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것인가. 50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둘 다 이뤄낸 뚝심의 대한민국.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 견해의 극단적 차이로 사방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김 샐 구멍이 막혀 버린 압력밥솥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바로 그런 불안을 해소해 주는 책이다. 지금의 갈등들을 극복할 수밖에 없는 DNA가 우리 한국인에게 충분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지도는 원래 앞발을 높이 들고 포효하는 호랑이 모양이다. 그런데 일제 치하를 거치면서 한반도는 연약하고, 약삭빠른 토끼로 변해버렸다. 거기다 한국인은 사인 사색, 혼자는 강한데 모이면 사색당파로 분열해 망하는 사람들이라고 배웠다. 이거 왜 이러는가. 월드컵 축구 때 광화문 사거리는 물론 전국 방방곡곡을 가득 채웠던 '붉은 셔츠'의 물결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IMF 구제금융 위기 때 산처럼 쌓였던 '금'을 못 봤단 말인가.
현대의 우리가 우리를 그렇게 알고 있을 적에 18세기 말, 19세기 초 유럽 열강의 정치인들은 당시의 한국인(조선인)들을 어떻게 알았을 것인가. '무기력하고, 게으르고, 무식하고, 겁이 많은, 그래서 식민통치가 당연히 필요한 미개인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한국을 지배하기 위한 일본의 전략적 왜곡과 선전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아무렇게나 젖가슴을 드러내고 사는 한국 여인의 사진'을 연출 촬영해 유럽에 퍼뜨렸던 장본인으로 의심 받을 정도로 교묘, 치밀, 비겁했다. 그러나 미국, 독일, 폴란드 등의 기자, 선교사 등 현명한 외국인들은 일본의 선전에 놀아나지 않았다. 당시의 한국을 직접 방문했던 그들은 일본의 선전과는 완벽하게 다른 '한국인들의 대단함'을 기록으로 남겼다.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고, 당당했다. 일본인들 보다 훨씬 자유분방하고 호탕했다. 매우 지적인데다 밤낮으로 공부했다. 따뜻한 감성 때문에 인정과 눈물이 많았다. 산업화로 하루하루가 치열한 전쟁 같은 유럽의 삶과 달리 농경사회의 낙천과 여유가 살아있었다. 그것을 게으른 모습으로 둔갑시켰을 뿐이다. 갓은 모자가 아닌 예술품이었고 상투와 망건을 갖추는 기막힌 스타일리스트였다.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는 그들은 밥그릇마저 귀한 도자기였다. 기독교가 자발적으로 뿌리를 내린 유일한 나라, 그로부터 100년 후에는 미국보다 선교사를 더 많이 내보낼 나라가 한국이었다.
그러니 1905년 1월 1일, 스웨덴의 아손 그렙스트 기자의 부산역 목격담을 읽어 본다면 '일본의 지배가 한국에게 행운'이었다는 망발은 결코 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의 '한국인의 문화유전자'(아모르문디), 문소영의 '조선의 못난 개항'(역사의 아침)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책이다.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이숲 지음. 예옥 펴냄. 360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