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100% 번역 수준으로 표절했다.” 믿을 수 없는 정보였다. 공개 취재에 착수했다. 서울대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했다. 제보 자체의 신빙성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한 달에 걸친 취재가 수포로 돌아갈 즈음이었다. 한 취재원의 입에서 “정치외교학부의 한 교수가 최근 사직했다”는 말이 나왔다. 하마터면 영영 묻힐 뻔했던, 서울대 교수 논문 표절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은 그렇게 드러났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기분이었다. 한번 시작된 논문 표절 사건은 서울대를 중심으로 교수 사회를 뒤흔들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연구논문으로부터 시작된 표절 의혹이 학위 논문으로까지 옮겨갔다. “표절자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한 취재원의 말이 계기였다. 그렇게 시작해 표절이 의심되는 수십 편의 석·박사 학위 논문을 검증하다 나온 결실이 ‘스타 강사’ 김미경씨의 논문 표절이다. 한참 주가를 높이던 김씨를 두고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우리 시대에 힐링 메시지를 던져주는 강사’와 ‘논문 표절자’ 두 가지 사실 중 어떤 것이 우리 사회 발전에 더 큰 영향을 주느냐는 고민이었다. 일주일 후 결론은 ‘표절’을 바탕으로 한 힐링은 ‘거짓’이라는 것이었다.
김씨의 표절 보도 이후 취재진은 한 달여 동안 수백 편의 논문과 씨름해야 했다. 매일같이 밤을 새워가며, 깨알 같은 크기로 인쇄된 논문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하지만 학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성원이 있었고, 기획을 허망하게 멈추기엔 이미 사람들의 관심과 성원이 너무 커졌다.
참고문헌 자료들을 교묘히 어휘만 바꿔 베낀 논문들이 절대다수였다. 그러나 100% ‘복사’ 수준으로 표절한 논문이 아니면 보도할 수 없다는 것이 취재진이 세운 ‘철칙’이었다. 빗발치는 제보들의 옥석을 가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사사로운 원한에 근거한 제보가 몰려왔다. 자신의 적(敵)들에게 어떻게든 타격을 입히려는 취재원들의 눈빛을 보며 우리는 판단해야 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욕망인지. 둘 사이의 경계는 모호했다. 밤새 토론했고, 팩트가 함유된 정보 몇 조각만을 보도하기로 했다.
“사회에 희망을 주던 김미경씨를 왜 몰락시켰는가” “십수년전 논문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마녀사냥이자 인민재판이다” 취재과정에서 들은 볼멘소리들이다. 많은 기성세대의 생각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수긍이 갔다. 그렇다고 교수·목사·스타 강사까지 표절로 출세하는 우리나라가 정상은 아니었다.
공정한 경쟁이 아닌 반칙을 일삼는 자들이 명성과 부를 차지하고, 원칙을 지킨 사람들이 패배자가 되는 게 제대로 된 것인가? 기사 몇 편으로 사회가 바뀐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제 막 작은 씨앗을 뿌렸을 뿐이다. 함께 고생한 이옥진, 원선우 기자와 데스크, 끊임없이 성원한 독자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