안부로 수십 년을 살아온 김정자씨. 16세 때, 초등학교 동창이 '자신이 일하는 방직공장에 소개시켜준다'고 속여 자신의 빚까지 떠넘겨 성매매하던 파주 용주골로 인신매매하였다. 그후 미군위안부가 되었다.
김정자씨는 파주 용주골로 간 이후 포주들의 감시 속에서 수십 년간 미군 기지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활동 모임으로 이 책의 기획자인 새움터(박스기사 참고)의 도움으로 미군기지촌을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기획자 '새움터'는 |
1990년대의 기지촌에서 기지촌활동을 하던 대학생들과 기지촌여성들이 함께 설립한 여성단체로서 동두천 및 평택, 의정부, 군산 등 전국의 기지촌에서 기지촌여성들을 만나 왔다.
기지촌여성들의 고통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고민하며, 기지촌여성들이 기지촌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최근 노환으로 힘들어 하는 고령의 기지촌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이 여성들과 함께 남은 삶과 곧 맞이할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가 새움터의 새로운 화두다. (책의 '새움터' 프로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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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미군기지촌에서 벗어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그녀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여러 포주들에게 팔려 새코날 같은 약물에 중독되어 몸을 팔았다. 오로지 포주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말하자면 성노예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팔아 돈을 벌었지만,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들이 그러는 것처럼 번 돈은 거의 전부 포주들에게 빼앗겼다. 또, 성매매 여성으로 사는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해하지 못할 이유와 방식의 계산으로 빚만 늘어갔다.
그녀가 전전했던 기지촌들은 파주 용주골을 시작으로 문산 기지촌과 광탄 기지촌, 동두천 홍콩빌리지, 군산 기지촌, 평택 안정리 기지촌, 의정부 뺏벌 기지촌, 서울 삼각지 기지촌, 대구 왜관 기치촌 등 미군들이 주둔한 곳이다.
"한국정부는 1973년 6월 '한미친선협회'의 설립과 기능에 관한 규정들을 공포했고, 그해 9월까지 전국에 68개의 '협회'가 만들어졌다. 이 협회의 한국 측 구성원은 기지촌 클럽 포주들, 지방정부 관계자(시장이나 군수, 보건소장, 공보관), 지방경찰, 한국 특수 관광협회, 자매회(기자 주: 기지촌 여성들의 복지 등을 위한다는 명목 등으로 포주들에 의해 미군기지촌 여성들을 회원으로 등록 관리하였으나 실은 감시나 관리 등을 주목적이었던) 대표들이었고, 미국 측은 기지 사령관(혹은 대리), 헌병사령관, 군의관, 민사과 장교(지역 관계 업무와 장교), 공무 장교 등이었다. 협회의 모임은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열렸는데, 이 모임에서 양측은 '상호 이해와 관심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고, 기지촌 클럽 서비스와 시설의 개선, 성병 전염자들과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지도는 공통의 이해문제로 우위에 놓여있었다." (캐서린 H.S.문.2002:127) -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에서우리에게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뿐이다. 이 때문에 미군기지 주변에서 성매매를 하던 여성들이 사실은 우리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된 '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책에 의하면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기지촌 정화사업'을 통해 미군위안부는 계속 있어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는 우리에게 '양색시', '양공주', '양갈보' 등으로 불리던, 손가락질과 멸시를 받으며 미군들을 상대로 성을 팔아야만 했던 미군 기지촌 여성들과 미군 기지촌이 한·미 양국 정부에 의해 직접 관리되었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책은 김정자의 증언 외에 증언 여행, 그 여정에 따라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기치촌의 모습 등을 찍은 사진과 당시 미군기지촌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과 정책에 관한 신문기사, 미군기지촌 사람들끼리 오가는 용어나 미국위안부 혹은 미군기지촌의 현실을 알 수 있는 관련 설명 등을 담고 있다.
이제까지 새움터 같은 단체나 여성운동가들에 의해 미군기지촌 혹은 미군기지촌 여성문제를 다루기 위한 시도들은 더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기지촌 여성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증언한 것은 처음이란다.
기지촌 여성이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증언한 것은 처음그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군기지촌에서 불린(미군 기지촌에서 지어준) 이름을 버리고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이와 같은 증언을 하는 이유는 증언을 통해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잃어버린 자신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녀가 증언한 이유는 미군기지 주변에서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이 의도적으로 통제되고 관리되며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었던 피해자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란다. 또한 자신처럼 인신매매되어 끌려 다니며 착취당하는 것도 모자라 미군과 포주들에게 죽어간 수많은 미군기지촌 여성들의 억울한 죽음, 지금도 존재하는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김정자가 순간 멈칫하는 것 같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정: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그러면서 미군을 받았다…. 동지섣달에 구덩이를 이렇게 파구서, 거기에 들어가 팔으라 하면 팔고… 몸을… 한 놈 하고 나면은 고담에 또 딴 놈, 또 딴 놈, 또 딴 놈…. 씻지도 못하고… 빤스를 어찌 입어… 빨리빨리 해서 돈 벌어갖고 내려와야 되는데…. 돈이나 줘? 어쩔 땐 담요 줘, 미군 담요. 지네들 먹는 밥, 말라붙은 거, 그거 줘. 그거 들고 담요 들고 새벽쯤 돼서 내려와야지. 환할 때 거기 올라 댕기는 거 알면 또 잽혀 갈까봐. 살아온 게 진짜 … 죽지 않고 여기까지 이 나이 먹도록 살아온 것만 해도 진짜… 참… 살아온 게 미쳐 버리겠다… 흑흑흑…."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에서그녀는 죽어서 바다에 묻히고 싶단다. 지금은 평범한 야산에 불과하나 한때 미군의 훈련장으로 쓰인 문산(경기도 파주시)의 여러 야산으로 끌려가 훈련 중인 미군에게 몸을 팔아야만 했던 기억과 그로인한 고통 때문에 산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어린 시절 이웃동네 누구네 딸 아무개를 '양갈보' 혹은 '양색시', '양공주'라 지칭하며 흉을 보곤 하던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갈보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때, 수군거리는 어른들에게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무언가, 더러운 무언가를 느끼곤 했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 알게된 미군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편견은 이후 미군기지촌 여성들의 인권 관련 일련의 활동들을 접하면서도, 혹은 박정희 정권이 미군들을 위해 베푼 것이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동정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 책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을 읽으면서 오랜 세월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줘서 개인적으로 참 고맙다. 앞으로 다른 증언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들이 더 나와 많은 국민의 공분을 얻을 수 있었으면, 그리하여 한·미 양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김정자씨의 소원대로 착취의 결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미군 위안부기지촌 여성들이 병원비 걱정만이라도 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새움터(기획) | 김현선 (엮은이) | 김정자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06-30 |2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