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시시각각] 아베, 마루타의 복수를 잊었나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이들 폭격은 신의 징벌이자 인간의 복수였다. 드레스덴은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대인의 복수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일본 군국주의에 희생된 아시아인의 복수였다. 특히 731부대 생체실험에 동원된 마루타의 복수였다. 똑같은 복수였지만 결과는 다르다. 독일은 정신을 바꿔 새로운 국가로 태어났다. 하지만 일본은 제대로 변하지 않고 있다.
2006년 나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유적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여기서 유대인 100여만 명이 가스실에서 처형됐다. 모든 게 끔찍했지만 가장 충격적인 기억이 두 개 있다. 하나는 가스실 벽면에 남겨진 손톱자국이다. 독가스가 퍼지자 유대인들은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다. 고통 속에서 그들은 손톱으로 시멘트 벽을 긁었다.
다른 하나는 형벌 방이다. 겨우 한 사람 정도 누울 수 있는 방에 4~5명을 가둬두었다. 유대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지쳐서 죽어갔다. 그들은 손톱으로 벽면에 글자를 새겨두었다. 가장 많은 단어가 ‘god(하나님)’이다.
만주 하얼빈에는 731부대 유적이 있다. 박물관에는 생체실험 장면이 재현되어 있다. 실험 대상은 마루타(통나무)라 불렸다. 진공 속에서 몸이 뒤틀리며, 세균 주사를 맞고 서서히, 묶인 채 폭탄에 가루가 되면서 마루타는 죽어갔다. 최소한 3000명이 실험에 동원됐다. 중국·러시아·몽골·한국인이었다.
마루타 비명이 하늘에 닿은 것인가. 45년 8월 원자폭탄 열 폭풍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덮쳤다. 가스실 유대인처럼, 마루타처럼, 작두로 머리가 잘렸던 난징 중국인처럼 일본인도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방사능 피폭까지 합치면 모두 20여만 명이 죽었다.
불벼락은 국가를 개조하고 역사를 바꿔놓았다. 드레스덴 공습 25년 후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날이었다. 그 후 독일 대통령과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다. 과거에 대한 추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독일 검찰은 최근 아우슈비츠 교도관을 지낸 90세 남성을 체포했다.
그런데 일본은 다르다. 어떤 지도자들은 침략 역사를 부인하고 망언으로 아시아의 상처를 들쑤신다. 신세대 정치 주역이라는 사람이 위안부는 필요한 것이라고 버젓이 말한다. 아베는 웃으면서 731 숫자가 적힌 훈련기에 올라탔다. 그 숫자에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있는지 그는 모르는가. 아베의 언행은 인류 이성과 양심에 대한 생체 실험이다. 이제는 아예 인류가 마루타가 되어버렸다.
아베는 지금 환각에 빠진 것 같다. 엔저 호황과 일부 극우 열기에 눈이 가려 자신과 일본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짧은 지식으로 인류의 길고 깊은 지성에 도전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의 행동은 그의 자유다. 하지만 신에게도 자유가 있다. 마루타의 원혼(寃魂)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그래서 일본에 대한 불벼락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도 신의 자유일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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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bkjung381 2013-05-20 오후 2:15:03
- 추천 1 반대 1신고
- 미안한 말이지만 편협한 자국내 인기영합 일그러진 극우적 언행은 김진기자나 아베나 오십보 백보다. 아마도 아베 언행에 박수치며 통쾌해하는 일본 극성 골수 극우파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것이다. 김진기자의 감칠맛나는 널뛰기 기사로 통쾌해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것이 교묘한 포장술인 것을 깨달으면 아마도 많이 씁슬할 것이다. 솔직히 김기자는 언론보다 극우 보수정치를 해야 할 사람이다. 답글 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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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35 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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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52 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