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콤플렉스덩어리 한국인, 알고 보면 복 받은 것

글자크기 글자 크게글자 작게

[책과 지식] 콤플렉스덩어리 한국인, 알고 보면 복 받은 것

[중앙일보] 입력 2013.03.23 00:42 / 수정 2013.03.23 00:42
명품 한 두 점은 걸치고 들고 신어야 얼굴이 선다는 한국 사회의 풍조는 ‘허식’ 콤플렉스의 대표 사례다.

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추수밭
304쪽, 1만5000원


‘물(物)’에 빠진 사람들, ‘통(通)’하지 못하는 사람들, ‘화(火)’난 사람들, ‘독(獨)’해진 사람들. 불행의 정점에 서있는 듯 보이는 이 사람들이 한국인이란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52·서울대 외래겸임교수)씨 분석이다. 엄마의 젖을 빨 듯 술잔에 탐닉하고, 통장 잔고=인생 점수라 생각하며, ‘너 나 우리’를 구분 못 하는 사람들이다.

 똑같은 얼굴의 인조인간들이 떠다니고, 양의 탈을 쓴 조폭 리더십이 판치며,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덤빈다. 밑 빠진 마음에 명품 붓기, 무작정 소리부터 지르기, 점점 더 강한 자극 찾기가 이들의 일상이다. 목차만 읽어도 뒷골이 뻐근해진다. 정말 왜들 이러는 것일까.

  이 교수는 한국인이 무려 12가지나 되는 콤플렉스덩어리라고 본다. 물질, 허식, 교육, 집단, 불신, 세대, 분노, 폭력, 고독, 가족, 중독, 약한 자아에 걸쳐 마음 상태가 말도 못하게 괴로운 지옥이다. 한(恨)에 울던 이들이 이제는 욕망 때문에 운다. 잠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는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처로 한반도를 옥죈다. 넘어야 할 감정의 벽으로 우뚝한 일본이 옆집이다. 디지털 시대의 나치즘이 어슬렁거린다.

  입만 열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한국인이, 그런데 알고 보니 ‘복(福)’ 받을 사람들이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미국 뉴욕 융 연구소에서 분석심리학을 전공한 지은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등감과 구분해야 할 진정한 콤플렉스를 제시한다.

 콤플렉스는 “무엇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외적 조건보다 더 깊숙하게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휘두른다”고 했다. 콤플렉스는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러니 콤플렉스를 억압하고 부정하기보다 이해하고 극복할 때 새로운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여러 가지 콤플렉스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라는 이 교수의 부탁은 어머니의 마음처럼 간절해 보인다.

  중앙일보 일요판 신문인 ‘중앙SUNDAY’에 연재하고 있는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17~18일치에서도 이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모의 약점과 아이의 자발성을 인정해 주면 오히려 너무 완벽한 부모 밑에서 자라 유약하고 의존적으로 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길은 어디에 있을까. 이 교수가 ‘한국 사회의 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으로 낸 처방은 ‘개성화(individuation)’다. 융 심리학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적이라는 개성화는 ‘내면의 참 자기 찾기’라 할 수 있다. 주변 상황이나 집단적인 흐름 또는 대세에 동조하기보다 ‘참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을 갖고, 자기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가치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더 중요한 대목은 ‘혼자 잘 살면 무슨 재미냐’는 나눔의 정신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심, 마음 씀, 타자에 대한 배려 등이 개성화의 필수 덕목이다. 자신이 개성화 과정을 통해 누린 행복을 주변과 나누어야 완성에 이를 수 있다. 산에 가서 굴 파고 혼자 벽을 보는 도사의 기이한 수행이 아니라는 얘기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하고, 출근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자기 발전을 위해 공부하는 등 아주 평범한 일상 하나하나도 개성화”다.

  ‘기왕이면 인생을 재미있게 살자!’를 삶의 원칙 중 하나로 삼고 있다는 이 교수 책은 술술 읽히면서 재미있다. 말하자면 필자 자신이 개성화를 잘 실천하고 있는 셈이니 이 책 내용 믿어도 좋겠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프린트 메일로보내기 내블로그에 저장 콘텐트 구매 PDF보기
기사공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