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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16 19:05 수정 : 2009.12.16 19:05

일본의 대표적 비판사상가 고야스 노부쿠니 오사카대 명예교수(오른쪽)는 2006년 5월 한국학중앙연구원 초청 ‘석학 초청 강좌’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왼쪽)를 필두로 하는 일본 내셔널리즘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비판했다. 메이지시대 계몽사상가인 후쿠자와는 ‘탈아입구론’을 주창해 제국주의화를 부추긴 ‘논란의 인물’이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38

내가 사색하고 행동해 온 곳이 일본이었으니만치, 꼭 한마디만 일본에 대해 할 말을 하고 이 길고 긴 연재를 마감하려 하는데, 그것은 요즘 일본에서 심심찮게 화제가 되고 있는 ‘동아시아 공동체’에 관한 나의 견해이외다.

이 연재의 맨 첫 부분에서 1951년 미-일 강화조약을 추진한 미국 대통령 특사 덜레스가 했다는 말을 인용한 적이 있지 않았소이까. “미국은 일본인이 중국인이나 조선인들에게 품고 있는 민족적 우월감을 십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결코 덜레스 개인의 망언이 아니라 미국이 취해온 극동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발상이었던 것이외다. 나의 오랜 친구인 개번 매코맥 교수의 말을 빌리면 “전후부터 미국은 일본의 특이성과 다른 아시아 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여타 아시아국가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함으로써 미국에 더욱 의존하게 한다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아왔다”는 것이외다.(<종속국가 일본>)

이에 호응하듯 ‘일본은 여타 아시아 나라와는 격이 다르며, 동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서양에 가까운 나라라는 것’을 주장하는 논문도 나와 일본인의 우월감을 정당화하려는 예도 있었소이다.

“일본은 구라파(유럽)와 역사 발전의 양상이 공통적이었으며,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 조정에 있었던 무사도의 전통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일본은 서양문화권에 속하는 나라이다. 근대화만 하더라도 일본이니까 가능했던 것이고 일본 이외의 아시아 나라들로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이는 교토학파의 우메사오 다다오 교수 주장인데(<문명의 생태사관>), 일본은 이처럼 ‘명예 백인국가’로 행세함으로써 긍지와 국가 정체성을 유지해 온 것이외다. 물론 이런 풍조는 메이지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고, 이것을 강조하는 데 앞장선 것은 게이오대학 창설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였는바, 그의 ‘탈아입구론’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외다. 청-일, 러-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당시로서는 유효한 것이었소이다. 그런데 요즘 급속도로 미국의 힘이 쇠퇴해가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미국 일변도의 의존에 의구심을 품게 된 일본인들이 약삭빠르게 거꾸로 ‘탈구입아’로 방향을 전환해야 되겠다는 번민을 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론’이 새삼 떠오른 것이외다.

그런데 만일 일본이 진짜로 아시아 복귀를 시도한다면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한민족에 대한 그들의 뒤틀린 역사인식이라고 나는 믿고 있소이다. 일본의 역사학자 고야스 노부쿠니 교수(오사카대)의 지론대로라면 “일본은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은폐함으로써 독자적인 기원을 가진 나라라는 역사인식을 형성해 왔으며, 그 결과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손에 쥘 목적으로 일-청, 일-러 전쟁을 했다”는 것이외다.(<일본 내셔널리즘에 대한 풀이>)

고야스 교수의 견해는 내가 앞 글에서 소개한 황국사관, 즉 일본은 역사적 연고권이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117호)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지만, 고야스 교수만 하더라도 ‘일본이 은폐하고 있는 한반도와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지적하지 않고 있소이다. 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비류백제의 후손이 서기 396년 조선 땅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응신(應神) 왕이 됨으로써 일본의 황실과 국가 자체의 기원을 이루게 되었다는 간단한 역사인데(116호) 이를 지적하는 일본 학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소이다.


현재 일본인은 자기들이 서양인인가 하면 그건 아니고, 또 그렇다고 완전한 동양인도 아니라 엉거주춤하면서도, 잠재의식이라고 할까 자기 나라 황실이 조선 땅을 버리고 바다를 건너온 백제인이었다는 태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곳적 역사의 희미한 기억 때문에 연고권 의식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정체성 위기’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국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것은 ‘정신분열증’(스키조프레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일종의 질환이니만치, 오히려 일본인들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 한국인들이 나서서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없지 않소이다. 일본이 이 정신적 질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시아 복귀도 어려울뿐더러 ‘동아시아 공동체’와 같은 것은 용이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나의 판단인 것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