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섭의 정명론/소준섭 지음/260쪽·1만3000원/어젠다
◇한 단어 사전(개인·공사·문화·인권·천)/사쿠타 케이이치 외 4인 지음·/김석근 외 4인 옮김/각 112∼148쪽/각 1만∼1만2000원·푸른역사그리스어 바르바로이(barbaroi)는 ‘야만인’을 뜻한다. 동시에 ‘말을 못하는 벙어리’의 의미도 있다. 그리스인에게 언어는 문명의 상징인 셈이다.
‘소준섭의 정명론’과 ‘한 단어 사전’은 문명을 이끌어온 일상 단어의 기원과 바른 개념을 분석한 책이다. 두 책 모두 흔히 사용하는 한자어 중에 상당수가 중국이 아닌 일본식 한자의 잔재라는 점에 주목했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정명론’의 저자는 근대 이후 한자문화권에서 일본이 언어의 개념을 지배했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막강한 권위를 행사했다고 분석한다. 이미 익숙해진 용어이더라도 일본어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한 단어…’는 학술적인 분석을 비중 있게 실었다. 야나부 아키라, 미조구치 유조 등 일본 교수들이 근대 일본 지식인들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쓰이는 단어인 ‘개인’ ‘공사’ ‘문화’ ‘인권’ ‘천(天)’의 기원과 한자문화권에서 개념의 차이를 비교 분석했다. 이를테면 중국 고전에서 문화는 ‘문치교화(文治敎化)’의 의미로 위력이나 형벌에 의한 교화와 상반되는 정치 이념이었다.
‘한 단어…’가 의미 차이를 인식해 정확한 언어 사용을 강조한 반면 ‘…정명론’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사례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잘못 쓰이는 단어 교정에 힘을 실었다. 우리가 자주 쓰는 ‘해외’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바다 건너 외국을 의미하지만 이는 섬나라인 일본의 관점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외국이나 국외라는 표현이 맞다. ‘반도(半島)’ 역시 절반만 섬이라는 뜻으로 조선을 모욕적으로 일컫는 일본식 표현이다. 법조문이나 관공서 서류에는 ‘∼한 자’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일본어를 그대로 옮긴 표현이다. 저자에 따르면 광복 후 우리나라 민법이 일본 민법을 직역한 부분은 60%에 이른다.
두 책 모두 언어의 의존과 종속 현상을 경계한다. 공자의 사상이 수천 년 동안 동양 사회를 지탱해온 것은 말을 바로 세우는 ‘정명(正名)’을 중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논어’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자국어의 튼튼한 기초가 국가의 통합과 발전을 이끈다는 것이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