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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못한걸…” 美 위안부 추모비 앞 떠나지 못한 할머니들

기사입력 2011-12-17 03:00:00 기사수정 2011-12-17 11: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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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해외 첫 기림비에 오열

이용수 할머니가 15일 미국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파크 시의 시립도서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팰리세이즈파크=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15일 오전 미국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파크 시의 시립도서관 앞. 찬 날씨에 부축을 받으며 도착한 이용수 할머니(83)가 ‘위안부 할머니 기림비’ 앞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서는 기림비에 새겨진 영문 글자를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 옆에는 이옥선 할머니(85)가 선 채 미동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는 듯 보였다. 12일 미국에 도착한 뒤 밝은 모습만 보였던 두 할머니는 머나먼 이국땅에 세워진 기림비 앞에서 끝내 오열했다.

이달 초 조경 공사를 마무리해 제 모습을 갖춘 기림비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두 할머니는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와 쿠퍼버그 홀로코스트센터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 왔다.

기림비에는 ‘일본군에 납치돼 위안부(comfort women)로, 사람들이 절대 외면해선 안 될 인권침해를 당해야 했던 20만 명의 여성을 추모한다. 인권을 짓밟은 무서운 범죄를 잊지 말자’는 문구가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

두 할머니는 “추우니 안으로 들어가자”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기림비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한 입으로 다 얘기할 수 있겠느냐. 한국도 못한 일을 미국에서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도 “이미 잠든 할머니들이 이 광경을 봤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인유권자센터 주도로 2009년부터 시작된 기림비 건립운동에는 재미동포들이 참여해 건립비용 1만 달러를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하지만 기림비 건립은 위안부의 존재를 몰랐던 미국인들에겐 생뚱맞은 일이었다. 비석은 지난해 10월 완성됐지만 주민들이 특정 민족의 추모비를 세우는 것에 강하게 반발해 조경사업이 미뤄지다 이달 초 정식으로 준공행사를 열었다. 재미동포들의 설득에 버겐카운티와 팰리세이즈파크 시가 용단을 내린 것이다.

제임스 로툰도 시장은 “2년 전에서야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알고 충격을 받았다. 학교와 도서관이 있는 이곳을 기림비 건립 장소로 정한 것은 오가는 학생들이 슬픈 역사를 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인유권자센터 김용찬 대표는 “해외에 세워진 첫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라며 “다른 도시에도 기림비를 세워 미국 사회에 더 많이 알리겠다”고 말했다.

두 할머니는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평화비’를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일본이 한국 정부에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얼굴 색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먼 곳의 미국인들까지 관심을 갖는데 정작 한국 정부가 일본의 철거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이는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팰리세이즈파크=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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