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낭독기 사용시 다음 링크들을 이용하면 더 빠르게 탐색할 수 있습니다.
입력 : 2013.05.02 03:19
[日, 1952년 '주권 회복의 날' 통치권 되찾았지만… 오키나와는 美지배 20년 더 받아]
오키나와 출신 日의원 분개 - "아베, 우릴 국민으로 안 봐" 이번달 15일 독립연구회 발족
2차대전 집단자살 진실공방 - 극우파 "자발적 선택이었다", 주민들 "일본군이 계속 강요"
지난 28일 일본 정부 주최로 열린 '주권 회복의 날' 행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참가자들이 일왕 앞에서 '덴노헤이카(天皇陛下·일왕) 반자이(萬歲·만세)'를 외친 것이 오키나와(沖繩) 주민에게 전쟁의 악몽을 상기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고 1일 도쿄(東京)신문이 보도했다. 이 사건이 과거 왕국이었다가 일본에 합병된 오키나와의 분리 움직임을 촉발할 수도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오키나와 출신인 데루야 간토쿠(照屋寬德) 사민당 의원은 "(아베 총리 등이)일장기를 배경으로 일왕을 향해 만세를 외친 것에 대해 오키나와 주민은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키나와 주민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덴노헤이카 반자이'란 외침이 2차대전 당시 오키나와 집단 자살 사건의 악몽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했을 때 10여곳에서 오키나와 주민 1000여명이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집단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을 경험한 오키나와 주민은 "사실상 일본군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증언한다. 반면 극우파들은 "주민의 자발적 자결이었다" "일본인의 숭고한 정신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10만명에 이른다.
이시하라 마사이에(石原昌家) 류큐국제대 교수는 "(총리 등이) '덴노 반자이'를 외친 것은 전쟁을 체험한 사람들과 유족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본 본토는 1952년 주권을 회복했지만 오키나와는 1972년이 돼서야 미군 점령 통치에서 벗어났다.
오키나와 주민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덴노헤이카 반자이'란 외침이 2차대전 당시 오키나와 집단 자살 사건의 악몽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했을 때 10여곳에서 오키나와 주민 1000여명이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집단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을 경험한 오키나와 주민은 "사실상 일본군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증언한다. 반면 극우파들은 "주민의 자발적 자결이었다" "일본인의 숭고한 정신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10만명에 이른다.
이시하라 마사이에(石原昌家) 류큐국제대 교수는 "(총리 등이) '덴노 반자이'를 외친 것은 전쟁을 체험한 사람들과 유족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본 본토는 1952년 주권을 회복했지만 오키나와는 1972년이 돼서야 미군 점령 통치에서 벗어났다.
-
-
일본 오키나와에서 주민들이 지난 28일 정부 주최로 열린 ‘주권 회복의 날’ 행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1952년 주권을 회복했으나 오키나와는 이후 20년 더 미군 통치를 받았다. /AP 뉴시스
마쓰시마 야스가쓰(松島泰勝) 류코쿠(龍谷)대학 교수는 "오키나와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오키나와 독립'이란 단어를 언급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오키나와 인구는 약 140만명으로 주일 미군 기지의 74%가 오키나와에 몰려 있고 미군 범죄 등이 잇따라 주민의 불만이 치솟고 있다. 데루야 의원은 블로그를 통해 "일본 국민으로 취급되지 않는 현실에서 오키나와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더 좋은 게 아닌가"라고 밝혔다. 오는 15일 오키나와의 독립 가능성을 연구하는 류큐민족 독립 종합연구학회도 발족한다.
☞류큐 왕국(琉球王國)
1429년부터 450년간 일본 남서쪽 오키나와(沖繩)에 있던 독립 왕국. 한·중·일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1879년 일본의 침략을 받아 일본 영토에 병합됐다. 주민들의 20%가량은 지금도 분리 독립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류큐는 오키나와의 옛 지명이다.
1429년부터 450년간 일본 남서쪽 오키나와(沖繩)에 있던 독립 왕국. 한·중·일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1879년 일본의 침략을 받아 일본 영토에 병합됐다. 주민들의 20%가량은 지금도 분리 독립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류큐는 오키나와의 옛 지명이다.
SECURITY WARNING: Please treat the URL above as you would your password and do not share it with anyone.
SECURITY WARNING: Please treat the URL above as you would your password and do not share it with anyone.
-
목록
-
위로
오끼나와 독립 환영한다. 독립한다면 일본의 바다는 절반이 날아간다. 한국과 중국이 적극지원해야 될 일이다.
- 이동주(djle****)
오끼나와가 독립하여 우리와 합병했으면 좋겠다. 홍길동의 연고권을 내세워.
- 이충우(leepar****)
오키나와가 과연 독립할 힘이 있을까요? 독립은 쟁취하는 것이지 누가 주는 것이 아니지요. 이미 말도 사라졌고, 문자도 있는지 의문이고, 몸은 병들어 비만율이 일본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이며, 특히 젊은이들은 패스트 푸드에 길들여져 있는데 어디서 기력이 나올까요? 나는 아직 오티나와가 병합 이후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해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불쑥 한마디로 안되죠
- 조태상(taecho****)
일본의 무참한 학살과 탄압을 받은 나라가 아직도 일본말을 쓰면서 일본정부의 통치를 받고 있다니... 불쌍한 오키나와를 국제적 압력으로라도 독립시켜줘야 합니다. 센카쿠는 대만이든 중국이든 역시 원래 청나라의 영토로 돌려주고...
- 김규용(jamesk****)
미국의 53 번째 주가되어야합니다 일본군에게 무참하게 학살당한 오키나와 지금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